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이정란

홀로서기를 위한 아름다운 첫걸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6월 1일 12:00 오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로 솔리스트로서 제2의 도약을 꿈꾸는 그녀의 변신

첼리스트 이정란이 한국에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2000년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에서 로스트로포비치 재단 특별상을 받으면서부터다. 이후 그녀는 2003년 루토스와프스키 콩쿠르에서 특별상, 모리스 장드롱 콩쿠르등에서 2위를 수상하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6년에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차세대 첼리스트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음대 재학 시절인 200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한 이정란은 한국에서는 양성원, 파리 음악원에서는 필리프 뮐러를 사사했고, 실내악 전문사 과정에서 이타마르 골란을 사사했다. 그녀는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멤버로 활동해온 트리오 제이드의 첼로 주자이기도 하다.

2008년 귀국한 이정란이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서울시향이었다. 그녀는 올해 초까지 서울시향 부수석으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연주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 커리어의 한 축을 이룬 오케스트라 단원의 품을 떠나 솔리스트로서 아름다운 홀로서기를 하려 한다. 그 출발의 첫 무대인 ‘Re, birth’에서 들려줄 레퍼토리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6월 24일과 7월 1일 양일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펼쳐진다.

바흐 자신의 인생이 담긴 무반주 모음곡 전곡

“정말 떨리고 많이 긴장돼요. 한편으로는 저의 첼로 인생 중 가장 큰 프로젝트가 될 이번 무대가 무척 기대되고요. 음악을 했던 시절은 언제 어느 때나 행복했지만 이제는 10대, 20대 때처럼 근육이 원하는 만큼 쉽게 잘 안 따라줄 때가 많고, 나이가 더 들기 전 최상의 연주를 할 수 있을 때 솔리스트로서 의미 있는 무대를 갖고 싶은 마음에 이번 공연 무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로 레퍼토리의 구약성서라 불릴 만큼 첼리스트에게는 높은 산으로 통한다. 그녀는 ‘바흐’ 음악을 통해 진정한 음악의 의미를 깨닫고 연주자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새로 태어나고 싶은 시기였기에 이번 연주회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제가 근래에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었거든요. 그러면서 생겨난 것이 결국 ‘진짜 내 음악을 해야 한다’는 절실함이었어요. 복잡한 마음 한가운데서도 바흐 연습을 위해 첼로와 함께 있으면 제 곁에 음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더군요. 음악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이틀에 걸쳐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4·5번 2·3·6번을 연주하면서 전곡 연주의 대장정을 마칠 예정이다.

고독이 진짜 음악을 만든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1936년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가 연주하면서 알려진 작품으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활 놀림과는 다른 첼로 저현만의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면서 울려 퍼지는 고요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첫 곡과 마지막 곡은 작곡한 순서대로 차례로 선곡했고, 중간에 연주하는 작품들은 각 작품의 특성과 매력을 고려해 선곡했습니다. 1번과 4번은 바흐 젊은 시절의 싱그러움과 패기를 느낄 수 있는 곡이고, 5번과 2번은 유일하게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단조 작품이죠. 굴곡지고, 무겁고, 때로는 투박한 선율로 격정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서정적 선율로 아름다움을 전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6번은 가장 화려하면서도 시적인 생명력이 넘쳐나는 곡으로 특별한 감동을 주는 곡이에요.”

그녀의 말대로 이 작품을 듣고 있노라면,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과 중후한 중년 시절, 그리고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견딘 후의 행복한 노년 시절의 모습이 스쳐 지나는 듯하다.

마치 바흐의 인생을 보는 것처럼 이 작품은 작은 시내에서 시작해 깊고 넓은 강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바흐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 이 작품을 그녀는 어떻게 연주하려는 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얻은 답은 ‘심플함’이다.

“담백하고 간결함 속에서 오는 정직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어떤 기교보다도 곡 자체가 워낙 완벽한 작품이라 무반주 첼로곡의 서정적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바흐가 써놓은 노트 하나하나 그 화성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성공적인 연주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일반 연주회장이 아닌 서울주교좌성당이라는 것도 울림이 중요한 첼로, 그리고 깊은 신앙을 갖고 있었던 바흐 음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감사하게도 이번 연주를 준비하며 한참 멀어져 있던 제 신앙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특히 이번 연주회가 있기 전 공연장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요양원이나 병원, 보호시설 등 위로가 필요한 곳에 직접 찾아가 연주를 하게 됐어요. 이번 연주가 제 자신만의 음악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음악은 결국 나눔이기에 이제 음악을 하는 의미를 ‘내 자신’에게서 ‘타인’에게로 향할 때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은 2007년 프랑스에서 연주한 적이 있지만, 하면 할수록 마르지 않는 샘처럼 새로운 정신과 감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무대가 제가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사람들과 공연을 듣기 위해 온 청중, 그리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진정한 음악인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기를 기도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요즘, 그녀는 고요함 속에 깨닫는 것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결국 혼자 있는 나와 마주칠 때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하지 않던가.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열망하는 것, 어쩌면 진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마음을 내려놓는 가장 깊은 그 지점에 존재할지 모른다. 첼리스트 이정란이 전하고 싶은 소리도,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바흐의 감동도 그 순간 진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사진 MOC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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