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맺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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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1월 1일 12:00 오전

“이것은 나의 슬픔이 맺은 열매요.” 말러가 ‘탄식의 노래’를 두고 했던 말이다. 칸타타 ‘탄식의 노래’가 완성된 것은 1880년, 그가 스무 살 때였다. 처음에는 오페라로 구상했다가 독창과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칸타타가 되어버린 ‘탄식의 노래’. 작품의 골격은 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다. 숲 속 여왕과 결혼하기 위해 여왕이 원하던 붉은 꽃을 찾고 있던 형제 가운데 착한 동생이 그 꽃을 찾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형이 동생을 죽이고 꽃을 빼앗아 여왕과 결혼하려 하지만, 양치기와 음유시인들의 피리가 된 동생의 뼈가 슬픔을 노래해 결국 형의 죄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말러는 독일 민화집과 동화에 등장하는 비슷한 종류의 여러 이야기들을 참조해서 직접 스토리를 구성하고 가사를 썼다. 그런데 왜 하필 형제 살인이었을까. 그것은 5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 에른스트 때문이었다. 몇 달 동안이나 병상을 지켰지만 보람도 없이 사랑하는 동생은 눈을 감고 말았다. ‘탄식의 노래’ 악보 곳곳에는 말러가 낙서처럼 휘갈겨 쓴 ‘에른스트’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혈육을 잃은 상심과 비탄,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말러의 그 깊은 아픔을 이제 나도 안다. 어둡고 긴 터널 같은 시간들을 지나오며 내 가슴속에도 단단한 씨앗 하나가 자라는 느낌이 든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떠난 혈육은 내게 새로운 기준을 던져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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