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북미 투어

블루노트에서의 ‘그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0월 1일 12:00 오전

재즈의 본고장 뉴욕, 그리고 오래도록 선망했던 블루노트에서 성공적인 발걸음을 뗀 나윤선. 프랑스 재즈 사전이 말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꽃 같은 목소리’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지난 9월 14일부터 21일까지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함께 북미 투어를 진행했다. 나윤선은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에서야 ‘아리랑’을 부른 광고 음악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지만, 세계무대에서 이미 이름난 재즈 보컬리스트다.

미국 다음으로 재즈 시장이 큰 프랑스의 3대 신문 중 하나인 ‘르제소’지는 “우리는 이따금 훌륭한 재즈 보컬리스트가 미국이나 유럽, 그중에서도 프랑스에서 많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은 다 버려야 한다. 오늘날 가장 위대한 재즈 보컬리스트는 한국인 나윤선이기 때문이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당당히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오른 나윤선의 이번 뉴욕 공연 장소는 블루노트. 그녀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재즈 보컬리스트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 하는 재즈 공연장에서 9월 15·16일 양일간 모두 네 차례의 공연을 가졌다. 피날레를 마친 나윤선을 만나 공연 소감을 물었다.

“아주 오래전, 블루노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공연장을 바라봤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내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는 날이 올까? 만약 온다면 그날이 언제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블루노트는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인데 그곳에서 이틀이나 공연을 하게 돼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유럽의 유수한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왔지만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의 뉴욕, 그중에서도 성지처럼 여겨지는 블루노트 무대이기에 더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음향

9월 16일 오후 8시 공연에서 나윤선은 앙코르곡을 포함해 총 9곡을 선보였다. 객석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었고 한국인 관객도 많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뮤지션의 공연을 보기 위해 애써 찾아온 재즈 마니아들이었다. 숨 쉴 틈조차 없이 진행되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든 생각은 ‘이 재즈 보컬리스트에게 한계란 존재하는가?’였다. 매 곡마다 전혀 다른 나윤선을 만나는 것처럼 오싹한 전율을 느꼈기 때문이다.

첫 곡 ‘Hurt’에서는 표정 몰입과 여성적인 목소리로 나긋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다른 곡에서는 록 음악 보컬과 같은 샤우팅 창법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고음이 올라갈 때는 클래식 음악을 떠올리게도 했다. 울프 바케니우스가 작곡한 ‘Momento Magico’는 굉장히 흥미로운 곡 중 하나였는데, 이때 나윤선은 가수라기보다 악기와도 같았다. 복잡한 선율을 기타와 동일하게 연주하는 스캣으로 인간 목소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했다. 또한 가슴을 두드려 자신의 몸으로 금속 타악기 효과를 내기도 했다.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음악 중 하나인 ‘My Favorite Things’는 그녀가 직접 연주하는 ‘손가락 피아노’ 칼림바와 함께 신비롭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 민요 ‘A Sailor′s Life’를 부를 때는 그 옛날 영국에서 썼을 법한 강렬한 창법으로 음색의 다양성을 드러냈다. 노래를 부를 때 3도 화음을 쌓아 올려주는 이펙터를 이용하거나 목소리로 타악기 효과를 내는 등 다채로운 음향으로 귀를 즐겁게 했다. 나윤선과 만나면 어떤 음악이든 마음을 울리는 재즈가 됐다.

음악적 영혼이 통하는 소울메이트

색다른 음향을 들려주는 것은 나윤선만이 아니었다. 듀오를 이룬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는 플라스틱 병으로 기타 현을 두드려 연주하기도 하고, 유리컵을 이용해 독특한 글리산도 음향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가히 완벽한 듀오의 환상적인 연주라 칭할 만했다. 나윤선과 기타리스트 울프와의 호흡은 또 하나의 놀라운 이야깃거리다. 그들은 아주 오랜 기간 함께 연주해온 사이라 그런지 음악뿐만 아니라 영혼마저도 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윤선에게 그와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일단은 정말 뛰어난 연주자이기 때문이죠.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를 기복 없이 보여주면서 항상 소탈하고 원만한 성격까지 갖춘 연주자를 만났다는 것은 같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하는 내내 두 사람은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눈으로 교환하는 음악적 교감이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고, 서로를 향한 존중의 태도가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서로를 소개하면서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몸짓으로 서로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연주를 마치고도 서로에게 박수를 돌리는 모습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존경의 반영이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앙코르를 요청했다. 나윤선이 환호에 화답하며 앙코르 곡의 제목을 말하자 많은 한국인이 기다렸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레퍼토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것! 나윤선의 우아한 음색과 바케니우스의 가야금을 모방한 듯한 독특한 기타 연주로 재해석한 ‘강원도 아리랑’이었다. 세계무대에서 내로라하는 뮤지션들과 연주하는 ‘아리랑’은 나윤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모든 공연에서 ‘아리랑’을 부릅니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들도 ‘아리랑’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여러 번 보면서 ‘아리랑’에 담긴 소리의 힘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외국의 뮤지션들과 작업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음악인이 ‘아리랑’을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멋진 노래라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적으로 다양한 해석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기도 하죠. 개인적으로는 힘든 투어 중에 한국인으로서 자존감과 용기를 갖게 해주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먼 이국땅에서 만난 한국의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목소리는 객석의 반을 채운 한국인들에게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지닌 나머지 반의 청중에게도 감동을 선사할 만큼 훌륭했다. 나윤선은 세계 곳곳에서 하반기 해외 투어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며 올겨울에는 한국을 찾을 계획이다. “해마다 수많은 투어 공연의 마무리를 항상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한국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연습 벌레인 그녀가 고국 무대를 얼마나 성실히 준비할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글 김슬아(뉴욕 통신원) 사진 나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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