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루클린& 로어이스트사이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이민자와 마약, 알코올 중독자가 사는 동네엔 필연적으로 예술가들이 모인다. 여기에 예술을 소비하는 힙스터들이 정착하면 그 동네는 창의적인 에너지가 폭발하는 도시의 중심지가 된다. 우리가 지금 로어이스트사이드와 브루클린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맨해튼 미드타운의 한 부티크 호텔. 스페셜티 커피로 유명한 카페에서 주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레인 스콘이랑 콜드 브루(cold brew) 커피 한 잔 주세요.” 발음이 매끄럽지 않자 점원이 못 알아듣는 눈치다. 미간을 찌푸리고 주문을 재촉한다.
“다시 말해줄래? 뭐라고?”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킨 후에야 주문이 겨우 접수됐다. ‘그래. 내가 너 바쁜 거 안다. 그렇다고 인상 긁을 건 뭐야?’ 생각해보니 서울에선 나도 그랬다. 카운터 앞에서 적립 카드를 찾겠다고 뭉그적대는 이들에게 자비 없는 짜증을 부린 적이 부지기수. 여긴 서울보다 더 바쁜 뉴욕이므로 여자의 반응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불쾌는 계속됐다. 맨해튼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영어가 서툰 뉴욕 초행자는 그 도시 사람들에게 꽤 성가신 존재다. 박물관과 레스토랑, 카페와 거리에서 누군가의 30초를 빼앗지 않기 위해, 분주한 이들의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삐친 마음을 달래준 건 아랫동네, 강 건너 마을이다. 로어이스트사이드와 브루클린. 시작은 이랬다. ‘미디어뿐 아니라 여행자와 블로거가 수시로 정보를 실어다 나르는 뉴욕에 신선한 이슈가 있을까?’ 이 고민을 듣고 뉴욕에 살다 온 이, 또 살고 있는 이들이 두 지역의 이름을 슬며시 내밀었다. 몇몇은 기대, 몇몇은 우려와 함께.
‘이민자의 집단 거주지. 마약과 알코올에 찌든 이들의 아지트, 거리에선 악취가 진동하며 밤에 다니면 위험할 수 있음.’ 불과 몇 년 전 로어이스트사이드와 브루클린 앞에 붙었던 수식어 앞에서 표정 관리가 안 됐다. 그때 뉴욕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친구가 나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 마. 그래도 재미있을 거야.” 굳은 얼굴 풀 새도 없이 바로 이어지는 경고. “대신 브루클린에서는 절대 혼자 다니지 마. 그린 포인트나 부시윅은 아직 여행객들이 많이 드나드는 동네가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어. 윌리엄스버그는 괜찮겠지만.”
처음 듣는 동네 이름 앞에 협박이 더해지니 겁이 좀 났다. 역마살 낀 자의 호기심은 기구하게도 늘 걱정, 위험지수와 따로 놀아서 일단 가기로 했다. ‘타임아웃’이 ‘지금 뉴욕에서 가장 세련된 지역’으로 꼽은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출발, 윌리엄스버그 브리지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넘어가는 여정을 짰다. 뉴욕 경제와 행정의 중심은 여전히 맨해튼이지만 문화와 예술의 중심은 나날이 아래로 남하하고 있다.

