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코네(2)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음악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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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1월 1일 12:00 오전

‘미션’의 선물, 그리고 ‘시네마 천국’의 마법
영화 ‘미션’을 만나기 전에도 엔니오 모리코네는 훌륭한 영화음악 작곡가였다. 1960년대에는 ‘황야의 무법자’ 이후 세르조 레오네와의 공조를 빌어 전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우대되었다. 1970년대 중, 후반부터는 이탈리아·프랑스·구서독 합작영화 ‘1900년’(1976),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천국의 나날들’(1978)과 공포영화 ‘엑소시스트2’(1978), 그 밖에 ‘아일랜드’(1980) ‘사하라’(1983) 등에 그의 섬세한 악곡이 스며들었다. 단순하지만 뚜렷한 인상을 지닌 선율, 팝과 아리아, 오케스트라의 혼용을 중심으로 서술된 그의 영상시는 명백하게 진화를 거듭했다. 더불어 그의 명성도 이탈리아, 유럽을 넘어 영화의 절대자본 할리우드로 이동해갔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존재감이 최고의 영화음악 작곡가·멜로디 메이커라는 명예를 수여 받게 된 본격적 시점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와 ‘미션’(1986)을 순산했던 1980년대 중반이었다. 특히 ‘미션’에서 보여준 그의 다채롭고도 장엄한 작법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했다. 유럽을 잠식했던 엔니오 모리코네가 영국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하고, 처음 아카데미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된 것은 부속의 답례품이었다. ‘미션’ 이후 엔니오 모리코네를 향한 뜨거운 러브콜이 쏟아졌다. 1987년 영화 ‘언터처블’에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진가는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 케빈 코스트너·로버트 드니로·숀 코너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에서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 스타카토 주법을 적극 차용한 스트링, 목관과 금관의 명확한 대비, 질주하는 듯한 퍼커션을 사용하여 영화의 긴장과 드라마를 한층 고조시켜주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또다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아쉽게도 응답은 없었다.
세르조 레오네의 건강 악화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이후 더 이상의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할 때, 엔니오 모리코네는 새로운 소울메이트를 만나게 된다. 그 첫 번째 인물은 ‘미션’으로 최대의 음악적 수혜를 누렸던 영국 출신의 영화감독 롤랑 조페였다. 둘은 ‘미션’ 이후 ‘멸망의 창조’(1989) ‘시티 오브 조이’(1992) ‘바텔’(2000)에서 함께 했다. 또 다른 연인은 ‘시네마 천국’(1988)에서 처음 조우한 이탈리아의 신예 영화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였다. ‘시네마 천국’은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의 고유한 미덕인 ‘한번 들으면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효과가 극대화된 작품이었다. 소년 토토와 늙은 영화기사 알프레도의 우정을 매개로 노스탤지어와 사랑의 감성을 따뜻함, 애잔함, 풋풋함으로 공감케 했던 이 영화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그려낸 음악의 완전한 뮤직비디오가 되어주었다. 바이올린 1과 2 사이의 리듬 분할 속에 바이올린 1이 주선율을 그리고, 그 후면으로 첼로의 장난스러운 선율을 덧붙이는 ‘Main Theme’와 이의 변주곡들은 토토와 알프레도의 우정과 성장의 이면을 완벽하게 입체화시켰다. 각각의 현악부들이 독립적인 멜로디를 지닌 채, 화성적으로 결합된 ‘Love Theme’는 토토와 엘레나의 사랑과 이별의 추억을 애틋함으로 전해주었다. 스물여덟 살 터울의 엔니오 모리코네와 주세페 토르나토레는 이후 ‘스타메이커’(1995)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 ‘말레나’(2000) ‘언노운 우먼’(2006)에서 영상과 음악의 일체감을 거듭 안겨주었다.

