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우 블레하치 내한 공연

피아노와 나 그리고 쇼팽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2월 1일 12:00 오전

2005년 쇼팽 콩쿠르가 낳은 신성 라파우 블레하치가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2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는 바흐 파르티타 3번을 시작으로 베토벤 소나타 7번, 쇼팽 녹턴 Op.32-2·폴로네즈 Op.40·마주르카 Op.63·스케르초 3번을 연주한다.

어느 날, 음악이 한 소년을 불렀다. 음악은 귓가에 잠잠히, 오랫동안 기억될 소리를 소년에게 선물했다. 소년은 자연스럽게 그 소리를 따라갔다. 귓가의 소리가 손끝으로 옮겨지는 순간, 소년은 깨달았다. 그 소리는 이미 오래전 마음 깊은 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지난 2005년 10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5회 쇼팽 콩쿠르는 여러 면에서 특별했다. 라파우 블레하치가 1위와 특별상 4개를 모두 석권하면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이래 30년 만에 자국 출신 우승자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폴란드 전역은 한동안 떠들썩했다. 국내에서도 신성의 탄생뿐 아니라 2위 없는 공동 3위에 오른 임동민·임동혁 형제로 인해 쇼팽 콩쿠르 소식은 화제였다. 이후 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르샤바의 영광은 블레하치에게 전 세계 각지 유명 콘서트홀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발레리 게르기예프·마하일 플레트뇨프·샤를 뒤투아 등 유명 지휘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고, 그동안 DG에서 네 장의 앨범을 선보였다. 2010년에는 매년 국제 음악비평가들이 예술적 성과가 뛰어난 젊은 음악가에게 주는 상인 이탈리아 시에나의 아카데미아 무지칼레 키자나 상을 수상했다.
라파우 블레하치는 올해 스물여덟 살의 젊은 피아니스트지만, 연주에서만큼은 그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의 지나침보다는 사려 깊은 간결함과 우아함이 자연스럽게 빛나는 연주는 그 내면 또한 자신만의 철학과 겸손, 따뜻함으로 겹겹이 채워진 사람임을 짐작케 한다. 첫 내한을 앞둔 블레하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나? 음악을 접하기 시작했을 무렵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우리 부모님은 연주가는 아니셨지만, 클래식 음악을 무척 좋아하셨다. 나에게 가장 먼저 음악적인 영향을 끼친 악기는 피아노가 아닌 오르간이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들었던 오르간 소리가 참 좋아서, 나중에 오르가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네다섯 살 무렵부터는 교회에서나 아니면 텔레비전을 통해 들었던 멜로디를 집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했다. 처음에는 오른손으로만 건반을 치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양손으로 칠 수 있게 됐다. 누가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준 건 아니었다. 그 횟수가 늘어나면서 피아노가 나와 잘 맞는 악기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고,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학에서 철학과 음악미학을 전공했다. 이러한 공부가 연주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철학과 음악미학은 내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철학은 곡을 해석하는 데 있어 텍스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줬다. 또 음악 언어에 관한 책을 읽었던 경험들이 곡 해석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야체크 폴란스키·카타르지나 포포바 지드론을 사사했다. 두 스승과 함께 하며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무엇인가.
폴란스키는 위대한 스승이다. 기초에 중점을 둔 전통적인 방식의 가르침을 폴란스키에게 받았다. 주로 바흐의 작품을 중심으로 레슨을 받았는데, 그 덕분에 1996년 바흐 콩쿠르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바흐 외에도 클레멘티·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작품도 함께 공부했다. 포포바 지드론과는 열다섯 살 때부터 함께 했다.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나를 엄청나게 성장시켰다. 나는 그녀를 예술 세계의 새로운 문을 열어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포포바 지드론 덕분에 음악에 대한 깊이와 색깔을 찾을 수 있었고, 밝고 어두움을 표현해낼 수 있었다. 쇼팽 레퍼토리를 확장하게 된 것도 이때였다. 그녀에게 음악을 배우는 동안 여러 콩쿠르에 입상했고,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내 음악인생에 중요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콩쿠르를 준비할 때 포포바 지드론은 “콩쿠르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항상 강조했다.
2005년 쇼팽 콩쿠르를 계기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됐다. 콩쿠르 전과 후 달라진 삶의 변화는 무엇인가.
쇼팽 콩쿠르는 젊은 연주자들의 꿈이다. 나 역시 오랜 기간 쇼팽 콩쿠르를 준비했고, 시간이 허락되는 한 적어도 하루에 일곱 시간 이상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지금도 연주가 없는 날에는 그 연습 시간을 유지한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세계 곳곳의 좋은 홀과 페스티벌에서 정말 많은 연주를 할 수 있게 됐다. 어릴 적 내가 꿈꿨던 것처럼 말이다. 내게 쇼팽은 정말 중요한 작곡가고, 쇼팽 콩쿠르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콩쿠르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또래 피아니스트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보기에는 그가 콩쿠르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그는 공쿠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친구를 설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만약 그런 연주자가 있다면 콩쿠르뿐 아니라 음악 자체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그중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헌신할 마음도 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이 아닐까.
쇼팽 작품의 아름다움을 언어로 설명한다면.
쇼팽의 음악에서 정말 다양한 캐릭터와 감정들을 발견한다. 특히 마주르카를 연주할 때 그렇다. 연주를 하고 있으면 그의 음악을 묘사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저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자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쇼팽의 에스프레시보’를 어떤 마음으로 연주하나.
쇼팽의 에스프레시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다. 정서를 통해 작품 해석에 더 올바르게 접근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폴란드에서 자란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쇼팽이 태어나 자라고 공부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정서로 그의 음악을 마음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연주한 쇼팽의 곡은 무엇이었나.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지.
나의 첫 번째 쇼팽은 녹턴 Op.32-2이었다. 멜로디와 하모니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의 놀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이 곡은 내한 공연 레퍼토리에도 들어가 있다.

