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의 공연수첩

'객석'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객석’의 공연수첩

‘객석’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따뜻하고 소박한

음악 식탁

정명훈 피아노 독주회

2014년 12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정명훈’ 하면 당연히 ‘지휘봉’이 떠올라야 하건만 ‘요리’가 먼저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서점에서 우연히 본 ‘책’ 때문일 것이다. 10여 년 전, 어느 해외 통신원이 보내준 프랑스 사진 한 장 때문에 그해의 휴가를 프랑스 니스로 잡은 나는 마감에 쫓기면서도 틈틈이 약간은 허황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우연인지, 바로 그즈음 정명훈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정명훈은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재임 중이었다. 당시 파리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를 직접 인터뷰하기는 힘들었고, 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해야 했기에 그에 관한 자료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찾아낸 것이 바로 2003년 쓴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Dinner for 8’이라는 요리책이었다.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음식과 음악을 접목한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들, 그들의 미래 반려자들과 함께할 행복한 식탁을 꿈꾸며 앞치마를 두른 책 속 그는 음악을 지휘하는 모습만큼 행복해 보였다. 특히 60여 가지 요리와 함께 거기에 어울리는 명곡을 소개하며 자신의 삶을 풀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책에서 ‘언젠가 자신이 꿈꾸는 저녁 식탁에 온 가족이 모여 앉게 될 때, 그때가 비로소 자신의 진짜 요리가 완성되는 순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4년 12월 27일, 정명훈의 피아노 독주회가 열렸다. 그는 자신의 손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작품을 무대 위에서 선보였다. 이름이 ‘달’이라는 뜻의 손녀 ‘루아’를 위한 드뷔시의 ‘달빛’, 그리고 큰아들의 결혼식에서 연주한 슈베르트의 즉흥곡, 맑고 순수한 모차르트의 작품까지 그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피아니즘으로 담담하고 진솔하게 풀어냈다. 지휘자 정명훈이 아닌 사랑스러운 아들과 동생으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남편과 아버지, 할아버지로서 그는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피아노 선율에 담아 다정하게 건넸다. 10년 전 아름다운 식탁 앞에서 환하게 웃고 싶다던 그만의 요리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국지연

뿌리 깊은 음악,

감(感) 떨어지다

KBS교향악단 제690회 정기연주회

1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음악이 흐른다. 이야기가 흐른다. 반짝이는 음악의 물결 속에 문장이 너울거린다. 문학적 텍스트와 결부한 음악. 이는 두 ‘예술’의 결합이다.

요엘 레비가 이끄는 KBS교향악단은 제690회 정기연주회에서 임준희의 교향시 ‘용비어천가’ 중 ‘용들의 비상’, 이타마르 조르만이 협연한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선보였다.

지난해 8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오케스트라와 작곡가의 창작 음악 교류를 위해 ‘오작교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KBS교향악단(선정 작곡가 임준희·조은화) 외에 다섯 개의 단체를 선정, 2년간 예산을 지원한다. 이번 연주에 초연한 임준희의 ‘용비어천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위촉한 작품이다. 작품은 600여 년 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만든 ‘용비어천가’의 시를 발췌해 작곡했다. 총 4부작으로, 2년간 단계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연주는 그중 1부작이다.

무대 위에는 한국의 전통 타악기 ‘편경’과 ‘편종’이 동양적 위용을 과시한다. 요엘 레비의 지휘봉이 올라가자 종소리가 찬연하게 울린다. 예스러운 선율이 악기마다 독특하게 변주된다. 바람을 타고 흐르듯 자연스럽다. 하지만 깊은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종소리를 잡아먹는 커다란 하프 소리와 굵직한 감정이 배제된 관악기 소리를 들으니 아쉽다. 후반부로 갈수록 곡의 농도는 진해지나 깊은 ‘맛’이 없다. 결여된 그것은 바로 한국의 ‘맛’이다. 외국 지휘자가 음악에 녹아 있는 한국적 미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일이던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 이어진다. 1985년생으로 이스라엘 출신인 조르만은 활을 크게 쓰는 연주자다. 운궁은 매우 넓으나 다소 거칠다. 특히 강약을 조절하거나 프레이즈를 넘어갈 때의 매끄러움이 부족하다. 감정을 모으지 못하고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숨이 찬다. 3악장 후반부에서는 오케스트라와 박자가 완전히 엇나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작곡가 자신이 ‘소설’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문학적 요소가 짙은 곡이다. 한 음악가가 짝사랑의 고뇌를 이기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을 선고받지만, 완벽한 죽음에 이르지 못하고 마녀의 기괴한 공격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특히 관악기에 대해 탐구적 자세로 쓴 이 곡은 5악장으로 향할수록 관악기의 힘이 거세지는데, 주자들은 비장한 기량으로 음량을 풍부하게 담아내며 발군했다.

이번 연주의 특징은 문학적 사고가 깊은 작품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음악’과 ‘문학’이 결합한 또 하나의 예술, 이러한 예술의 내적 본질을 뿌리 깊게 수용하려면 연주자와 청중 모두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할 듯하다. 장혜선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할 이유

스웰 시즌 내한 공연

1월 1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영화 ‘원스’의 주인공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로 구성한 스웰 시즌이 5년 만에 내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이들의 음악을 사랑한 팬으로서 다시는 공연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온다니, 기뻤다. 그러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별한 연인이 한 무대에 서다니, 괜찮을까.

