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오 비온디 & 살바토레 아카르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5월 1일 12:00 오전

찬란한 이탈리아 음악을 만날 시간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폭풍 같은 ‘사계’ 연주, 그리고 ‘파가니니의 재래’로
수식되는 아카르도의 연주를 잇달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왔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음악회가 많은 달이다. 어느 해보다도 올해 5월에는 좋은 음악회가 유난히 많아 음악 애호가들도 바빠질 것 같다. 특히 서울국제음악제를 통해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잇따라 내한해 관심을 모은다. 5월 7일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연주회에 이어 18일에는 세계 정상의 비르투오소 살바토레 아카르도의 리사이틀이 열린다.
비온디와 아카르도. 사실 두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연주법이나 스타일은 매우 다르다. 그래서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내한 공연은 더욱 흥미롭다. 비온디는 연주 레퍼토리의 80퍼센트 이상이 17·18세기 바로크 시대의 음악일 뿐만 아니라 바로크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고악기 전문 연주자다. 반면 아카르도는 현대의 개량악기를 사용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이후 주로 파가니니 연주로 주목 받아온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다. 아마도 두 바이올리니스트를 옛 이탈리아 거장에 비유한다면 각기 비발디와 파가니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붉은 머리 사제의 혼을 일깨울 비온디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 그중에서도 비발디의 음악을 특히 사랑한다는 비온디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에우로파 갈란테와 함께 비발디의 작품만을 연주하며 비발디 음악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전할 예정이다. 연주곡목 중에는 1990년 창단된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이름을 널리 알린 비발디의 ‘사계’도 포함돼 있다. 50만 장의 음반이 팔려나갔다는 바로 그 폭풍 같은 ‘사계’ 연주를 실제 공연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협주곡 ‘라 스트라바간차’, 현과 통주저음 악기를 위한 신포니아 G장조, 오페라 ‘그리셀다 서곡’ 등 작곡가 비발디의 다양한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충실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지난해에도 ‘올 비발디’ 프로그램으로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선보였는데, 그들의 해외 공연을 두고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가 붉은 머리 사제의 음악에 거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라는 평가가 눈에 띈다. 여기서 ‘붉은 머리 사제’란 물론 비발디를 뜻한다. 일찍이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의 길에 들어섰으나 몸이 약한 탓에 고아원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비발디는 뛰어난 음악가로 명성을 누리며 ‘붉은 머리 사제’라 불렸다. 비발디는 바이올린 협주곡만도 200곡 넘게 남겼고, 그중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비발디 음악 특유의 밝고 화창한 매력에 더해 계절에 대한 뛰어나 묘사력까지 지니고 있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명곡이다.
비온디의 명성이 바로 비발디의 ‘사계’ 연주로부터 시작됐던 만큼 이번 내한 공연에서 비발디 ‘사계’ 연주는 가장 기대해볼 만하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 음반이 발매된 이후, 아찔한 속도감과 다소 과장된 다이내믹, 화려한 장식음으로 록음악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사계’ 연주는 이 시대 연주자들의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절 케네디의 파격적인 ‘사계’와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아노 카르미뇰라의 또 다른 원전 ‘사계’가 탄생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비발디 ‘사계’ 연주의 정석을 보여주던 이 무지치도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다. 에우로파 갈란테 단원이던 프란체스카 비카리가 이 무지치에 입단하면서 이 무지치의 바로크 음악 연주도 확 달라졌다. 이제 비온디의 ‘사계’ 음반 발매 이후 24년이 지난 지금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 연주도 한결 성숙하고 무르익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가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연주로 이 시대의 트렌드를 주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비온디가 언제나 자극적이고 과격한 연주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의 바이올린 소리에 귀 기울여보면 그 음색 자체가 결코 거칠거나 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아름답고 잘 다듬어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활의 힘을 세심하게 안배하는 섬세한 운궁, 음 하나하나에 미묘한 음영을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비브라토, 귀를 간질이듯 관능적으로 표현된 장식음으로 하나만 들어보아도 비온디가 하나의 작품을 연주할 때 얼마나 그 작품을 세심하게 연구하고 적절한 소리로 표현해내려 애쓰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비온디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300여 년 전 옛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을 현대인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음악으로 재해석해낸 일이라 하겠다. 비온디의 노력으로 도서관에서 잠자던 옛 악보들은 이 시대 음악으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로카텔리·제미니아니·베라치니·스카를라티 등 비발디에 비해 일반인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탈리아 바로크 거장들의 명곡들이 생생하게 이 시대의 음악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쯤 되면 비온디를 단지 바이올리니스트라 부르기는 어딘가 부족한 듯하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이며, 평생 수많은 작품을 쓰며 음악에 헌신했던 비발디를 닮은 음악가다.


▲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

우리시대에 환생한 파가니니, 아카르도

비온디가 비발디를 닮았다면 아카르도는 파가니니를 연상시킨다. 이미 10대의 나이에 각종 국제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완벽한 기교와 놀라운 표현력으로 파가니니의 난곡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해내는 아카르도의 연주를 듣다 보면 절로 파가니니가 연상된다.
19세기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거장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릴 정도로 초인적인 기교를 구사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연주 기교와 음악 세계를 더욱 잘 보여줄 수 있는 독창적인 바이올린 작품들을 작곡해 바이올린 연주법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바이올린 연주사에 있어 파가니니는 예수 그리스도에 비길 만하다. 바이올린 연주법은 파가니니 이전과 파가니니 이후로 명백히 나뉘기 때문이다.
아카르도는 마치 현대에 환생한 파가니니인 양 온갖 기교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선율 악기 바이올린으로 두세 음들을 한꺼번에 그으며 화음을 연주하는가 하면, 오른손으로 활을 그으면서 동시에 왼손가락으로 줄을 재빠르게 퉁기고, 활을 튀어 오르게 하며 활기찬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파가니니의 기교적인 작품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선율을 마치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의 선율처럼 서정적으로 소화해낸다. 난해한 기교를 소화해내면서도 이탈리아 음악의 본질인 ‘노래’를 잊지 않는 아카르도의 연주를 들으며 그가 진정 파가니니의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비온디가 비발디의 바이올린곡과 이탈리아 바로크 거장들의 바이올린 곡들을 발굴해냈듯, 아카르도는 파가니니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며 19세기 이탈리아 바이올린 음악을 널리 알렸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두 곡뿐인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 아카르도의 파가니니 협주곡 음반으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여섯 곡을 차례로 감상하며 파가니니의 매력에 빠져들던 시간은 지금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카르도는 이번 리사이틀에서도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연주로 파가니니 음악의 매력을 전할 예정이며,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등 기교와 서정성을 두루 갖춘 바이올린 명곡들을 연주한다. 바이올린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이번 음악회가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비온디와 아카르도. 비발디와 파가니니를 닮은 두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번 내한 공연을 통해 200~300년 전 이탈리아 음악 거장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국제음악제

파비오 비온디 & 에우로파 갈란테
5월 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비발디의 현과 통주저음 악기를 위한 신포니아 G장조, 오페라 ‘그리셀다 서곡’, 오페라 ‘테르모돈 강의 헤라클레스 서곡’ , 바이올린 협주곡 ‘라 스트라바간차’ ‘사계’

살바토레 아카르도
5월 1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람스의 F.A.E. 소나타 중 알레그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블로흐의 바알 셈 ‘하시디즘 삶의 세 장면’ 중 즉흥곡,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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