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자라는 미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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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5월 1일 12:00 오전

나의 모자라는 미의식
글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사진 김영일

나는 모자라는 버릇이 있다. 연극을 무대 예술로 보려는 게 아니라 소리 예술로 읽으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대에서 ‘띠따’ 소리가 들려오면 눈시울부터 피가 끓는다. ‘띠따’란 무엇일까. 못된 임금이나 떼부자가 “내 한마디는 곧 법이요, 도덕 가치다. 요놈들, 쩔쩔 따르라”라는 엄명을 이르는 큰소리이니 아니 그럴 수가 있는가. 하지만 그 ‘띠따’는 사람의 마음에 뿌리 내린 바 없어 마냥 흔들리는 소리라, 배우의 목소리에 그 흔들림을 담고 있느냐를 귀 기울인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 ‘띠따’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알라 바치는 ‘따발’ 소리가 있기 마련, 누구나 그 ‘따발’ 소리를 들으면 반항심이 일게 된다. 나는 그 반항심을 제대로 일게 하느냐 못하느냐에 귀가 간다는 게 아니다. 그 반항심이 반항심으로 있게 하느냐 아니면 헤설픈 이죽(해학)으로 빠지게 하느냐 그것을 가려보고자 한다는 말이다.
세 번째로 참된 무대 예술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다슬’이 있어야 한다. ‘다슬’이란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사람의 세상을 울리고, 모든 목숨이 다 죽는 잿더미를 뚫고 일어나는 들쑥, 그 소리 없는 소리다.
일제가 우리네를 짓밟고 있을 적이다. 열일곱 어린 가시나를 정신대로 끌고 가는 날, 애미 애비는 ‘쾌가다 칭, 쾌가다 칭’ 굿이나 하고 마을 사람들은 발만 구르고 있을 때 집도 없고 성도 없는 머슴 하나가 낫을 들어 왜놈들을 물리치고는 그 가시나를 살려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쑥대가 소리 없이 솟아올랐다. ‘쑥 쑥, 불쑥쑥.’
그러니까 그 소리 없는 ‘다슬’ 소리란, 주어진 판을 깨고 목숨의 판을 일구는 소리일지니 오늘의 무대 예술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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