‘러브 어페어’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1990년대를 즈음하여 엔니오 모리코네는 의뢰된 작품을 선별하여 시나리오와 작곡의 개연성을 숙고할 수 있게끔 창작의 조건을 바꾸었다. ‘시네마 천국’ 뒤에는 롤랑 조페 감독과 재회하여 ‘멸망의 창조’(1989)를 함께 했고, 영국, 프랑스, 스페인의 합작 영화 ‘햄릿’(1990)에서는 서사적인 교향곡을 선보일 기회가 마련되었다. 1991년에는 배우 겸 감독 워런 비티의 간청으로 ‘벅시’(1991)의 영화음악을 맡았다. 그는 서정과 긴장의 치환, 다채로운 관현악 기법의 사용으로 영화의 배경인 미국의 1920~1930년대 시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벅시’를 통해 엔니오 모리코네의 세 번째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으로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오스카 트로피는 엔니오 모리코네를 외면했다. 1992년 롤랑 조페 감독과의 세 번째 작품 ‘시티 오브 조이’에서 그는 예의 주옥 같은 멜로디, 다채로운 시감각적 기법을 활용하여 ‘미션’의 감동을 재현시켜주었다. 1993년에는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은 영화 ‘사선에서’를 담당했다. 그해에 엔니오 모리코네는 또다시 전 세계 영화 팬, 음악 팬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명곡을 남겼다. ‘벅시’에서 엔니오 모리코네를 원했고, 영화를 통해 새로운 연인 아네트 베닝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워런 비티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러브 어페어’의 음악이었다. 이 영화에 백미는 극중 숙모로 나오는 캐서린 헵번의 피아노 솔로와 그 속에 차분히 스민 아네트 베닝의 허밍이었다. ‘Piano Solo’라고 명명된 이 곡의 순연한 아름다움만으로도 평범한 멜로 영화는 두고두고 가슴에 맺히는 명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주었다.
주세페 토르나토레도 자신의 영화에 엔니오 모리코네의 필체가 스미기를 원했던, 충성스러운 고객이었다. 1995년 작 ‘스타메이커’에서는 이렇다 할 히트곡을 생산하지 못했지만, 1998년 작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영화 사운드트랙에서 한 곡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명곡들이 즐비한 음악영화였다. 1900년대 초반 영국과 유럽을 오가는 유람선에서 평생을 살았던 피아노의 천재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영화에서 엔니오 모리코네는 활동 초기부터 능동적으로 수용했던 재즈적 기법을 흡입하여 영화의 흥미로운 관전을 끌어냈다. 초절기교의 테크닉을 장착한 피아노 배틀 ‘Magic Waltz’와 래그타임 피아노의 명곡 ‘Crave’, 수려한 현악 편곡이 돋보이는 ‘Silent Goodbye’, 감미로운 사랑의 감흥을 나비의 날갯짓처럼 그려낸 ‘Playing Love’ 등 미국의 신세기를 장식했던 음악적 토대를 폭넓게 담아냈다. 토르나토레-모리코네 콤비가 다시 의기투합하여 만들어낸 2000년 작 ‘말레나’도 영화음악의 숨은 명작으로 기억될 만한 작품이었다. 현악 앙상블의 대위법적 진행, 간결하고 인상적인 멜로디를 함유한 주제곡도 아름다웠지만, 소품 형식의 오케스트라와 재즈적 기법을 대비시킨 전체의 구성미는 비장함을 지니고 있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주특기인 전조를 통한 상승 효과, 목관악기의 음색 강조, 첼로의 장중한 솔로, 어쿠스틱 기타, 이탈리아 민속악기의 효과적인 차용 등은 오랜 시간 지켜온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곡 기법을 망라하고 있는 듯했다. ‘말레나’를 통해 엔니오 모리코네는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에 후보로 올랐지만, 네 번째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아카데미 평생 공로상, 쿠엔틴 타란티노,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1990년대 후반부터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의 주요한 특징은 현악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정숙하고 우아한 선율미를 드러내는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작품 외에도 ‘로리타’(1997)에서 세심한 대위법적 현악 편곡으로 묘사한 ‘Love In The Morning’은 금지된 사랑을 순수한 사랑의 감정으로 느끼게끔 해주었다. 바이올린을 통한 운명적 사랑을 주제로 한 음악 영화 ‘캐논 인버스’(2000)에 삽입된 ‘Canone Inverso Primo’ ‘Tema D’amore Disperato’ ‘Intermezzi’ 등에서 사용된 현악의 선율미, 주제부의 반복을 전조와 선율의 변화를 통해 강조하여 영화의 흐름, 내러티브의 연결을 통일감 있게, 그리고 독립적으로 이끌어냈다.
