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지난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열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껏 쏟아진 여느 기사와 비슷한, 이를테면 어느 아티스트가 다녀갔다거나 어느 연주가 좋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마 기사 마지막까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혹 이번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공연 리뷰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네이버 검색창에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을 검색해보거나 옆 동네의 월간 ‘재즈피플’을 구입하길 바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음악 잡지에서 음악 외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기사는 무엇이냐. 한마디로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인재진과의 11시간 밀착 취재기다. 다르게 말하자면 조금 특별한 관점의 자라섬재즈페스티벌 11시간 유람기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무엇을 기대하든 상상과 꽤 다르고, 누군가에겐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지면에는 축제 첫날인 10월 3일 아침부터 밤까지, 11시간 동안의 이야기만을 기록하고자 한다. 왜 11시간이냐고?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올해 10년 하고도 1년, 그러니까 11회를 맞이했으니까!
무대 뒤에서 아티스트들이랑 폼 잡고 있을 줄 알았죠? 오전 10시. 인재진 감독과의 첫 만남은 참으로 묘했다. 일단 이 사진은 절대로 연출된 컷이 아니다. 이렇게 말해도, 글쎄… 못 믿겠다면.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인재진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요상한(?) 포대를 나르고 있었다. 통성명한 후 사연을 들어보니 올해 처음으로 직접 제작한 와인홀더를 기념품 숍에 배달하는 중이었던 것. “스태프가 바쁘니 나라도 해야죠.” 의외라는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말한다. “내가 무대 뒤에서 아티스트들이랑 폼 잡고 있을 줄 알았죠?”
소프라노 색소폰에 문제가 생겼대요! 오후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인 페스티벌 라운지 백스테이지를 잠시 들렀다. 리허설 도중 이날 오후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 중 누군가의 소프라노 색소폰 음색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 자라섬에 있는 연주자들을 통해 혹 소프라노 색소폰을 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스태프와 인재진 감독 사이에 긴급하게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인재진 감독에게, 악기를 구했다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악기를 서로 빌려주기도 하나요?” “웬만하면. 서로 돕고 사는 거죠.”
제이제이, 콩그레추레이션! 자라섬 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마주치는 아티스트들. 이 동네에서 인재진 감독은 그의 이니셜인 “제이제이(JJ)”로 불린다. 마주치는 아티스트는 달라도 인사하는 순서는 딥허그+짧은 수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그에게 건네는 첫마디는 “페스티벌 11회를 축하한다”는 인사였다. “축하받을 사람은 내가 아니에요. 페스티벌은 같이 준비하는 일이고, 늘 해왔던 일이니까.”
감독님! 같이 사진 찍어요 자라섬재즈페스티벌 기간 중 스태프 수는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400명 이상. 관내에서 나온 사람들까지 합치면 1,0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3일간의 축제를 위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남성과 여성,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럼에도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재진을 만나면 (특히 대학생들이) “감독님, 같이 사진 찍어요”라는 말을 서슴없이 건네고, 즉석 촬영(?)이 이뤄진다.
뭐든 재즈가 될 수 있다! 재즈+ΟΟ올해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는 처음으로 공식 크래커가 등장했다. 페스티벌 기간을 전후로 경기도에서 한정 수량으로 판매되는 패키징이란다. 그전에도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선 재즈와 농특산물의 만남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일단 뭐든 재즈가 붙을 수 있는데, 말로만 들을 땐 ‘그게 뭐야’ 싶다가도, 실제로 겪어보면(?) 괜히 피식하고 기분 좋은 웃음이 난다. 일단 가평 시내에선 재즈택시·재즈극장·재즈머리방을 목격할 수 있고, 페스티벌기간 중 호기심으로라도 시도해볼 만한 아이템으로 재즈사과, 재즈와인·재즈막걸리·재즈한우·자라섬뱅쇼·재즈밥상 정도를 꼽아볼 수 있겠다. 지금 가평에서 ‘재즈’는 단순히 음악 장르를 넘어 지역 상권과 지역경제 발전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나가는 중이다.