뉴욕의 착한 동네, 로어이스트사이드 거닐기

로어이스트사이드는 듣던 대로 거칠었다. 뉴욕 지하철역에 진동하는 소변 냄새가 길거리에서 났다. 험한 장면 사이로 변화한 풍경들이 보였다. 한 세기 전 이민자들이 문을 연 피클 가게, 생선 상점은 세련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이나 편집 숍이 됐다.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벽난로에 나무 상자며 가구를 땔감으로 넣어 겨우 난방을 하고 깡통 통조림과 밀크셰이크로 연명했던” 기차 칸 아파트는 이제 예술가들이 앞 다퉈 입주하고 싶어 하는 작업실로 변모했다. 바워리 거리에 뉴 뮤지엄이 입성한 후 로어이스트사이드는 맨해튼에서 소호와 같은 지위에 올랐다.
브루클린의 첫인상은 더했다. 부스러져가는 벽돌 건물, 깨진 창문, 인적 드문 거리,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 브루클린은 맨해튼 택시 기사도 안 간다는 귀띔이 떠올랐을 때 갈등했다. ‘대충 찍고 그냥 갈까?’ 그래도 브루클린은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가 수시로 애정을 드러내는 곳이자 뉴요커들이 ‘리얼 뉴욕’으로 여기는 동네다. ‘대낮에 총 맞기야 하겠어?’ 안심할 구실을 억지로 찾고 호기롭게 골목을 누볐다.
걱정과 달리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랫동네 사람들은 호기심의 양만큼이나 친절했다. 컵케이크 가게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맛을 미주알고주알 고하며 ‘꼭 먹어봐야 할 리스트’를 짜준 아줌마, 걷는 사람을 붙잡고 난데없이 동네 역사를 설명해주던 카페 주인, 사진 찍을 때마다 장난스럽게 프레임에 침입하던 동네 소년들… 브루클린엔 자기 곁과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뉴요커가 있다. ‘바쁘니 빨리 말해’, ‘내 앞에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좀 비켜’ 따위의 메시지가 읽히는 눈빛을 이 동네에서 본 적이 있던가?
뉴요커들이 ‘엘프’ ‘트립어드바이저’ 같은 리뷰 사이트에서 로어이스트사이드나 브루클린을 평할 때 유난히 자주 쓰는 단어, ‘이웃 친화적인’은 형식적인 칭찬이 아니다. 지금 뉴요커는 겉은 까칠하지만 속내는 보드라운 뉴욕의 착한 동네들로 움직이고 있다.

부시윅으로 간 젊은 예술가와 힙스터

뉴욕의 새로운 트렌드는 힙스터의 자취에 있다. 주류 문화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자발적인 아웃사이더. 인디 문화와 음악,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일반 대중과 자신을 구분 짓는 데서 지적 우월감을 갖는 부류인 힙스터. 윌리엄스버그가 소호만큼이나 뜬 것도 힙스터들의 이동과 관련이 깊다. 1970년대에 넓은 공간을 저렴한 임대료로 빌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된 인디 크리에이터들이 윌리엄스버그로 향하면서 1980년대, 이들의 작업을 소비하는 힙스터가 함께 흘러들어온 것이 오늘의 윌리엄스버그를 만든 공신. 1990년대 이후엔 상업화와 대중문화의 유입으로 색이 옅어졌으나 아직까진 인디 음악과 예술, 힙스터 문화의 중심지로 유효하다.
부시윅은 그야말로 미지의 지구다. 윌리엄스버그 남쪽에 위치한 흑인, 히스패닉 빈민층 주거지. 뉴욕에서 만난 이들에게 “부시윅 알아? 가봤어?” 하고 물었을 때 열다섯 중 열두 명이 “모른다. 안 가봤다” 혹은 “위험하다. 가지 말라”라고 했다. 긍정한 세 명 중 한 명과 동행하여 사람들이 가장 붐빈다는 토요일 낮에 부시윅을 찾았다. “여기서부턴 혼자 다니지 말아요. 나도 좀 불안해….” 미국 생활 4년 차인 그 남자는 가뜩이나 겁에 질린 마음에 콩알탄을 던졌다.
기우였다. 간간이 보이는 이민자들의 호기심 어린 고갯짓을 빼곤 분위기가 좋았다. 볕이 밝았고 맨해튼에서 놀러오는 이들이 많은 주말이기도 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느낀 것보다 좀더 위험한 곳일지라도 부시윅은 꼭 가봐야 할 뉴욕이다. 순도 높은 힙스터, 젊고 싱싱한 아티스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빈 벽을 가득 채운 그래피티의 수준은 문외한이 봐도 키스 해링·바스키아·뱅크시의 성취에 뒤지지 않는다. 난생처음 보는 모양(?)의 사람들, 압도적인 그래피티 작업들에 넋을 뺏겨서 다음 날 혼자 또 놀러갔다.
2008년부터 시작된 젊은 뉴요커의 이동은 자연스럽게 부시윅의 상권을 활성화시켰다. 초기에 정착한 레스토랑 노스 이스트 킹덤의 오너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윌리엄스버그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부시윅에서 재현되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타임아웃’은 부시윅을 ‘윌리엄스버그나 그린포인트처럼 고급화의 과정 위에 있는 동네’로 평했다. 때 묻지 않은 부시윅, 뉴욕의 초심을 목도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글 류진(더트래블러 기자) 사진 이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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