1970년대 후반, 80대의 노구로 21세기를 맞이하게 된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2000년대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음악 작곡가”라는 객관적 평가가 더해지는 영예로운 시간이었다. 그는 녹슬지 않은 필력으로 2000년 ‘캐논인버스’ ‘말레나’ ‘미션 투 마스’ ‘바텔’을 연이어 서술했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주로 이탈리아의 영화에서 섬세하고 유려한 색감으로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켜 주었다. 2003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액션 영화 ‘킬빌2’에서 그의 초기 작곡이 새로운 평가를 얻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다. 거친 영상미의 스타일리스트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의 영화에 사용될 음악을 직접 선택하고 선곡해왔던 인물이었다. 그는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로 엔니오 모리코네를 지목하였고, 영화감독 데뷔를 할 때부터 함께 작업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결국 타란티노의 꾸준한 정성은 영화 ‘킬빌2’에서 소원을 풀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를 동경했던 쿠엔틴 타란티노가 무협지 같은 액션 영화를 표방했던 ‘킬빌2’에서 엔니오 모리코네의 초기 작품 ‘황야의 무법자’(1964), ‘나바조’(1966)에 사용되던 세 곡이 재수록되었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영화음악 전체를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구애는 이어졌고, ‘바스터즈-거친 녀석들’(2009)에서도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곡 네 곡을 사운드트랙에 담고, 음반에는 수록되지 않은 곡까지 포함하면 총 아홉 곡의 작품이 영화에 사용될 수 있었다. 플라멩코 기타와 유대 휘슬이 사용된 거친 사운드는 음악적으로 크게 조명되지 못했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초기 작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2013년에 개봉되었던 최근작 ‘장고-분노의 추격자’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엔니오 모리코네를 향한 오마주는 이어졌다. 그러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2013년의 3월, 이탈리아에 소재한 어느 대학의 특강에서 “타란티노는 자신의 작품에서 음악을 일관성 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작업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 주세페 토르나토레와의 다섯 번째 협작 ‘언노운 우먼’에서 더욱 정갈해진 오케스트레이션과 화성적 감각을 선보였던 엔니오 모리코네는 그동안 자신의 존재를 외면했던 아카데미로부터 사과와 용서의 선물을 받았다.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은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평생공로상을 바치며, 그가 영화음악 작곡가로 바친 40여 년의 시간과 위대한 업적에 감사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셀린 디온·안드레아 보첼리·퀸시 존스·메탈리카 등이 대거 참여한 헌정 앨범 ‘We All Love Ennio Morricone’도 발표되었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2007년·2009년·2011년 세 차례의 내한 공연을 통해 스스로 직조했던 음악을 직접 지휘하며 한국의 팬들을 만났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로 손꼽히는 엔니오 모리코네를 둘러싼 불명예스러운 키워드는 부산국제영화제였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는 엔니오 모리코네를 개막식에 초청했지만, 주최 측이 대선후보들의 경호에 치중하는 사이 그가 20여 분 동안 비를 맞으며 레드 카페트로 입장하지 못하는 촌극이 있었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후의 일정을 취소하고 아쉬움과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소문이 났다. 수많은 영화·음악 팬들이 주최 측을 비난했고, 이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사과와 해명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여든여섯의 나이에도 변치 않는 창작열로 자신의 영화음악 필모그래피의 마지막 부분을 채워가고 있는 엔니오 모리코네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다. 둘째 아들 안드레아 모리코네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사랑의 테마 작곡가로, 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세기의 명작을 편곡했다. 안드레아 모리코네는 ‘아름다운 언약식’(2000), ‘인콰이어리’(2006), ‘마이 뷰티풀 컨트리’(2012) 등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고, 뮤지컬로 제작되는 ‘미션’의 편곡·음악감독·지휘자로 참가하여 아버지의 위대함을 계승하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 흘렸던 시간은 참으로 많았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황야의 무법자’의 이국적인 휘파람 소리는 망토를 걸치고 시가를 물고 있는 서부 사내와 그 뒤를 감도는 모래바람이 연상될 만큼 묘사적이다. ‘미션’의 ‘Gabriel’s Oboe’를 들으면 제러미 아이언스가 오보에를 불고, 그 곁으로 인디언들이 조심스레 모여드는 장면이 자동으로 피어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Deborah’s Theme’을 들으면 열쇠 구멍 틈 사이로 소녀의 춤을 엿보던 소년의 감정이 곧게 전달된다. ‘시네마 천국’에 흘렀던 메인 테마는 토토를 태운 알프레도의 자전거를 보듯 흐뭇한 미소를 그리게 한다. ‘러브 어페어’의 ‘Piano Solo’를 들으면서 그 처연한 멜로디를 쫓아 흥얼거리며, 정체 모를 한숨이 새어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모든 작용들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에서만 누릴 수 있는 공감감적인 현상이다. 그만이 지녔던 지고지순한 선율미, 음색의 강조, 현악과 목관 악기의 대비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미묘한 마법이다. 1895년 처음 영화가 태어난 이래, 120년에 가까운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그만큼이나 위대한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명멸했음에도 그들 모두를 제치고 아직도 생존해있는, 단 한 번도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지 못한 엔니오 모리코네를 ‘20세기의 클래식’의 반열에서 영화음악 작곡가 중 가장 먼저 소개하는 이유와 명분은 거기에 있다. 그의 음악이 지닌 마법의 힘 때문이다. 한 번만 들어도 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영화의 장면이 절로 투사되는, 공연한 감상으로 절로 눈물이 나고 웃음 짓게 만드는.

글 하종욱(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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