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4일, 하이팅크의 85세 생일 이후에 열리는 관련 공연들은 한결같이 그의 업적을 기념하고 있다. 3월에는 베를린 필에서 베토벤을 지휘했고, 같은 달 코번트 가든 로열 오페라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을 그에게 맡기면서 1987년부터 15년간 음악감독으로 재직했던 노장의 존재감을 상기했다. 5월에는 뉴욕 필이 마련한 ‘거장 시리즈’ 무대에 섰고, 6월 5일과 7일 런던 바비컨 센터에서는 하이팅크가 명예고문으로 활동 중인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이하 COE)가 축하 콘서트를 가졌다.
1981년 창단된 COE는 60여 명의 단원이 각자 솔리스트와 유명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주요한 공연에는 호흡을 함께하는 체제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음악감독 없이 상설 오케스트라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중간 형태이자 장점을 극대화하는 조직을 지향한다. COE의 모태는 유럽공동체 유스 오케스트라의 수료 멤버들이다. 20대 이후에도 동료들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아바도가 수렴했고, 하이팅크와 시프가 지원해 COE가 결성됐다.
바비컨 센터에서 열린 6월 5일 프로그램은 슈만 ‘만프레드 서곡’으로 시작됐다. 하이팅크는 거장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역사주의적 접근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노년의 관객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억누르지만 지루하지 않은 지휘자 특유의 낭만성을 단원들이 극대화 해나가는 찰나, 하이팅크가 달리기 시작했다. 만프레드의 투쟁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마치 배턴을 이어받은 주자처럼 가속이 붙었다. 하나씩 쌓아올린 에너지를 느닷없이 쏟아내는 이례적인 드라이브에 단원들의 개인기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앙상블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노신사의 격정을 품위 있게 살려낸 건 악장 마리커 브란케스테인의 노련한 리드 덕분이었다. 흐름이 단절될 만한 곳에서 템포의 기준점을 찾아 바르게 위치하는 브란케스테인의 리드는 하이팅크의 변격을 지탱했다.
이어진 알반 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이자벨 파우스트가 협연에 나섰다. 하이팅크는 파우스트의 과감한 어택이 홀 안에 공감각적으로 퍼질 수 있도록 그녀와 조응하는 데 지휘의 포인트를 두었다. 소나타 형식으로 시작해 무곡풍의 알레그레토가 진행되는 1악장에서 무조성의 작품이지만 음조의 중심을 느끼게 하는 파우스트의 집착이 세분화된 음향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테크닉으로 분화해나갔다. 베르크가 전통적인 3악장 협주곡의 구조를 깨고 2악장으로 종결되는 실험을 통해 뜻했던 바는 무엇인지, 형식과 내용을 관객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하는 하이팅크의 권유가 차분한 서포트로 천천히 객석에 전달됐다.
5일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이었다. 디테일과 스케일을 드러내는 하이팅크의 미덕이 선명했다. 솔리스트적 기교가 충만한 목관 주자들의 테크닉이 절정을 이루자 바비컨의 음향 효과도 수분을 머금은 듯 쾌적한 사운드를 뿜어냈다. 하이팅크와 기성의 악단이 연주한 ‘전원’은 아기자기한 3악장이 강렬했지만, COE와의 ‘전원’은 4악장의 뇌우와 폭풍에 방점이 찍혔다. 악기들의 부르짖음에서 야성이 느껴졌고, 언뜻 리카르도 샤이의 모습이 스치기도 했다. 비가 갠 뒤 신선한 전원의 느낌이 COE가 갖고 있는 악단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7일에는 장 이브 티보데가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고, 라벨 ‘쿠프랭의 무덤’ 모음곡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이 연주됐다. 티보데와 각 목관악기들이 벌이는 앙상블이 흥미로웠으며, 분방한 템포 루바토는 앙코르 곡인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모던 빅밴드 형태의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은 당대연주에 밀려 21세기 들어 실연되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이팅크와 COE의 모차르트는 소나타 형식의 전개와 대조, 속도의 완급과 명확성을 표출하는 방법에서 거장 지휘자 시대의 맥을 그대로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