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피터 크리스 보티

통영 바다에 울리는 낭만의 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트럼펫의 달콤한 음색에 서정미를 연결시킨 로맨틱 감성주의자를 만나보자

아홉 살의 크리스 보티(Chris Botti)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트럼피터 독 세버린슨의 연주 장면이 흘러나오자, 피아노를 배우던 꼬마는 탄성을 질렀다.

“트럼펫은 정말 멋진 악기구나!”

그렇게 트럼펫과 조우한 크리스 보티. 40여 년 트럼펫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음악적 기틀을 다진 시기

1962년 10월 12일, 크리스 보티는 미국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덕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습득했고, 열두 살이 되던 해 마일스 데이비스의 ‘My Funny Valentine’ 음반을 듣고는 재즈 뮤지션이 되리라 결심한다. 이러한 보티에게 음악에 대한 진지함을 일깨워준 사람은 어머니다. 다소 엄격했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오리건 심포니의 수석 트럼펫 주자인 프레드 소터에게 레슨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레슨을 위해서라면 80마일(약 129km)이나 떨어진 곳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움직이는 ‘열성 어머니’였다.

보티는 어릴 적부터 음악 외에 다른 것은 일체 잊고 지내왔다. 젊은 트럼피터로서 성공을 열망했고, 음악에 대한 집념으로 하루에도 수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어느 재즈 캠프에서 데이비드 베이커를 만났는데, 베이커는 보티에게 트럼피터 프레디 허버드와 클리퍼드 브라운에 대해 더 연구하라며 자극을 줬다. 베이커의 카리스마에 매료된 보티.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인디애나 대학교에 입학해 베이커와 윌리엄 애덤의 문하생이 된다. 사실상 ‘인생의 멘토’는 윌리엄 애덤이었다고, 보티는 고백한다. 애덤에게 스케일과 긴 톤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운 후, 보티는 지난 25년간 매일같이 그 방법으로 연습 중이다.

대중성 확보를 성취한 트럼피터

보티의 음악적 경력에 쐐기를 박은 사람은 팝가수 스팅이다. 스팅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트럼펫 연습과 요가를 병행하며 투어 공연을 쉼 없이 이어왔다. 보티는 약 3년 동안 스팅의 ‘더 브랜드 뉴 데이 투어’의 밴드로 활동하며 스팅의 음악적 패턴을 오롯이 받아들인다.

“스팅은 내게 많은 기회를 줬다. 월드 투어에서 도입부 연주를 항상 내게 맡겼는데, 이것은 오늘날 내가 트럼펫 주자로서 성공하는 데 큰 기반이 됐다. 스팅은 나의 가장 큰 지지자이며, 좋은 친구, 큰형님 같은 존재다.”

보티가 회고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2008년 보스턴 심포니홀에서 열린 공연이다. 2008년 조시 그로번, 요요 마, 존 메이어, 캐서린 맥피, 스팅, 루차 미카렐리, 스티븐 타일러 등 ‘스타워즈’급 게스트를 초대한 공연을 선보였고, 다음 해 ‘Live In Boston’ 실황 음반을 발매하면서 연주자로서 가장 화려한 시기를 맞이했다.

7월 18일, 그는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크리스 보티와 함께하는 로맨틱 이브닝’ 공연을 선보인다. 이미 다섯 번의 내한으로 화제를 모은 보티.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아 자신의 밴드와 함께하는 월드 투어를 추진 중이며, 한국 공연은 통영에서만 열릴 예정이다.

다음은 보티와의 일문일답.

이미 다섯 번의 내한 공연을 가졌다. 자주 내한하는 편인데, 한국에 대한 인상이 궁금하다.

넘치는 에너지, ‘빨리빨리’ 문화, 고유의 민족성과 전통 음식!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하고 있지만 한국은 손에 꼽을 정도로 인상이 깊다. 통영에서의 공연은 처음이라 여행자처럼 설렌다. 얼른 한국을 방문해 맛있는 한국식 바비큐를 맛보고 싶다.

