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지?”
“지휘? 그거 앞에 서서 팔만 휘두르는 일 아닌가?”
지금껏 이런 의문과 생각을 가진 사람을 꽤 많이 봤다. 그럴 때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하나의 작품을 꿰뚫듯이 잘 알아야 하고, 리허설을 통해 스코어에 대한 단원들의 견해를 듣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리하여 실연에서는 청중에게 작곡가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지휘자의 인격과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 그러면서도 작곡가가 의도하는 큰 바다에 합류하는 과정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러나 이런 프로세스를 클래식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지휘자를 위한 1분’은 백 마디 설명보다 하나의 영상으로 지휘와 예술에 대한 개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앙헬 에스테반과 엘레나 고아텔리가 만든 이 영화는 2010년 열린 제11회 안토니오 페드로티 지휘 콩쿠르의 예선 및 본선과 결선을 생동감 있게 포착한 다큐멘터리다.
“지휘는 큰 산과 같아요. 점점 다가갈수록 커져서 내 안에 넣기 힘들죠.”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 근처에 위치한 도시 트렌토에서 열리는 이 콩쿠르는 이 지역 출신의 지휘자 안토니오 페드로티(1901~1975)의 이름을 딴 지휘 콩쿠르다. 페드로티는 트렌토의 리체오 무지칼레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헌신했고, 체코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바츨라프 탈리흐의 전통을 이은 지휘자다.
프랑스의 브장송 지휘 콩쿠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키릴 콘드라신 지휘 콩쿠르와 더불어 대표적인 지휘 콩쿠르로 손꼽히는 이 대회는 1989년에 시작돼 제8회 대회가 3년 만에 열린 것을 제외하면 매 대회가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참고로 제12회는 2015년에 열린다. 그동안 덴마크의 토마스 다우스고르(1991년 3위), 러시아의 키릴 페트렌코(1993년 3위), 헝가리의 졸트 하마르(1999년 1위) 같은 지휘자들을 배출했다.
예선에 나선 지휘자는 136명. 엔딩 크레딧에서 발견한 한국인 참가자는 14명이었지만, 두 대의 피아노를 지휘하는 종목으로 17명을 뽑는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17명이 오페라 지휘를 겨뤄 5명으로 추려지고, 오케스트라 지휘를 통해 최종 우승자가 뽑힌다.
영화의 첫 장면, 케이블카가 천천히 상승하며 트렌토의 이곳저곳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내 콩쿠르 참가자들의 준비하는 모습, 경연 장면, 카메라 앞에서 털어놓는 방백이 교차하며 진행되면서 영화에 눈과 귀를 맡기다 보면 어느덧 5명이 남는 결선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들 5명은 네덜란드의 피터르 옐러 더부르, 일본의 에비하라 히카루·마쓰무라 히데아키, 이탈리아의 안눈치아타 토마로, 브라질의 데보라 발드만이다. 이들은 배우가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중 눈에 익을 정도로 뚜렷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에스테반과 고아텔리 공동 감독의 역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외에도 경연자들이 함께 나누는 대화는 때로는 우습고, 이따금 오래된 경구처럼 가슴을 울린다.
“지휘는 큰 산과 같아요. 점점 다가갈수록 커져서 내 안에 넣기 힘들죠.”
긴장 속에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곡에 대한 의견을 진지하게 나눈다. 서로 적으로 경쟁하는 여타 콩쿠르와 지휘 콩쿠르가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다. 경쟁을 떠나서 힘든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로서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웃는 얼굴이지만 쓸쓸하기 그지없는 탈락자들의 모습(결선용으로 준비한 깔끔한 정장을 탈락 후 슈트케이스에 도로 넣는다!)도 우리가 인생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장면 중 하나처럼 다가온다. 좌절하지 않고 의연하게 지휘에 인생을 건 젊은이들의 모습에서는 숙연함이 묻어난다.
경쟁의 한가운데서 발견한 동반자
심사위원장 구스타프 쿤의 존재는 영화에 카리스마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에 정통한 그는 악보에 써 있는 의미를 참가자에게 거침없이 묻고 지적한다.
“그 악보에 뭐라고 써 있나?”
“잘 모르지만 ‘꽤’ 엄밀하게…인 것 같습니다.”
“아니. ‘완전히’ 엄밀하게지!”
호통을 치는 구스타프 쿤의 일갈은 보는 이들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하지만 그는 탈락자 한 명 한 명에게 앞으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 자세히 조언하는 따스한 모습도 아울러 보여준다.
경연은 결코 지휘자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지휘자들은 기악이나 성악 연주자들처럼 악기나 노래로 연습하기가 힘들다. 지휘자들의 악기는 오케스트라다. 최종 결선에 가야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두꺼운 악보에 깨알같이 적힌 지시들을 익히고 또 익히면서 자신이 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으로, 확신이 거의 없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막연히 상상했던 지휘자에 대한 화려한 선입견은 산산조각 난다. 긴장하고 좌절하며, 뜻대로 되지 않아 눈시울을 붉히는 지휘자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기에 있다면, 저 중의 한 명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브람스 교향곡 2번, 버르토크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디베르티멘토’, 모차르트 세레나데 13번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루토스와프스키 ‘현을 위한 장송곡’ 등 영화에서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 직접 만들어지는 수많은 음악들은 왠지 예전과는 다르게 들려올지도 모른다.
자신이 쌓아온 것들을 짧은 시간에, 때로는 1분 안에 완벽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지휘자들의 멘탈은 “제 뇌가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붕괴 직전이다. 이들 지휘자들을 보면서 많은 경험을 하기엔 힘든 여건이지만 풍부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고, 짧은 면접 시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취업 준비생들이 오버랩되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관람하면 흥미가 배가되겠지만, 음악을 전혀 모른다 하여도 마음에 울림이 전해질 영화. 지휘에 인생을 건 젊은이들의 고뇌와 노력을 보면서 이 땅의 모든 젊은이를 응원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