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스가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일합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생전의 어록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카라얀의 권위주의에 짓눌려 있던 베를린 필하모닉에 1989년 비독일인으로는 최초로 이탈리아인 아바도가 입성한 직후, 단원들은 새 지휘자의 고백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보다 21년 앞서 아바도는 고향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는 당시 라 스칼라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던 ‘폭군’ 토스카니니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항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독재형 지휘자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민주적인 소통을 최선의 덕목이라 굳게 믿었던 아바도가 2014년 1월 20일 81년의 삶을 마감했다. 다음 날 볼로냐 시민의 정신적인 성지인 성 스테파노 대성당에서 엄수된 장례식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일주일 뒤 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거장을 위한 고별 연주회가 열렸다. 극장 안에는 단 한 명의 청중도 없었지만 극장 밖 스칼라 광장에는 수천 명이 서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현 음악감독 바렌보임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의 ‘장송행진곡’을 20분 동안 느린 템포로 지휘하며 선배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한편 아바도 자신의 마지막 콘서트는 2013년 8월 26일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다.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심포니 콘서트 7’로 명명된, 축제 중에 자신이 맡았던 총 5회의 공연 가운데 마지막 회였던 그날 프로그램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브루크너의 ‘백조의 노래’인 교향곡 9번이었다. 타계 나흘 전까지 아바도는 이미 속속들이 외우고 있던 슈만의 교향곡 3번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차르트 오케스트라의 디렉터 마시모 비스카르디는 이를 보고 여든 살의 아바도가 열여덟 살의 학생처럼 공부하고 있었다며 경탄했다. 아바도가 마지막으로 공부한 작곡가는 슈만이었던 셈이다.
필자는 지금 아바도가 1985년 런던 심포니를 지휘한 멘델스존의 교향곡 2번 ‘찬가’를 듣고 있다.
“나는 주를 기다립니다. 내게 호의를 베풀어 나의 애통함을 들어주시고….”
5악장, 소프라노 2중창은 ‘듣는 지휘자’ 아바도의 손끝에서 기도로 피어나고 있었다. 말러·베르디보다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4대 카펠마이스터로서 단원복지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멘델스존이야말로 아바도에게 제격이다.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