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다이어리’

피아니스트 유영욱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월 1일 12:00 오전

예술은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 소설 ‘데미안’과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그의 인생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모든 문제의 열쇠는 마음에 있다

귀국해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벌써 6년이 되어가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을 가르치며 제가 더 배우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음악 레슨을 하다 보면 결국 모든 문제는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풀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데 더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다 보면 학생들의 연주 실력도 많이 향상되는 것을 느끼게 되거든요. 예술이란 결국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예술이 왜 생겼을까요? 사람은 우선 몸의 우월성을 통해 경쟁을 하려고 하죠. 그래서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 하고 멋있는 외모, 스포츠 실력을 통해 자신의 외적인 우월성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그다음에는 내적인 부분까지 드러내고 싶어 하죠. 내적인 아름다움에도 종류는 많겠지요. 그것이 용기일 수도 있고, 부드러움일 수도 있고, 때로는 카리스마와 결단력일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 예술가들은 그런 내적인 부분의 어느 한 분야를 파고들어 연구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고요. 그런데 오랜 세월 사람들이 그런 예술을 보고 들으며 그토록 호응해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적인 부분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사람들은 작품 자체보다 그것을 연주하고 그리고 만든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감동하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예술가도 마음속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회복해야 더 좋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겠지요. 그런 모난 부분들이 해결되면 예술도 어느덧 자연스러워지고, 그런 예술이 결국 사람도 감동시키고 치유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가식 없이 보여주는 것이 예술이기 때문에 음악가 역시 자신의 정신을 잘 가꾸는 것이 중요하지요. 예술가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보고 느끼고 변화했는지는 그 작품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니까요. 저 역시 제 삶을 돌아보면 중요했던 만남이 있었습니다.

진정한 자아 찾기

‘데미안’은 초등학생 때 한번 읽어보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중학생이 되어 다시 시도했던 책이었어요. 그리고 그 내용의 의미를 그때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죠.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었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어요. 한창 사춘기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데미안이 내성적인 자아를 가진 싱클레어에게 이런 말을 하거든요. ‘오히려 그건 너의 영혼이 순수하기 때문이야.’ 이 말은 당시 어린 저에게 굉장히 큰 용기를 주었어요. 쉽게 어울릴 수 없다는 건 반대로 더 특별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을 알게 된 것은 저로선 참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이 소년 싱클레어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큰 용기를 주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뒤로는 무턱대고 누군가와 어울리려고만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저만의 색깔을 더 찾으면서 누군가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요. 사실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면 내 자신이 솔직해져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내 자신에 대한 진정한 자신감과 용기, 여유가 필요하지요. 그건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것들이 뒷받침될 때 음악은 더 강하고 아름다워지지요. 그렇게 소설 ‘데미안’의 메시지는 사춘기 시절 외로웠던 유학 생활을 보내는 데 굉장히 큰 힘이 되었어요. 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가치를 믿는 것, 그것은 나를 향해 다가왔던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슬럼프·편견·상실 같은 감정들을 오히려 힘의 원천으로 생각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유년 시절은 ‘데미안’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삶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

외롭고 힘든 유학 시절을 보내고 국제 콩쿠르에서도 수상을 하면서 저에게도 차츰 다양한 연주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피아니스트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을 때쯤부터인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 하는 것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하더군요. 매일 똑같은 연주를 계속한다는 것이 괴롭고,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던 거죠. 그때 만났던 영화가 바로 ‘포레스트 검프’였습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하나의 깃털이 바람에 날리는 것으로 시작하죠. 그렇게 깃털은 이리저리 날리다가 결국 주인공 포레스트의 무릎에 다시 앉게 됩니다. 이 깃털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는 모든 만남이 깃털처럼 우연히 왔다 사라진다는,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은 더없이 소중하다는 인생의 큰 의미를 깨닫게 해주지요. 음악가라면 어린 시절부터 음악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마치 음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런 마음이 자꾸 쌓이다 보면 결국 큰 부담이 되기도 하지요. 그런데 사실 음악이라는 것이 어쩌면 하나의 깃털처럼 그저 내게 우연히 주어진 선물인데, 언제부턴가 그 선물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잊고 불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니 거짓말처럼 지금 내 곁에 앉은 깃털, 그 음악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악가 유영욱이 아니라 인간 유영욱으로서 인생이 주는 선물들을 감사히 받아들여야겠다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죠. 우연히 본 한 편의 영화가 제게 좁은 인생의 틀에서 벗어나 넓고 자유로운 세계로 나올 수 있는 창이 되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참자아를 찾았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속 싱클레어, 그는 깨닫는다. 모든 인간의 인생이란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임을. 하나의 길을 가는 시도임을.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떠나면서 말한다. “싱클레어, 이제 나는 너를 떠나게 될 거야. 네가 나를 아무리 불러도 나는 이제 오지 못하지만 대신 네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인생을 묻는 아들에게 영화 ‘포레스트 검프’ 속 엄마는 말한다. “아가야, 인생은 커다란 초콜릿 상자 속에 들어 있는 모양과 맛이 서로 다른 초콜릿 같은 거란다. 다음에 무엇이 잡힐지 아무도 모르거든. 운명은 네가 만들어가는 거야. 신께서 네게 주신 걸로 최선을 다해 살거라.”

바람에 날아온 깃털처럼 우리의 인생은 운명과 우연이 선물한 것들로 인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신에게 다가온 매 순간의 만남과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우리 인생의 그림자 역시 껴안아야 할 것이다. ‘데미안’과 ‘포레스트 검프’의 메시지처럼 알을 깨는 고통 없이는 누구도 진짜 자신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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