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아문 자리
10여 년 전, 허무하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가장 아끼는 존재를 떠올립니다. IMF의 회오리에 하늘 높이 솟아버린 검고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 중학교 입학부터 10년을 함께한 그 피아노가 내 결을 떠나던 날을 이제부터 아프게 회상합니다.
이미 음악을 관두고 대학에서 다른 공부를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피아노는 분명 내 삶의 묵직한 주춧돌이었습니다. 눈을 뜨면 만지고, 눈을 감기 전에도 만지는 본능 같은 바윗덩이. 사라지면 흔들릴 것이 자명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사건의 중심에 계셨던 아버지는 “참아야 한다” 당부하셨고, 어머니는 “미안하다” 우셨습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상관없어요”라고 답했습니다. 빠른 동의는 최선의 방어였습니다.
피아노가 떠나기로 약속한 날짜까지 며칠. 당장 제거하지 않으면 온몸에 독이 퍼지는 종기를 대하듯, 피아노를 싸늘히 바라보고 무심히 스쳤습니다. 10년을 만지고 연주했던 악기이니 나는 일찍이 인격 비슷한 것을 녀석에게 주었고, 어떻게든 정을 떼야 했습니다.
드디어 피아노가 떠나는 날. 다리와 몸통과 뚜껑이 갈가리 해체되어 내 방을, 집 밖을 나서는 그 모습을 바라볼 수는 없어 집안 가장 깊숙한 구석에 숨어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작업의 소음이 잦아들었습니다. 드디어 사라지는구나. 자리만 차지했던 돌덩어리, 패망한 자의 부질없는 기억 쪼가리.
귀를 막고 눈을 감았지만, 본능으로 알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다. 창가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창문을 덮은 두꺼운 커튼을 활짝 젖히지는 못했습니다. 커튼 뒤에 비겁하게 숨은 주인의 얼굴을 피아노가 바라보는 게 싫었습니다. 커튼 사이로 아주 작은 틈을 내 드디어 밖을 내다보았을 때, 나의 10년지기는 먼지 투성이 카펫에 칭칭 감긴 채 트럭 짐칸에 실려 어디로 향할지 모를 여행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은, 여전히 내 삶의 가장 큰 비극, 한 장면입니다.
요즘 들어 상처를 자꾸만 꺼내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통의 풍경을 매일처럼 떠올리고, 심지어 꿈에서도 반복하는 나는 지금 무엇이 두렵나요.
아뇨. 두려운 건 없습니다. 상처를 열어보는 이유, 아니 열어볼 수 있도록 스스로 허락한 이유는 이미 아물었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놓인 새 살은 비록 새 살이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누렇고 쭈글쭈글할지 모르지만, 더 두껍고 더 단단합니다.
상처를 입었나요.
걱정 말아요.
우리에게 여기,
더 단단한 살이 돋아납니다.
박용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