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기획’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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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7월 1일 12:00 오전

‘문화 기획’이라는 것
글 박준흠(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대중음악평론가)

2005년 8월에 열린 ‘세계평화축전’을 목격한 일은 내가 ‘문화기획’의 의미를 깨우치는 계기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계평화축전’을 진행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아름다운 임진각 ‘평화누리’와 그 안에 있는 미려한 야외공연장 ‘음악의언덕’을 포함한다. 이를 기획한 이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의 강준혁 원장이다. 임진각은 원래 북녘 땅을 볼 수 있는 전망대 시설인 임진각과 내부에 있는 음식점들, 그리고 그 옆 시멘트로 바닥 공사가 된 대형 주차장이 다였다. 그곳에 가보면 미학적으로 전혀 아름답지 않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공간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러한 곳에 축제를 할 수 있도록 십만 평의 땅 위에 대형 야외공연장을 조성한다니, 축제기획자인 나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소식이었다.
그해 8월 14일, 드디어 완공된 평화누리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말 그대로 ‘판타스틱’, 환상적이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아름다우면서 기능적으로도 훌륭하게 설계된 야외공연장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문화공간이 경기도라는 지자체의 예산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지자체의 예산으로 예술 분야의 일을 하려면 무수한 비합리적 간섭에 따른 우여곡절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꿋꿋하게 이겨내면서 ‘예술적인 상상’을 훼손시키지 않고도 본인이 원하는 바를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무엇보다 평화누리의 기획적인 키워드가 원래 ‘평온’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또 한 번 놀랐다. 사실 ‘평온’은 하나뮤직(1980년대를 풍미하던 싱어송라이터들의 모임)의 조동진·장필순의 후기 작품에서도 추구하는 바이고, 나 또한 나이를 먹고 나니 염원하는 바인데, ‘평화누리’를 처음 볼 때부터 좋아했던 이유가 바로 ‘평온’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기획을 잘 하려면 예산·일정·조직·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배치하고, 이를 간결한 ‘페이퍼워크’를 통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설득하는 재능과 같은 ‘기능적인 능력’이 필요하지만, 최상의 기획자가 되려면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결국 문화기획이란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평화누리, 음악의언덕’을 사유한 경험은 기획자로서 향후 방향성을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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