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드 파이의 비탈리 가문 작품집

베일을 벗은 비탈리 샤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0월 1일 12:00 오전


▲ ⓒJacques Verees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작곡가들 중에는 음악가 가문 출신의 작곡가들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바흐의 가문을 들 수 있겠지만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의 비탈리 가문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비탈리의 이름은 대개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란 홍보 문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샤콘의 작곡가로 친숙하다. 바로 그 샤콘을 작곡한 비탈리는 비탈리 가문의 아들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다. 그런데 오늘날 흔히 들을 수 있는 비탈리의 샤콘은 사실 비탈리 고유의 작품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다. 오늘날 흔히 연주되는 비탈리의 샤콘은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트가 비탈리의 악보를 바탕으로 대단히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으로 편곡한 곡이며, 다비트가 편곡을 위해 사용한 비탈리의 악보는 그의 작품인지 확실치 않다. 이 음반은 바로 문제의 ‘비탈리 샤콘’의 원본인 토마소 비탈리의 파트보(Parte del Tomabo Vitalino)로 시작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토마스 비탈리의 부친 조반니 바티스타 비탈리의 흥미로운 바이올린 곡들이 이어진다.
사실 샤콘으로 유명한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가 남긴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다. 12세 때 모데나 공의 궁정악단 바이올리니스트로 데뷔한 후 주로 연주자로서 활동하면서 훌륭한 제자들을 길러낸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는 그다지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부친 조반니 바티스타 비탈리가 작곡가로서 수많은 기악곡, 그리고 오라토리오, 칸타타를 남겼다. 이 음반은 많은 작품을 남긴 아버지 비탈리의 여러 기악곡, 그리고 샤콘을 비롯한 몇몇 소품들을 남긴 아들 비탈리의 작품을 나란히 배치하여 비탈리 부자의 음악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참신한 기획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타악기와 하프, 오르간 등 각종 악기와 함께하는 비탈리 부자의 곡들이 르네상스 음악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움으로 가득해 음반을 재생하는 내내 새로운 음악을 접하면서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다비트 편곡의 비탈리 샤콘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 음반의 첫 트랙을 장식하고 있는 토마소 비탈리의 파트보는 다소 소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음반을 들으며 바로 그 소박한 아름다움이야말로 비탈리 부자의 음악세계를 특징짓는 핵심적인 매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파니 드 파이의 연주도 낭만적인 감성보다는 소박한 맛을 전한다. 오늘날 비탈리의 샤콘이 연주되는 방식과는 달리 비브라토가 거의 없는 깔끔한 음색과 정확한 템포 속에 악구와 악구 사이를 정확하게 분절해내는 그녀의 연주는 비탈리 본연의 음악을 찾으려는 듯 단아하고 정갈하다. 또한 조반니 바티스타 비탈리의 작품에서 활약한 비올 주자 프랑수아 주베르 칼레의 베이스 비올 연주는 섬세하면서도 즉흥적인 열정을 담고 있어 가슴에 와 닿는다. 비탈리의 색다른 작품을 통해 티에리 고마르의 타악기 연주, 키토 가토의 테오르보와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음반이 선사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그 외 뱅자맹 글로리외의 첼로, 마리옹 푸르키에의 하프, 리오넬 데스묄의 오르간 연주가 함께 한다. 흔히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과 색다른 음향세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음반은 매우 귀한 자료가 될 것 같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 스테파니 드 파이(바이올린)/프랑수아 주베르 칼레(비올)/키토 가토(테오르보·기타)/티에리 고마르(타악기)/클레마티스
Ricercar RIC 326 (DD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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