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프랑스 파리 나폴레옹 3세 궁전 옆 튈르리 정원. 파리의 내로라하는 멋쟁이들이 다 모였다. 무리 중엔 훤칠한 키에 잘 차려 입은 화가 에두아르 마네,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부인 마담 마네도 보인다.
파리의 멋쟁이들이 튈르리 정원에서 매주 두 번씩 열리는 실외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다. 그 정경을 보여주는 마네의 작품 ‘튈르리 정원의 음악(La Musique aux Tuileries)’은 폭이 1미터가 조금 넘는 작은 유화 작품이다. ‘인상파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작이지만 워낙 작은 그림이라 마네의 다른 대표작들인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등에 비해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마네의 이 숨은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최근 런던 왕립미술원에서 열린 특별기획전 ‘마네: 삶을 그리다’(Manet; Portraying Life, 1월 26~4월 14일)를 통해서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는 방 하나 전체를 오직 이 한 작품을 위해 할애했다. 다른 작품들은 한 공간에 여러 개씩 걸렸지만 이 작품만은 방 하나를 독차지하는 특별 대우를 받은 것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인 이 그림은 사실 늘 공짜로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특별전에서는 수많은 유료 관람객들에 둘러싸여 있어, 그림 앞에 다가서기조차 힘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60여 점의 작품 중 ‘튈르리 정원의 음악’이 특별히 집중적으로 조명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비평가 보들레르의 철학과 그 철학에 영향을 받아 당대의 삶 자체를 그렸던 마네, 그리고 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 예술적 조력 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 조명되는 것은 이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지적 교류의 중심에 마네가 있었다는 점이다. 마네는 음악이 부재한 ‘튈르리 정원의 음악’ 속의 ‘상징적 지휘자’인 셈이다.
반쪽만 등장한 마네
음악이 부재되었다? 제목이 말하듯 그림의 주인공은 음악회이지만 오케스트라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오케스트라가 서 있을 자리에 있는 이들은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다.
‘상징적 지휘자’이자 ‘관객’이었던 그 자신을 대변하는 듯, 마네는 이 그림에 자신의 몸을 반만 포함시켰다. 그림의 가장 왼편에 서 있어 결국 반만 등장하게 된 그는, 군중 속에 자신을 반만 개입시킴으로써 관찰자로서의 예술가적 지위를 유지시켰다. 즉 마네는 이 정원을 거닐러 온 ‘한가한 행인(flaneur)’이었다.
친구였던 시인 보들레르가 이야기했듯이 예술가에게 있어 ‘거리 산책’은 19세기 파리에서 개념화된 사회적 유형이었다. 파리가 현대적 도시로 발전하면서 도회적 산책은 고상한 취미가 됐다. 이 근대적 공간 안에서 우아하게 군중을 관찰하며 산책하던 행인은 파리가 낳은 문화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마네가 그린 이 그림은 작가의 자화상이 포함된 ‘그룹 초상화’이자 일상을 그린 ‘장르화’이다.
그렇다면 마네는 왜 이 그림을 ‘튈르리 정원의 음악’이라 명명했을까. 음악회는 열리고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연주자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들은 어떤 음악을 들었을까.
왕립미술원에서는 때마침 전시 부대행사로 ‘마네와 파리 오페라’라는 강연을 열었다. 전시 큐레이터 메리앤 스티븐스와 왕립오페라의 일레인 패드모어는 19세기 중반의 마네와 마네를 둘러싼 음악에 대한 열띤 강연을 이어갔다. 강연 또한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로 시작했다.
“마네는 화면의 가장 왼쪽에 서 있어요. 그의 바로 앞에는 소설가 겸 비평가였던 샹플뢰리, 그 옆은 아스트뤼크, 보들레르가 그 왼쪽에 있고, 저 베일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인은 마담 마네였죠. 그리고 여기 오펜바흐가 보이네요.”
샹플뢰리는 그림이 그려지기 2년 전인 1860년,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책을 쓴 인물이다. 마네와 샹플뢰리 사이로, 마네와 같은 작업실을 쓰는 화가 드 발루아가 살짝 보인다. 그 세 명의 약간 옆으로 콧수염이 길게 난 자카리 아스트뤼크가 앉아있다. 그는 저자ㆍ비평가ㆍ편집장이면서 작곡가였고 스페인에 탐닉해 있었다. 마네의 스페인 여행 일정도 1865년 아쉬트뤽이 직접 짜준 것이다. 아쉬트룩 오른쪽 앞으로 최신식 정원 의자인 연철의자에 앉아있는 두 여인은 작곡가 오펜바흐의 부인과 레조네 부인이다. 레조네 부인이 주최하는 작은 살롱 음악회에서, 마네는 샤를 보들레르를 만났었다. 보들레르는 레조네 부인 뒤쪽에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두 여인과 등을 지고 앉은 부인이 마네 부인이다. 마네 부인은 그녀의 남동생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마네 동생의 어깨 너머로 작곡가 오펜바흐가 보인다.
단순한 사교 관계를 너머,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이들의 이해는 실제로 강력했다. 보들레르는 바그너를 옹호했다. 파리지앵의 삶을 오페라로 만들고, 개인 극장에서 공연을 열던 작곡가 오펜바흐의 공연장에 바그너도 가봤으리라. 이 그림에 있는 테오필 고티에는 그 누구보다 마네의 그림을 방어해줬다.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던 테오필 고티에는 마네 그림의 현대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그들이 나누었던 대화를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아마 그 대화에는 서로의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영감의 원천들이 있었으리라. 마네가 그린 ‘튈르리 정원의 음악’은 낭만주의 사조 아래에서 고독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예술적 천재들이 인상주의 초기로 넘어가면서 영감의 원천을 서로 공유하며 예술성을 함께 지피기 시작했음을 증명한다.
글 김승민(런던 이스카이 컨템퍼러리 아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