‘크리스 보티와 함께하는 로맨틱 이브닝’의 레퍼토리 구성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언젠가 주변 지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크리스! 오늘 밤 너의 콘서트에 갈 예정이야. 너와 트럼펫만 나오는 거야?” 내가 솔로 연주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심지어 친구들조차 나의 콘서트가 어떤 성격을 띠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는 밴드와 음악가들이 협업하며 다양한 음악 장르를 넘나드는 무대를 만들어왔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뤄낸 것이다. 이번 내한에서는 ‘Impressions’ 음반에 수록된 곡 위주로 연주할 예정인데, 재즈·클래식 음악·록을 모두 소화하는 최고의 밴드를 보여줄 것이다. 멋진 밤이 되리라 보장한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데뷔 초창기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재즈에는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있고, 나는 그것을 대중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연주했다. 데뷔 초창기에는 함께할 음악가들을 섭외하기 어려워 전자음악으로 많이 대체했지만, 커리어가 쌓이면서 유명한 음악가들과 함께 라이브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스무드 재즈(Smooth Jazz)’로 당신을 분류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즈는 계속 변하고 발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나는 트럼펫 자체와 팬들에게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다시 말해 나의 트럼펫 사운드를 유지하고, 전 세계를 투어하며 팬들을 위한 공연을 계속할 것이다. 나의 음악 장르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청중이 얼마만큼 성숙해졌느냐’와 ‘팬들이 콘서트를 얼마만큼 즐기고 있느냐’다. 그것을 확인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2008년 보스턴 심포니홀에서 스팅, 요요 마, 존 메이어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과 화려한 콘서트를 열었다. 2009년 ‘Live In Boston’ 실황 음반이 발매됐고,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들과 작업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

‘Live In Boston’ 음반은 제작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작업실에서 음반 작업을 하던 중 베이스 녹음이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콘서트를 할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음반은 다시 녹음하면 되지만, 무대 위에서 실수를 하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다. 음반으로는 수익을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음악가와 오케스트라를 섭외하고 연주를 녹음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존 메이어, 조시 그로번, 스팅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기부하며, 먼 곳에서 한걸음에 달려와줬다. 정말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2008년 9월 18일에 음반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달 미국 주식 시장이 붕괴되고 세계 금융 위기가 찾아왔다. 걱정 속에서 작업을 진행했지만, 우리에게 엄청난 행운이 찾아왔다! 요요 마, 스티븐 타일러 같은 음악가들 덕분에 음반이 살아난 것이다. 마치 ‘매직 인 어 보틀(Magic In A Bottle)’처럼!(스팅이 부른 ‘메시지 인 어 보틀(Message In A Bottle)’을 빗댄 말)

당신이 발매한 음반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무엇인가.

2012년에 발매한 ‘Impressions’다. 이 음반은 내가 늘 추구하던 것을 전체적으로 담아냈다. 음반에 수록된 13개 발라드 곡의 다양한 ‘감정’은 노래를 듣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그리는 마음에 머물도록 한다. 음악에 담아낸 느낌과 청중의 마음이 동일하다는 측면에서 이 음반은 성공적이다. 나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인 보비 콜롬비와 섭외하고 싶은 음악가 명단을 만들고, 평소 존경하던 마크 노플러, 빈스 길, 허비 행콕에게 환상적인 편곡을 준비했다며 7년 동안 어필했다. 그들은 음악을 감칠맛 나게 소화했고, 멋진 음악이 탄생했다.

다른 악기의 곡을 트럼펫을 위해 편곡할 때, 무엇에 기준을 두는가. 개인적으로 쇼팽 전주곡 20번 편곡이 인상 깊었다.

‘Impressions’ 음반의 쇼팽 전주곡 20번은 빈스 멘도자가 편곡했다. 궁극적으로 나의 모든 중심은 좋은 음악을 음반에 싣는 것이다. 음반 업계의 최고라 할 수 있는 작·편곡가와 함께 일을 하는데, 그들과의 작업은 항상 재밌다. 전설적인 마일스 데이비스도 항상 훌륭한 편곡가와 협업하며, 아름다운 트럼펫 소리를 내는 데 모든 것을 집중했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재즈 뮤지션이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위대한 음악가라면 자신만의 독창성을 내세워야 한다. 독창성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생각한 독창성을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필요하다. 성공한 음악가는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가 분명한 사람들이다.

음악가로서 앞으로 계획은.

밴드와 함께 전 세계를 계속 여행할 생각이다. 음악을 한다는 것과 음악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투어 공연을 지속하며 놀라운 행운을 계속 만들고 싶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 믿는다.

크리스 보티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하는 나팔수다. 무대를 즐기는 음악인이며, 세계를 방랑하는 자연인이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푸른빛으로 덮인 통영 바다에 크리스 보티가 뽑아내는 로맨틱한 선율이 어우러진다. 여름의 길목, 잠시 쉬었다 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글 장혜선 기자(hyesun@gaeksuk.com)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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