폴 어거스틴과의 망중한 폴 어거스틴은 말레이시아의 페낭아일랜드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이자 인재진과는 10년 넘게 친밀하게 지내는 일곱 살 차이의 친구 사이. 매년 서로의 페스티벌에 참석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재즈 때문에 만났지만 파트너 그 이상의 관계다. 올해도 자라섬 내 캐라반 캠핑장에 숙소를 잡고 페스티벌 기간 내내 머무를 예정이라는 폴 어거스틴은 인재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와 JJ는 서로 가족처럼 믿고 의지하는 사이”라며 각별한 친분을 과시했다. 친구이자 음악감독으로서 느끼는 인재진의 장점을 물으니, “어느 자리에서든 늘 겸손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를 인정하고 따르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와의 대화는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2000년대 초반의 일이며, 이후 비슷한 시기에 각자 재즈 페스티벌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음악을 공통분모로 같은 곳을 향해 시선을 맞추고 함께 걸어갈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이날 하루 중 가장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인재진 감독의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개막식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인재진입니다! 오늘 정말 멋진 날씨에 자라섬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도 짧고 간단한 개막식을 합니다.” 그의 말처럼 개막식은 정말 짧고 간단하게 끝났다. 관객들도 개막식보다는 페스티벌 첫 메인 공연 연주자들을 기대하고 있었을 터. 올해 첫 메인 공연 연주자는 퓨전 재즈밴드인 옐로우자켓. 34년 관록을 자랑하는 이들의 연주가 시작되자 재즈 아일랜드를 떠다니던 각기 다른 호흡들이 한데 모아졌다.
한밤중에도 재즈는 계속된다 오후 9시. 메인 스테이지인 재즈 아일랜드 공연이 끝나는 시간이다. 오래지 않아 건너편에 자리한 파티 스테이지에서 좀 더 캐주얼한 스타일의 공연이 시작된다. 스탠딩 타입의 파티 스테이지 공연 종료 시간은 오후 11시 30분. 비슷한 시간, 자라섬 캠핑장 입구와 가평읍사무소·가평역 구역사 앞에서도 각기 다른 팀들의 공연이 한창이다. 읍내 곳곳에 위치한 재즈카페 세 곳도 오후 11시부터는 공연장으로 변신. 그야말로 섬이며 읍내며 대로며 골목마다 재즈가 넘실대는 밤이다. 대부분의 공연이 끝나고 자정을 넘긴 시각. 그래도 아쉬운 관객들은 심야음악영화제가 열리는 가평문화예술회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추운 밤 갈 곳 잃은 아쉬운 청춘들을 위한 뜨거운 밤이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총감독 인재진 인터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대한민국 내 여타 다른 음악페스티벌들과 구별되며,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재즈페스티벌로 자리 잡기까지 인재진이 고민했던 시간들. 그리고 앞으로 그려나갈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천재 연출가는 있어도, 천재 기획자는 없다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제한적이죠. 지식이든 뭐든. 결국은 사회 보편적 가치에 반하지 않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관계되어 있는 모든 사람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좋은 기획자인 거 같아요. 모두가 기분 좋게 돈 벌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기획자의 역할은 그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천재 연출가는 있지만, 천재 기획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기획은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실수와 실패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하니까.”
기획자와 공무원, 결코 가까울 수 없는 관계!?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기획자와 지방자치단체 담당 공무원의 방향성에는 늘 충돌이 따르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신뢰를 쌓기 힘든 관계 중 하나인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좀 다르다. 이건 단순히 누군가가 우리를 잘되게(정확하게는 돈을 벌게 해줘서) 해서 생기는 신뢰와 지지라고 하기엔 다소 인간적이고, 다른 진정성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어느 텍스트 한 줄에서 읽어서 알고 있는 지식과는 다른 차원의 인상이다. “상호 리스펙트가 있어야 한다. 여러 기획자가 공무원과 일하는 걸 많이 어려워하는데,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재즈는 재즈, 페스티벌은 페스티벌
“재즈와 페스티벌은 어프로치가 달라요.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이 두 개를 제대로 구분해서 보지 못하거나, 어느 한쪽에 경도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페스티벌이 비즈니스 차원으로 너무 상업적이 되거나, 반대로 음악적인 부분만 생각하면 정작 놓치고 가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필요하죠. 그러려면 양쪽을 다 잘 알아야 해요. 저 역시 공연 기획 이전에 굉장히 많은 상업성 이벤트부터 백화점 행사까지 안 한 게 없어요. 그러한 경험들이 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밸런스를 맞추게 해요. 결국 돼지 맛을 알려면 돼지 한 마리를 다 먹어봐야 하는 상황이 페스티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죠. 그래야 수월하게 갈 수 있어요.”