지난 1월 10일,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니 이러한 생각은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내는 소리는 여전히 공간과 순간을 빛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영화 ‘원스’ 촬영 당시 열아홉 살이던 이글로바는 그때의 차분하고 순수한 목소리 그대로였고, 한사드는 그런 그녀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특별한 무대장치도 화려한 기교도 없었지만, 진심이 담긴 음악은 객석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두 사람은 한사드가 이끌던 밴드 더 프레임스의 여섯 번째 앨범 ‘The Cost’의 객원 보컬로 참여하면서 처음 만났다. 영화 ‘원스’가 개봉한 후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것이 알려졌고, 두 사람은 ‘스웰 시즌’이라는 이름으로 월드 투어를 하며 많은 팬을 만났다. 하지만 2012년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이별을 한 뒤 각자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이글로바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 이번 공연은 3년 만에 성사된 것이다.

스웰 시즌은 인기곡인 ‘Falling Slowly’, ‘Say It To Me Now’ 등 ‘원스’의 OST 외에도 영화 ‘비긴 어게인’의 OST 중 한사드가 작곡한 ‘Coming Up Roses’ 등을 들려주었다. 무대의 가장 앞쪽까지 걸어 나와 마이크를 떼고 ‘Broken Hearted Hoover Fixer Sucker Guy’를 열창하기도 했다. 30분 이상 계속된 앙코르 무대는 밴드 전원이 객석 아래로 내려와 관객과 함께 포크송 ‘passing through’를 부르고 나서야 끝이 났다.

한사드와 이글로바는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었고,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할 이유는 오직 음악에 있었다. 스웰 시즌의 ‘다음’을 기대할 수 있어 기쁘다 김호경

지금 여기는

해발 700m!

월드뮤직그룹 공명 콘서트 ‘고원’

2014년 12월 26~31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

극장 안에 들어서니 곳곳에 안개가 서렸다. 공연 이름처럼 산 중턱 어딘가, 극장 이름처럼 하늘 어딘가와 맞닿은 느낌. 반원형 무대 앞에는 하나하나 손으로 놓은 조약돌이 새하얀 아지랑이를 피워내고 있었다.

대나무에서 영감을 받은 ‘스페이스 뱀부(Space Bamboo)’, 섬과 바다의 소리를 담은 ‘위드 시(With Sea)’에 이어 올해 창단 18주년을 맞은 월드뮤직그룹 공명이 2013년 8월부터 선보인 세 번째 테마는 ‘고원(Plateau, 高原)’이다. 강원도 평창의 운두령·성마령·청옥산 등지에서 마주친 풍경을 음악에 그대로 녹여냈다. 첫 곡으로 이번 테마에 맞춰 새롭게 작곡한 ‘바위손’과 함께 이들이 고원을 오르내리며 직접 촬영한 풍광이 극장에 새 창을 내어놓은 듯 영상으로 펼쳐졌다.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과 고원의 설경이 눈앞에 선하고 그 모습을 꼭 닮은 음악이 귓가에 아른거리니… 공연장이 따뜻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가 해발 700m’라는 농을 건네기 딱 좋았을 것이다. 두들기고 숨을 불어넣는 나무들의 노래가 인상적이던 ‘하얀달’ 그리고 기존에 연주해온 ‘통해야’ ‘놀자’ ‘고원’에 이어 다채로운 관악 소리가 인상적인 ‘구상나무’에 다다르니, 어느새 산 중턱에 오른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커피 드실래요?”

갑자기 이게 웬 소린가. 공연 한 중간, 인터미션 대신 티타임(?)이 등장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객석 여기저기서 장대 같은 팔들이 솟아오른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손을 한껏 들었지만, 아쉽게도 건너편 잘생긴 아저씨가 당첨되었다. 어느새 자리한 손때 묻은 나무 등걸 의자며, 소소한 캠핑 도구로 무대 조명이 밝혀진다. 산에서 채집해왔다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조금 전까지 악기를 쥐고 있던 연주자의 손에는 원두를 가는 핸드밀이 들려 있다. 전기포트의 물이 끓고, 스륵스륵 콩 가는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이내 원두커피 냄새가 객석까지 번졌다. 나무 등걸에 앉은 관객과 연주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길 위에서 별을 만지다’가 자연스레 울려 퍼졌다. 자연에서 품은 음악을 극장 안까지 고스란히 들고 온 노력 덕에, 이날 공명을 만난 자리는 유난히 따스하고 편안했다. 직접 찍어온 밤하늘 별자리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놓은 ‘기린자리’, 평창 청옥산에서 품은 야생화를 제목으로 삼은 ‘천여화’나 운두령에서 영감을 받은 ‘구름 위로’에 다다르니, 지금까지와 다른 내밀한 산의 풍광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침침한 지하 연습실에선 영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무작정 산에 올랐다는 그들. 고원에서 마주한 태양과 구름, 밤하늘과 숲을 보고 만든 이들의 음악은 늘 그랬듯 자연을 꼭 닮았다. 그래서 이날의 고원은 투명했고, 공명했다.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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