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에 영화팬들 만큼이나
음악 애호가들이 큰 애도를 표했다. 바로 이 영화 때문이다
글 신지윤 사진 티캐스트
배우 필립 시모어 호프먼(1967-2014)이 헤로인과 약물 남용으로 2월 2일 뉴욕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비단 영화인들뿐만이 아니다. ‘카포티’(2005)에서 작가 트루먼 커포티를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그이기에 그의 죽음은 문학 애호가들에게도 슬픈 일이다. 필립 시모어 호프먼이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 영화 ‘마지막 4중주’의 제2바이올린 주자를 기억하라. ‘제2바이올린’이라는 위치는 영화 내내 ‘로버트’라는 극중 이름을 대신할 정도로 그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영화 ‘마지막 4중주’(2013)에서 그가 몸담은 푸가 현악 4중주단은 25년간 멤버 교체 없이 3천 번의 연주를 치렀다. 팀의 기둥인 첼리스트 피터, 예민한 감수성의 비올리스트 줄리엣, 완벽주의자 제1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의 연주에 로버트의 제2바이올린 연주가 더해진다. 줄리엣과 로버트의 딸인 알렉산드라는 아버지의 연주가 전체에 색·리듬·질감을 더한다고 평한다. 완벽한 푸가는 피터가 파킨슨 병 초기 진단을 받자마자 여태까지의 팀워크가 무색하게 휘청거린다. 줄리엣과 로버트의 부부 관계는 삐걱거리고, 엉뚱하게 알렉산드라와 대니얼이 사랑에 빠진다. 연주자 부모님을 둔 탓에 외롭게 성장한 알렉산드라는 어머니를 향한 서운함을 공격적으로 쏟아낸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항상 냉철한 대니얼에게 로버트가 항의하듯 토해낸 “너의 열정을 드러내라”라는 충고가 알렉산드라와 대니얼의 동침에 도화선이 된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드라와 대니얼의 엉뚱한 관계는 아버지인 로버트에게 다시 상처가 된다.
로버트가 부인인 줄리엣에게 자신이 지난 25년간 푸가 현악 4중주단과 줄리엣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희생했는지 이제 알아달라며 눈물을 글썽일 때, 우리는 25년간 한 팀으로 3천 번의 공연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지난해 아내를 잃고 파킨슨 병에 걸린 피터도, 로버트의 외도와 함께 딸과 대니얼의 관계를 눈치 챈 줄리엣도, 사랑하는 알렉산드라를 포기해야 하는 대니얼도 힘들다.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푸가가 만들어내는 조화가 좋고 줄리엣을 사랑해 자신의 꿈을 접었던 로버트가 끝내 흘리지 못한 눈물은 그를 연기했던 호프먼이 죽었기 때문일까, 유난히 슬프게 느껴진다.
그들이 피터의 은퇴 무대를 위해 함께 연주해야 하는 곡은 7악장으로 이루어진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 Op.131이다. 대니얼의 설명처럼 작곡가들은 영혼 깊숙한 곳을 표현하기 위해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는데,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이 작품에는 멈추지 말고 연주하라는 지시가 붙어있다. 그런데 당장 다음 주에 마음을 맞춰 공연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싸운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공연을 취소하거나 무대 위에서 쉴 수 없다. 우리가 시간을 멈추고 인생을 쉴 수 없듯이 말이다. 피터는 세상을 미리 떠난 부인(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본 오테르가 부인 역으로 특별출연했다)을 추억하고, 줄리엣은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마치 거울 들여다보듯 감상하고, 대니얼은 알렉산드라를 떠나보내고, 로버트는 수염을 말끔하게 깎는다. 무대 위에 서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이다.
공연 중 피터는 갑자기 연주를 멈춰 자신의 은퇴를 선언하며 베토벤의 지시와 달리 잠시 쉴 수밖에 없음을 청중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바로 다른 연주자를 소개하며 자신의 자리에 그녀를 앉힌다. 무대를 떠나는 피터의 뒷모습에 청중이 기립 박수를 보내듯이 필립 시모어 호프먼에게도 이 고별이 휴식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2013년 7월 국내 개봉한 ‘마지막 4중주’는 이제 DVD와 블루레이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