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건 루이스 & 낸시 해밀턴 ‘How High The Moon’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1950년대 파란을 일으킨 불후의 명곡

서부 개척 시대 이후 동부에서 사는 많은 미국인이 그랬듯 1945년 뉴욕 재즈계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킨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버드 파커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명성이 빠르게 대륙을 건너 서부로 전해지자 LA에서 재즈클럽을 운영하던 빌리 버그는 그해 12월 찰리 파커가 속한 디지 길레스피 퀸텟을 초청해 2월 초까지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일정을 잡았다. 디지와 버드는 부푼 꿈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하지만 명성은 단지 이들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약물과 알코올로 뒤범벅이 된 버드의 악명도 캘리포니아로 빠르게 건너간 것이다. 그래서 빌리 버그는 디지에게 밴드 구성에 관한 조건을 제시했다. 술과 약으로 걸핏하면 지각 혹은 무단결근을 하는 버드의 대타로 보조 연주자를 준비해달라는 것이었다. 디지는 LA에서 활동하던 러키 톰슨에게 대기를 부탁해놓았고, 아울러 자신의 빅밴드에서 비브라폰을 연주하는 밀트 잭슨을 대동하고 LA를 향해 날아갔다.

빌리 버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버드는 지각과 결석을 일삼았고 러키 톰슨과 밀트 잭슨이 없었다면 공연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나 디지가 진짜 상심한 것은 그들의 새로운 음악, 비밥에 대한 LA 관중의 태도였다. 그들의 빠른 템포, 복잡한 화성 그리고 기이한 멜로디에 LA 관중은 어리둥절해했다. 거의 두 달 가까이 진행된 빌리 버그에서의 공연이 끝나는 대로 디지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벌써부터 먹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기 공연이 끝날 무렵 LA에서 비밥에 유독 관심 많았던 다이얼 레코드의 로스 러셀이 디지 길레스피에게 녹음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디지는 1946년 2월 5일부터 6일까지 다이얼 레코드에서 여섯 곡의 녹음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버드는 첫 날 녹음한 ‘Diggin′Diz’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다섯 곡을 녹음한 6일에는 아무 말도 없이 스튜디오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무렵 버드의 행동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수완 좋은 마약상 ‘무스 더 무치’(버드는 그를 위해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곡을 써주기도 했다) 덕에 버드는 마음껏 헤로인을 복용했고, 로스 러셀이 디지와의 레코딩 세션을 위해 미리 지불한 출연료는 물론이고 심지어 뉴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마저 환불받아 헤로인과 술값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공연에 참패한 디지는 녹음을 마친 후 밴드 멤버들과 함께 뉴욕행 비행기를 탄 반면, 버드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약에 절어 LA에 눌러앉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다이얼 레코드는 선지불한 출연료를 이행하지 않은 버드에게 계약을 요구했고, 그래서 1946년 3월 28일 찰리 파커의 이름으로 네 곡을 녹음할 수 있었다. 그중 세 곡은 버드의 초기 작품들이 대부분 그랬듯 기존에 잘 알려진 스탠더드 넘버의 코드 진행을 기초로 새로운 멜로디를 쓴 곡이었는데, 그렇게 만든 ‘Ornithology’는 단번에 비밥 연주자들과 팬들의 귀를 사로잡았다(같은 날 녹음한 ‘Moose The Mooche’는 거슈윈의 ‘I Got Rhythm’을 기초로 만든 곡이다).

‘Ornithology’는 비밥 작품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이 곡에 코드 진행을 제공한 곡 ‘How High The Moon’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모건 루이스(작곡)와 낸시 해밀턴(작사)이 1940년 뮤지컬 ‘쇼를 위한 두 사람(Two for The Show)’을 위해 만든 이 곡은 1940년대 중반 버드가 몸담았던 디지 길레스피 밴드가 연주했지만, 이전까지 베니 굿맨을 제외하면 그 어떤 재즈 연주자도 주목하지 않았던 곡이다.

