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말로프

네 종류의 현악기를 연주하는 즐거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바이올린은 기본이요, 바로크 바이올린·비올라·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까지 무대 위에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르게이 말로프가 6월 한국 관객들과의 첫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올린은 기본이요, 바로크 바이올린·비올라·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까지 무대 위에서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르게이 말로프가 6월 한국 관객들과의 첫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에프렘 짐발리스트·야사 하이페츠·나탄 밀스타인…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카리스마에 짓눌리는 20세기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레오폴드 아우어로 대표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바이올린 학파의 선두주자라는 것이다. 아우어의 제자들은 20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 바이올린계를 호령했다. 이후 모스크바 음악원에 주도권을 내주기도 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러시아 바이올린 스쿨을 논할 때는 그 뿌리와도 같다. 아우어 이후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세르게이 말로프라는 걸출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등장해 독특한 이미지로 선배들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르게이 말로프는 1983년 6월 1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음악의 고향이자 빛나는 예술의 도시는 그에게 필연적으로 음악적 자양분을 타고나게 했다. 아버지 올레그 말로프는 스크랴빈·소프로니츠키를 잇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아노 학파의 후계자였으며, 러시아 현대음악 연주의 권위자였다. 그는 1972년부터 현재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머니 클라라 말로바는 탁월한 음악 교사로 소문이 자자했다. 말로프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우크라이나 서쪽 지방 출신이었는데,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헝가리 땅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러시아어와 헝가리어를 동시에 구사하며 성장했다. 이러한 가계는 말로프로 하여금 코즈모폴리턴으로 살게 했고, 그는 영어·독일어·프랑스어·에스파냐어까지 포함해 무려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피아노는 기본으로 배우고, 6세부터 바이올린을 손에 쥔 말로프는 일리야 그린골츠의 스승인 타티야나 리베로바를 사사하며 실력이 급상승하게 된다. 이후 파가니니 콩쿠르(2006)·하이페츠 콩쿠르(2009)를 비롯해 세계 주요 콩쿠르를 석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말로프는 악기 쪽에서도 바이올린 하나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6년 그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 입학해 비올라를 배웠다. ARD 콩쿠르(2009)와 도쿄 비올라 콩쿠르(2010)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비올라 연주에서도 세계 정상에 올랐다.
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토마스 리에블에게 또다시 비올라와 실내악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며 대가로서의 준비를 마쳤다. 여기에 바로크 바이올린과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까지 섭렵해, 하나의 리사이틀에 4개의 악기를 들고 나와 팔색조처럼 연주하는 게 다반사다. 또 여느 청년처럼 축구에 열광하고 동양 무술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자기 수련에 매진하는 팔방미인이기도 하다.
세르게이 말로프가 6월 15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파가니니에게 헌정하는 이번 무대는 난곡들로 즐비하다. 그는 18세기 작곡가 겸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로카텔리에서 쉬니트케에 이르는 300년의 시간을 여행하며 현악기의 모든 것을 보여줄 예정이다. 현재 말로프는 1958년에 피에르 가기니가 제작한 비올라, 2004년산 페터 그라이너 바이올린, 알렉산드르 라비노비치가 만든 바로크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2011년 드미트리 바디아로프가 말로프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어깨 첼로’로 불리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까지 포함하면 관객들은 4개의 현악기를 한 무대에서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가브리엘리의 비올론첼로를 위한 2개의 리체르카레를 5개의 현을 장착한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로 감상할 수 있다. 첫 내한을 앞둔 세르게이 말로프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또 음악가였던 부모님과 가족들 사이에서 보낸 유년 시절에 특별히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게 정말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보다 미래를 더 많이 보려고 합니다. 부모님도 제 앞날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다른 곳으로 저를 보내셨죠. 헝가리 출신의 외할아버지 덕분에 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배우며 자랐습니다. 특히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는 음악을 향한 헌신과 프로 연주자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신 제 롤모델입니다. 삼촌 마하일 코펠만은 보로딘 현악 4중주단의 황금기에 제1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했던 위대한 음악가였습니다.
