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무대에 서는 첼리스트 대니얼 리

서른네 살 연주자의 진지함과 엉뚱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자신만의 음악을 견고하게 다듬어나간 대니얼 리의 고유한 예술성을 만나는 시간

이 사람, 어떤 사람일까. 대니얼 리(한국 이름 이상화)에 대한 호기심은 그가 직접 아이폰으로 촬영하여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으로 시작됐다.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부스스한 모습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사라반드를 연주하는 모습은 그만큼 엉뚱했다.

이메일을 통해 대니얼 리에게 동영상을 찍은 이유를 물으니 “그저 재미로 찍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때때로 연습 장면을 녹화한다는 그는 인터넷과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의 장점과 한계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했다.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는 공연장을 찾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공연에 대한 중요성과 집중도를 도와주기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실제 무대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는 다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어요.”

엉뚱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지닌 대니얼 리의 음악적 행보를 살펴보면, 그의 진지함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있다. 열한 살이던 대니얼 리와 협연한 지휘자 제라드 슈워츠는 그를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소개해줬다. 대니얼 리의 연주를 들은 로스트로포비치는 더 이상 제자를 받지 않겠다는 자신의 말까지 번복하며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어린 제자에게 로스트로포비치는 “네가 열여덟이 되었을 때 너만의 색깔이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다”라며, 열여덟 살까지는 콩쿠르와 큰 연주회를 피하고 공부에만 집중할 것을 권했다.

이후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열린 대니얼 리의 무대를 지켜본 데카 관계자가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와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다. 열다섯 살의 대니얼 리는 이들 앞에서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4번과 브리튼 첼로 소나타를 연주했고, 연주가 끝난 뒤 데카와 5년 전속 계약을 맺었다. 3년 동안 대니얼 리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음반 녹음은 서로가 원할 때 하기로 한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로스트로포비치의 말을 따라 큰 그림을 그리는 현명함을 택했다. 열여덟 살에 첫 음반을 녹음했고, 그해 10·11월에 시애틀과 뉴욕 링컨센터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신시내티 심포니·시애틀 심포니의 협연 무대에 오르며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2001년,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수상했고, 2005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심포니에서 첼로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교향악축제에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B단조를 선보였던 대니얼 리는 올해에도 한국을 방문한다. 오는 7월 25일, KBS교향악단과 함께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키호테’를 선보이는 대니얼 리. 돈키호테의 심리 상태에 따라 다양한 첼로 음색을 보여주는 이 곡은 진지함과 엉뚱함을 동시에 지닌 그와 사뭇 닮아있다.

다음은 7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 그와의 이메일 인터뷰.

 

먼저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의 가르침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네요. 그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로스트로포비치는 화려한 기교를 앞세워 잠시 반짝이는 명성을 얻기보다는 진정한 예술가로서 고유한 소리를 찾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레슨 할 때는 세세한 테크닉보다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지요. 로스트로포비치의 가르침은 아직까지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고유한 예술성을 가진 연주자로 성장할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니까요.

데뷔를 한 18세 이전과 이후로 당신의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당신의 음악적인 해석이 어떻게 변해왔나요.

이미 손에 익숙한 곡을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연주하는 것으로 자신의 예술성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예술성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곡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곡을 연주하는 속도 역시 제 음악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음악을 더 편안하게 연주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로스트로포비치의 마지막 제자가 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그런 이목이 부당하다고 느낀 적도 없습니다. 다만 연습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는 과정이 힘들었죠. 학교에 다니면서 악기 연습을 하고, 시간을 적절하게 할애하며 삶에 대한 균형감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린 시절, 첼로뿐 아니라 피아노도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했습니다. 두 악기 중 최종적으로 첼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첼로만의 다재다능함과 자연스러운 소리에 끌렸죠. 첼로는 제가 생각한 소리를 부드럽게 만들어냅니다. 자연스럽게 첼로 연습을 더 많이 하게 됐는데, 피아노 연주 역시 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총보를 보면서 피아노로 연습하면 화음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각각의 음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음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거든요.

1999년에 KBS교향악단과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을, 2002년에는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협연했죠. 지난해 울산시향과 교향악축제에도 참여했네요. 한국에서의 연주는 어떤 느낌이 드나요.

한국에서의 공연은 또 다른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가족이라고 느껴지는 한국 청중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

(대니얼 리는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교포 2세로, 2011년 한국에서 소외계층 청소년과 가족들을 위한 나눔 연주회를 연 바 있다)

2005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심포니의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하며 느끼는 세인트루이스 심포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라두 루푸·우치다 미쓰코·요요 마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세인트루이스 심포니와 협연을 할 때, 저는 연주회장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연주를 가장 가까이서 듣는 청중이 되는 거죠. 이처럼 훌륭한 연주자들과 공연을 하면서 마법처럼 이뤄지는 하모니를 느꼈을 때 큰 즐거움을 느껴요. 세인트루이스 심포니를 더욱 개성 있게 만드는 것은 다양한 제작 기획입니다. 최근에 제가 좋아하는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의 작품을 연주하여 두 장의 음반을 발매했어요. 사실 현존하는 작곡가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일들이 음악 산업을 계속 발전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해요.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 활동 중 어느 쪽에 더 흥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 모두 좋습니다! 우선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음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악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죠. 솔리스트는 혼자서 연주를 이끌어나가기에 음악적인 연구를 많이 하게 됩니다. 덕분에 매번 연주마다 많은 것을 배우는 재미있는 도전이죠.

1999년 한국 데뷔 무대에서 직접 편곡한 김동진의 ‘진달래 꽃’을 선보였죠. 평소 작품 편곡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나요.

첼로 소리에 적합한 작품을 찾으면 어떻게 편곡할지 고민합니다. 저는 편곡을 빨리 끝내는 편이라 편곡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이번 연주 때 선보일 R.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를 직접 선곡했다고 들었습니다.

‘돈키호테’는 위대한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연주되지 않고 있어요. 첼로 솔로로 연주되는 돈키호테와 비올라(한넬리 협연)로 연주되는 산초의 심리를 잘 표현해야 합니다. 이 곡은 거대한 이야기를 말하기 때문에 마치 오페라 주연을 맡은 느낌이에요. 이번 공연 때 함께 하는 지휘자 클라우스 페터 플로어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익히 들었어요. 함께 ‘돈키호테’를 연주하게 돼 정말 기대됩니다.

대니얼 리 협연, KBS교향악단 연주회 7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사진 KBS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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