준비된 관객이
좋은 공연을 만든다
저는 자칭타칭 문화예술 애호가입니다. 오랫동안 사업을 하면서도 그 흔한 술자리보다는, 좋은 공연을 함께 보면서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믿음과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저에게는 좋은 공연을 보는 것이 그 어떤 산해진미를 맛보는 것보다 황홀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지난 한 해에도 국내외 여러 곳을 다니면서 수많은 공연을 보았고, 나름대로 좋은 손님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사업상 유럽의 유수 공연들을 보면서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은 그곳의 관객은 참으로 준비를 잘하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관객이 있기에 훌륭한 공연이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가 항상 좋은 공연을 기대하듯이 무대 위 예술가들도 좋은 관객을 기대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관객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한마디로 ‘준비된 관객’이라 생각합니다. 준비란 공연을 잘 보겠다는 마음의 준비부터 시작이겠죠.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준비되지 않은 관객은 좋은 공연을 볼 수가 없습니다. 훌륭한 손님이 훌륭한 공연을 만든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배웠습니다. 선진국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지난해 초 특별한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지인인 김정운 교수와 함께 독일로 여행을 가서,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감상했습니다. 사실 좌석이 좋지 않은 구석자리였지만 주변 관객들의 뜨거운 관람 열기로 인해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조차 까맣게 잊을 수 있었습니다. 오롯한 감동만이 제 가슴을 채웠습니다.
30년 가까이 독일의 한 회사와 거래를 해온 저에게 가끔 돌아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독일이 어떻게 강한 나라가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제가 항상 들려주는 대답은 잘 준비된 나라라는 것입니다. 마치 충분한 연습을 한 후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처럼 선진국들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은 항상 저보다 더 충분한 준비를 한 후 상담 테이블에 앉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 창간 29주년을 맞이하는 ‘객석’은 잘 준비된 관객을 만들어줄 수 있는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객석’을 봐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객석’이 제 옆에 있기를 희망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며 저 또한 이런 다짐을 해봅니다. 새해에는 충분히 준비된 관객으로 항상 객석에 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연주자뿐만 아니라 공연장의 관객까지도 ‘객석’을 통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파버카스텔 한국지사 대표 이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