피아노는 내 삶의 전부이다
지성·이성·감성·재능·연습 중 연주를 완성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곡가와 곡에 따라 그 비중이 다르다. 연주할 때 어느 한 부분에만 무게를 두기보다는 때에 따라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롤모델로 삼는 연주자가 있나.
세상에는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이 많다. 특히 새 작품을 준비하고 곡 해석에 관해 고민할 때면 그들의 연주에서 언제나 좋은 영향을 받는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그나츠 얀 파데레프스키·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를 좋아한다. 미켈란젤리의 해석은 지성과 감성이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고, 루빈스타인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루바토가 환상적이다.
쇼팽 콩쿠르 우승, DG 아티스트라는 공통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뒤를 잇는 피아니스트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메르만은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다. 쇼팽이든 베토벤이든 그의 연주를 들을 때면 음악의 위대함을 느낀다. 지메르만의 연주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은 인생과 음악적인 면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가 선보이는 해석의 일부분과 나의 그것이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지메르만과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당시 그에게 축하 편지를 받았다. 몇 년 전에는 바젤에 있는 지메르만의 집에 초대되어 닷새 정도를 함께 지내며 작업했다. 지메르만은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고, 나 역시 그를 든든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2005년 쇼팽 콩쿠르 이후, 일본에 상당수의 팬클럽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당신의 연주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이 많다.
일 년에 보통 마흔 번 정도의 연주회를 갖는다. 누군가는 이 횟수가 적다고 하겠지만, 연습뿐 아니라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구하고 개발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연주회는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다양한 관객을 만나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본에서는 2003년 하마마쓰 콩쿠르 이후 정기적인 연주회를 갖고 있다. 나를 아끼고 응원해주는 일본 관객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한국 관객을 곧 만날 수 있어 기쁘고 기대된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첫 곡으로 바흐 파르티타 3번을 연주한다. 베토벤 소나타 7번과 함께 후반부에는 쇼팽 녹턴 Op.32-2·폴로네즈 Op.40·마주르카 Op.63·스케르초 3번을 선보인다. 어떤 생각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나.
바흐의 음악으로 연주회를 시작하고 싶었다. 바흐의 음악이 쇼팽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바흐는 나에게 중요하다. 어린 시절 바흐의 작품들로 오르간 연주를 많이 했다. 바흐의 작품으로 음악을 시작했고, 또 시작할 수 있었다. 쇼팽의 작품은 소나타·녹턴·폴로네즈·마주르카·스케르초·협주곡 등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각 작품마다 내가 사랑하고,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곡들로 골랐다.
최근 새롭게 파고드는 작곡가나 작품이 있는가.
다시 쇼팽으로 이야기가 돌아가게 되는데, 얼마 전 폴로네즈 일곱 곡을 녹음했다. 올해 가을 DG에서 발매될 예정인데 1번부터 4번까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5번과 지난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6번, 마지막으로 ‘환상 폴로네즈’가 들어간다. 요즘에는 나의 오랜 꿈인 마주르카 전곡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작곡이나 지휘, 또는 미술이나 문학 등 타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나? 연주 외에 예술적 영향을 주고받는 다른 분야가 있다면.
지금은 피아노가 내 삶의 전부이다. 해내고 싶고, 또 해야 할 것이 많아서 작곡이나 지휘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평소 연주가 없는 날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간다. 파리에서 리사이틀이 있던 때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틀 이상을 보냈다. 철학책을 자주 읽고 가끔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도 읽는다. 철학·문학 등 다른 예술 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는 것은 나의 이상적인 휴식 방법이기도 하다.
현재 활동하는 또래 피아니스트 중 주목하는 사람이 있나.
특별히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다만 많은 연주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한, 좋은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청중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다. 각 연주자가 서로 다른 세계관과 개성을 갖고 있기에, 같은 작품도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해석될 수 있다. 마치 박물관과 같다고 해야 할까. 박물관에서 여러 화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의 음악계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정의하는 피아니스트란 무엇인가.
작곡가의 감정과 의도 속에 들어가 작품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 피아니스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작곡가의 논리에 깊이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는 작곡가들의 제안과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곧 개인적인 해석과 시야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의 핵심이다. 더불어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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