안 팝니다! 당신을 위해
“올해 페스티벌 전체 기간 3일 중 이틀이 매진됐어요. 자라섬에 보통 1만 5,000~2만 명 정도가 들어가고 나와요. 사실 더 팔아도 되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관객들이 체감할 때 지금이 적정 인원수예요. 사람들이 즐겁게 공연을 보고, 그래서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중요해요. 사람이 많아져서 짜증나고 불편해서 내년에 안 온다고 하는 것보다 차라리 돈을 조금 덜 벌어도 괜찮다는 거죠. 최소 1년 동안 먹고살 돈은 벌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게 오래지 않아요. 예전엔 자전거가 서면 넘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계획을 세우되, 올해 못한 걸 내년에 해볼 수 있다는 게 축제의 장점이니까요.”
지방자치단체 예산 지원 비율, 페스티벌 자생력의 척도
“예산 없는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예산을 출현하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반사적으로 얻는 이익이 있어요. 유·무형의 자산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일정 금액을 지자체가 기부하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다만 몇 퍼센트냐의 문제죠. 그게 100퍼센트라면 페스티벌 생존력은 0인 거고, 예산이 없어지면 축제도 바로 없어지니 문제예요. 상당수 페스티벌들의 약점이 예산 편중이고, 여전히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아요. 그런 면에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균형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어요. 공적 지원과 자체 수익이 50대 50이죠. 공적 지원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최우수축제 지원금으로 3억 원, 나머지는 정부와 광역단체로부터 지원받았는데 직접 수혜자인 군에서 지원하는 부분이 가장 커요. 나머지 자체 수익은 티켓 판매 수익금과 스폰서십 등을 통해 채워지죠. 완성도 높고 건전한 재정 구조를 갖추게 된 건 아마 7~8회부터였던 것 같아요.”
지난 10년, 두 번 겪고 싶지 않은 기억
“누군가는 나한테 눈 깜짝할 새 10년이 지나갔다고 해요. 근데 전 어려울 때가 많아서 그런지 그 말에 별로 공감이 안 되더라고요. 누군가 11년 전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해볼 생각 없느냐고…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요. 공연 기획이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다 정신적으로 힘든 거죠. 정신적으로 왜 힘든가? 간단해요. 돈 많으면 정신적으로 힘 안 들어요. 다 해결되니까. 아마 공연하는 사람 10명 모아놓고 통장 잔고 모아보라고 하면 마이너스 2,000만 원이 넘을 겁니다. 큰 공연은 큰 공연대로, 작은 공연은 작은 공연대로 빚이 생겨요. 직설적으로 말해서 ‘돈 없으면 찌글찌글하거나 양아치 되거나’ 둘 중 한 가지죠.”
다가올 10년, 날마다 음악이 흐르도록
“앞으로 남은 10년은 가평군 전체를 음악으로 포장하고, ‘가평’ 하면 음악이 생각나는 곳으로 만드는 데 주력할 생각이에요. 지역에 음악이 흐르기 위해선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해요. 상징적 공간, 끊임없는 콘텐츠 생산, 사람,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에 대한 지역 주민의 동의. 지금 가평은 그걸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요. 앞으로는 콘텐츠 창작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이곳 자연경관이나 주거 환경이 좋으니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살 수 있게 군청과 잘 협의해 그런 환경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만약 100명의 음악인이 산다면 그들이 초·중·고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밴드 지도도 하고. 그렇게 된다면 특별한 고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 심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