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피아노 듀오 허비 행콕·칙 코리아

37년 만에 재결성한 전설의 재즈 피아노 듀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재즈란 무엇인가’에 대한 선명한 대답을 제시할 필청의 무대

존 콜트레인과 마일스 데이비스 시대 이후 허비 핸콕과 칙 코리아는 재즈의 흐름을 주도해온 거장들이다. 하지만 이 첫 문장은 얼마나 뻔하고 상투적인가. 그들의 내한이 임박했다고 해서 새삼스레 이들의 음악적 성과를 늘어놓는 것은 얼마나 겸연쩍은가. 그러니, 그보다는 이들의 음악과 한국의 재즈 팬들을 함께 놓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내 기억에 이들은 각각 서너 차례 내한 공연을 가졌다. 하지만 이 거장들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명성에 걸맞은 관객 동원을 기록하지 못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한국의 재즈 팬들이 핸콕과 코리아의 음악을 꼭 좋아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 한 해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한국에서 이들의 단독 음악회가 티켓 1000장을 팔기 어렵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자라섬 무대에는 핸콕·코리아와 견줄 만한 명성의 연주자가 공연한 적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키스 재럿의 내한 공연을 그토록 학수고대하며 몇 회의 공연을 매진시킨 한국의 팬들이 그와 같은 급의 국제적 명성을 누려온(그렇다. 그들은 실제로 경쟁자들이다!) 핸콕과 코리아를 외면해온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핸콕·코리아·재럿은 모두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재즈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크게 보자면 유사한 스타일의 건반 주자들인데도 말이다. 해외의 경우를 보면, 이 세 건반 주자의 팬은 대체적으로 겹친다. 물론 세 사람의 음악은 완전히 다르기도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새로운 재즈를 환영한 재즈 팬들은 이들의 음악적 모험에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한국의 재즈 팬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경향성과 연대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키스 재럿만 편애한다. 왜 그런 걸까?

이들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한국 재즈 팬들에게는 이와 유사한 현상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팻 메스니다. 메스니는 한국에서 일주일 동안 공연하면서 전 공연을 모두 매진시킨 기록이 있다. 하지만 재즈에서 같은 흐름을 이끌어왔으며, 국제적으로 동급의 명성을 누려온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의 내한 공연은 단 1회 공연도 좌석을 완전히 채우지 못했다. 왜 그런 걸까?

‘힐링’이 아닌 ‘재즈’로서 재즈

물론 안다. 재즈 음악회보다 야외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는 이유를. 키스 재럿이 허비 핸콕·칙 코리아보다, 팻 메스니가 존 스코필드보다 한국인의 취향에 훨씬 잘 맞는다는 것을. 답답하고 값비싼 콘서트홀 공연보다는 넓고 쾌적한 야외에서, 그것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편안하게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재즈 듣는 것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키스 재럿 혹은 팻 메스니의 낭만적이면서도 고요한 사운드와 선율에 사람들이 ‘힐링’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라섬에 한 해 10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면 최고 재즈 거장의 콘서트는 그래도 1000장의 티켓은 팔려야 정상이 아닐까? 키스 재럿 혹은 팻 메스니의 공연이 몇 차례씩 매진됐다면 그와 동급의 다른 아티스트의 공연은 단 한 회라도 매진이 돼야 하는 것 아닐까?

만약 그것이 우리 음악 시장에서 불가능한 것이라면, 이유는 간단하다. 정작 재즈를 듣는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넓은 야외에서 피크닉과 더불어 재즈를 듣는다고 하면 그 음악을 들으러 갈 사람은 많지만 재즈 그 자체를 음악회에서 혹은 클럽에서 들을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키스 재럿과 팻 메스니에 대한 편애도 마찬가지다. 재즈 연주자들 중에서 오로지 그들만 좋아하는 팬들은 실은 그들의 음악 중 일부만 편식하고 있다. 재럿과 메스니의 여러 음악 중 소위 ‘힐링 뮤직’이라 부를 만한 요소의 음악만 즐기는 것이다. 그들이 ‘재즈’ 연주자로서 어떤 성격인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췄는지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까운 지면을 빌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재즈를 재즈라는 고유의 음악으로 들어달라는 매우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재즈는 피크닉 음악도, 힐링 음악도 아니다. 지난해 미국 음악 시장 통계로 1.4%를 차지하며 여러 장르 중 최하위를 기록한 재즈(그것은 단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가 그래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1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재즈만이 발전시켜온 고유의 음악적 가치 덕분이다. 피크닉에서 듣기 좋고 우리를 힐링시켜서가 아니다. 재즈가 만약 그런 용도라면 재즈는 과도한 음악적 노력을 쏟아붓는 과비용의 백그라운드 음악이 되고 만다. 재즈를 일종의 편안한 BGM으로 소비할 때 제아무리 허비 핸콕과 칙 코리아가 재즈의 거장이라고 말한들, 그 이야기는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재즈에 꽤 호감을 갖고 계신 많은 분에게, 그래도 꽤 오래 재즈를 들어온 한 팬이 보내는 호소문이다. 재즈 페스티벌에서 좀 더 음악에 집중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키스 재럿과 팻 메스니 외에도 그에 견줄 만한 다른 아티스트가 많다는 것을, 그들의 음악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