언제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나요.
바이올린을 여섯 살에 시작했지만, 음악가를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열네 살 무렵이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니라 뒤늦게 잘츠부르크와 베를린에서 공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 새로운 스타일을 배우는 것은 제게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잘츠부르크와 베를린은 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완벽한 곳이었죠.
첫 스승 타티야나 리베로바는 어떤 분이었나요.
리베로바 선생님은 유년기였던 저의 심리 상태를 정말 잘 알고 계셨어요. 선생님 덕분에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는 자세뿐 아니라 안정적인 테크닉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바이올린에 이어 잘츠브루크 모차르테움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비올라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또 행운이었습니다. 2006년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토마스 리에블 선생님은 정말 매력적인 분이셨어요. 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더불어 거대한 도시에서 훌륭한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네 종류의 악기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모습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덧붙여 사용하는 악기들이 1958년부터 2011년까지 비교적 최근 제작된 것인데요.
음악의 서로 다른 면을 표현하고 좀더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제 소원이 이루어진 거죠. 여러 악기를 연주하면서 더 많은 즐거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악기들은 당대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고음악을 연주하는 데 아무런 무리 없이 완벽합니다. 다루기도 쉽고요. 혹 비싸고 귀한 이탈리아 고악기로 연주할 기회가 온다면, 또 그 악기가 저와 잘 맞는다면 그때도 전혀 걱정하지 않고 연주할 수 있을 겁니다. 당대와 현대의 구분은 제게 중요하지 않아요.

일부 음악학자들은 바흐의 악보에 비올론첼로(violoncello)라고 기재된 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첼로(cello) 대신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위해 작곡된 것이라 말합니다. 당신이 쓰고 있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5개의 현을 가지고 있는데, 현대의 첼로나 비올라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우선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첼로보다 크기가 작습니다. 그래서 더 쉽게 다룰 수 있죠. 제 생각엔 바이올리니스트가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연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비올라보다 음역이 한 옥타브 낮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첼로의 4개 개방현(C·G·D·A)에 다섯 번째로 E현이 추가되는 것이죠. 유튜브에 올라온 저의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 연주 영상을 보고 “왜 비올라 다 감바를 세워서 연주하지 않지?”라는 질문이 올라왔는데요, 바흐도 그랬을 테지만 저는 숙달된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특별한 답변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바로크 음악 연주를 위해 비올라 다 감바를 잡는 연주자에게 더 작은 악기를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게 더 쉬운 방법이니까요.
해외 여러 콩쿠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이름을 알려왔습니다. 콩쿠르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콩쿠르를 준비하며 많은 연습을 하게 되죠. 또 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입상자들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고 콘서트 무대에 설 기회도 얻을 수 있죠. 하지만 때때로 무능력하고 자격 없는 심사위원들 때문에 실력 있는 도전자들이 절망하고 용기를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초청되는 것이죠. 슬픈 일입니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을 보면 테크닉은 뛰어나지만 음악적인 감동과 인간미는 과거 연주자들보다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비주얼에 더 신경 쓰는 모습도 보이고요. 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아버지 세대보다 지금의 음악이나 연주가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세대는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고, 외적인 것에만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저는 살아 숨 쉬는 ‘핸드메이드’ 고전음악이야말로 중요하고 다양한 스타일로 연주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내한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 레퍼토리와 관련해 한국 청중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가요.
이번 한국 방문을 염두에 두고 ‘파가니니에 대한 헌정’을 테마로 프로그램을 정했습니다. 파가니니를 회고하면서 그의 선배들과 그의 음악, 더불어 그의 천재성에서 영감 받은 작품들을 골랐어요. 재미있고 다양한 음악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어느 관객은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 수 있고, 저와 통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 계획된 연주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저는 독주뿐 아니라 실내악, 오케스트라 협연까지 매우 다양한 연주와 무대를 즐깁니다. 가르치는 것 역시 제게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올여름은 다양한 페스티벌 무대에 오를 예정이고, 가을에는 러시아와 일본에서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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