새로운 방식을 위한 밑거름이 되다

‘How High The Moon’을 진정한 자신의 대표곡으로 만든 최초 인물은 엘라 피츠제럴드였다. 스윙 시대에 화려한 각광을 받았다가 비밥의 물결에 의해 1940년대 후반 뒷전으로 물러난 대부분의 보컬리스트와는 달리 초절기교의 스캣으로 그 시대를 돌파했던 그녀는 ‘How High The Moon’을 통해 비밥 보컬의 금자탑을 만들었다. 원곡으로 시작해 이내 ‘Ornithology’의 멜로디로 넘어가는 그녀의 해석은 여섯 코러스(96마디) 동안 가사가 없는 즉흥 스캣을 구사함으로써 찰리 파커의 이념이 즉각 보컬 영역으로 확장되었음을 들려주었다(음반 ①).

엘라가 스윙 시대에 등장해 비밥 시대에도 생존한 가수라면 세라 본은 비밥 시대에 탄생한, 본성이 모던 재즈 가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앞서서 비밥 보컬의 이정표를 세운 엘라와의 대결을 통해서만 자신의 본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세라는 어니 윌킨스가 빅밴드로 편곡한 ‘How High The Moon’을 통해 엘라에게 도전장을 던졌고, 그곳에는 역시 찰리 파커의 영혼이 드리워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달랐다. ‘버드의 환생’ 캐넌볼 애덜리를 독주자로 내세워 세라의 스캣과 일대 격전을 벌이는 것이었다. 네 마디씩 주고받으며 전개되는 두 사람의 솔로는 네 코러스 동안 숨 가쁘게 이어진다(음반 ②).

엘라 피츠제럴드의 노래 이후 ‘How High The Moon’을 연주하다가 ‘Ornithology’로 넘어가는 방식은 재즈에서 매우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현악 앙상블과 재즈 독주자들을 기용한 베니 골슨의 편곡만큼 이 곡의 성격을 극적으로 들려준 녹음은 결코 없었다(음반 ③). 그것은 스테레오 녹음이 일반화되었던 1960년대 초에 이 녹음 기술의 효과를 극단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왼쪽 채널에서는 ‘How High The Moon’의 선율이 현악 앙상블로 연주되고 오른쪽 채널에는 재즈 연주자들의 ‘Ornithology’가 동시에 흘러나온다. 두 개의 선율은 절묘한 ‘푸가’를 만들어냄으로써 본질적으로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하지만 에릭 돌피와 빌 에번스의 솔로가 등장할 때 음악은 완전한 한 몸이 되어 저 하늘의 달처럼 혹은 한 마리 새처럼 높이 비상한다.

‘How High The Moon’을 비교적 찰리 파커의 자장(磁場)으로부터 독립시킨 녹음을 꼽자면 단연 그라펠리와 타이너의 2중주다(음반 ④). 버드의 오래된 주술을 걷어내고 그들은 온전히 자신들의 즉흥연주를 만들어낸다. 여기에는 각 악기를 완벽히 통제하는 명인들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명징한 울림이 있다. 장고 라인하르트와 존 콜트레인이라는 이질적인 악파(樂派)는 여기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 달의 추천 재즈음반

1 엘라 피츠제럴드 Lullabies of Birdland

Decca/Verve 0602517247659|연주시간 3분 12초|1947년 12월 20일 녹음|엘라 피츠제럴드(보컬)/연주자 미상

2 세라 본 In the Land of Hi-Fi

Emarcy 826 454-2|연주시간 2분 35초|1955년 10월 25일 녹음|세라 본(보컬)/캐넌볼 애덜리(알토 색소폰 솔로)/어니 윌킨스(편곡·지휘)

3 베니 골슨 Just Jazz!

Jazz Beat 543|연주시간 3분 43초|1962년 4월 녹음|에릭 돌피(알토 색소폰 솔로)/빌 에번스 (피아노 솔로)/베니 골슨(편곡·지휘)

4 스테판 그라펠리&맥코이 타이너 One on One

Milestone MCD-9181-2|연주시간 3분 55초|1990년 4월 18일 녹음|스테판 그라펠리(바이올린)/매코이 타이너(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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