▲ 공연 전 청중에게 인사하는 허비 핸콕과 칙 코리아 ©Chris Sweda

재즈에 새 바람을 일으키다

허비 핸콕과 칙 코리아를 이야기하기 위해 너무 먼 길을 돌아왔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들은 1970년대 이후 재즈에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 중 하나다. 아울러 키스 재럿·팻 메스니와도 근거리에 있는 재즈의 리더들이다. 허비 핸콕(1940년생)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역사적인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 밴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마지막 어쿠스틱 밴드로, 이후 그가 전기 사운드와 록을 도입해 재즈의 방향을 급선회했을 때 핸콕의 후임으로 들어온 건반 주자가 칙 코리아(1941년생)다. 칙 코리아는 1970년까지 마일스 밴드에서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그 시기에 같은 밴드에서 오르간을 연주한 인물이 키스 재럿(1945년생)이다. 그 시기에 핸콕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탈퇴해 자신의 밴드를 결성했지만, 음악적 성격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와 마찬가지로 일렉트릭 사운드의 재즈-록 퓨전을 추구했다. 코리아는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를 거쳐 프리재즈 그룹 서클을 결성해 활동하다 1972년 그룹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이후 RTF로 표기)를 결성하면서 전면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RTF는 코리아의 혈통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패니시 무드를 바탕에 깔고 환상적인 전기 사운드를 사용함으로써 마일스 데이비스가 주창한 일렉트릭 사운드를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이듬해 핸콕도 자신의 새로운 밴드 이름을 타이틀로 내건 음반 ‘Head Hunters’를 발표했는데, 당시의 펑크(Funk) 리듬과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이 음반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핸콕을 재즈의 간판으로 부상시켰다.

하지만 일렉트릭 사운드와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즈에 새 바람을 일으킨 핸콕과 코리아는 탁월한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그래서 키스 재럿이 그랬듯이 여전히 어쿠스틱 사운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코리아는 자신의 피아노 독주 음반 혹은 비브라폰 주자 게리 버튼(그는 그 무렵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를 발굴했다)과의 어쿠스틱 이중주 음반을 계속 발표했으며, 핸콕은 마일스 퀸텟에서 함께 활동하던 멤버들과 프레디 허버드(트럼펫)를 규합해 1977년 퀸텟 V.S.O.P.(Very Special Onetime Performance)를 결성했다. 이들이 어쿠스틱 재즈로 복귀하자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재즈가 돌아왔다”는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허비 핸콕과 칙 코리아가 피아노 듀오로 전미 투어에 나선 것은 이듬해인 1978년이다.

두 전설이 남긴 두 장의 마스터피스

이 재즈 피아노 명인의 듀오 콘서트는 두 종의 음반으로 발표됐다. 먼저 핸콕이 계약을 맺고 있던 컬럼비아 레코드가 ‘An Evening With Herbie Hancock&Chick Corea’을 발매했고, 곧이어 코리아가 속한 폴리도 레코드에서 ‘Corea Hancock’을 발매했다. 모두 1978년 2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서부에서 있었던 실황 녹음이다.

이 피아노 듀오 음반은 재즈 역사상 유례가 없는 피아노 2중주의 걸작이다. 기본적으로 재즈가 즉흥연주의 음악이라고 할 때, 두 사람의 즉흥은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차원의 긴장을 만들어냄으로써 재즈의 진수를 들려주었다. ‘An Evening With Herbie Hancock&Chick Corea’와 ‘Corea Hancock’에는 몇 개의 동일한 곡이 연주되었지만 두 녹음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은 이 피아노 듀오 연주회의 즉흥성을 잘 말해준다. 그 어떤 곡이든 완벽하게 요리하는 두 사람의 기교에도 불구하고 연주자 자신들도 끝 모르게 전개되는 즉흥연주의 긴 여정은 서로에게 음악적 무중력 상태를 만들어냄으로써 핸콕의 작품 ‘Maiden Voyage’와 코리아의 작품 ‘La Fiesta’를 35분이 넘는 오디세이로 탈바꿈시켰다.

그런데 이들의 연주는 말 그대로 V.S.O.P(매우 특별한 일회성 공연)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것은 37년이란 긴 세월에 한정해서 한 말이다. 다시 말해, 두 거장은 그간 각자 분주하게 활동하다 올해 피아노 이중주로 37년 만에 다시 만났다. 3월 미국 투어를 시작으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 투어에 나서고, 그중 5월에는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선다. 당연히, 진정으로 재즈를 듣고 싶은 음악 팬에게, 특히 피아노 재즈 팬에게 이 연주회는 필청의 무대다. 재즈가 왜 즉흥음악인지, 재즈가 왜 함께 연주하면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소셜 뮤직인지 이들의 연주회가 선명하게 들려줄 것이다. 아울러 이들의 듀오 음반을 애청해온 오랜 재즈 팬이라면 음반을 통해 느낀 음악의 열락을 눈앞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공연을 놓치는 건 너무 아깝다. 37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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