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의 품격, 대전의 요모조모

찾아가는 지역 순례 ① 대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이제 수도권에만 문화예술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옛말이다. 각 지역마다 자신들만의 개성과 특성을 살린 다양한 콘텐츠의 문화예술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국 문화예술의 균형적인 발전을 기대하며 ‘객석’은 이번 호부터 각 지역의 문화예술 전문가들을 차례로 찾아가 지역별 문화예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명하기로 한다.

찾아가는 지역 순례, 그 첫 번째 지역으로 문화도시의 품격을 갖추고 아시아의 허브를 꿈꾸는 대전을 방문했다. 대전은 현재 인구 약 250만 명으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욕구가 무척 강한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다양한 문화공간이 있지만 특히 1996년 착공하여 2003년 10월 재개관한 대전예술의전당을 중심으로 활발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대전예술의전당은 공연뿐 아니라 공연예술 아카데미, 인문융합 아카데미, 공연체험 아카데미를 통해 시민의 문화예술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연주자들뿐 아니라 지역 음악가들의 무대도 균형 있게 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500여 석의 객석과 300여 명의 무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데, 앞으로 클래식 음악 수요 인구와 이들의 욕구를 생각할 때 클래식 음악 전용 홀 건립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전예술의전당과 함께 대전시립미술관도 시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문화공간이다. 그동안 의미 있는 작품들을 전시하여 큰 이슈를 모았고, 대전예술의전당과 가까워 공연을 찾은 시민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가치 있는 미술작품들을 수집·보존하는 것은 물론,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이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춰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대전은 인구 대비 미술관 관람객 수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로 지난 13년 동안 시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과학도시 대전의 특수성을 접목한 미디어·디지털 아트를 선도하는 전시로 주목을 받았다. 분수 공원과 잔디 공원이 있어 가족들이 음악과 미술을 관람하고 여유를 즐기기 좋은 쾌적함도 갖추고 있다. 그밖에 엑스포 과학공원, 한밭 수목원, 국립중앙과학관 등에서도 각종 문화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대전의 클래식 음악 공연은 크게 대전예술의전당 기획 공연과 주요 공연기획사를 통해 시민에게 제공되는데, 대표적인 음악 기획사가 대전예술기획이다. 대전예술기획은 대전 출신의 황하연 대표가 1992년 설립하여 지금까지 유명한 외국 연주자와 단체, 실내악 축제, 기획 연주회 등 대전의 굵직한 음악회들을 기획하여 문화 전반을 이끌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도 지속되기 쉽지 않은 대전실내악 축제를 15년째 펼쳐왔으며 이제는 대전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실내악 축제로 성장했다. 대전예술기획은 공영방송사인 KBS 대전방송국과 협력하여 공연과 홍보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5년 전부터는 지역 음악인들을 위한 음악회와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대전시민과 더욱 소통할 수 있는 음악회를 많이 만들어가고 있다.

대전 클래식 음악의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오케스트라다. 대전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대전시립합창단, 대전시립무용단,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도 대전 문화예술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4년 창단 30주년을 맞은 대전시립교향악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1984년 창단되어 뛰어난 기량과 매력적인 레퍼토리, 신선한 기획으로 최정상 오케스트라로 성장했다. 클래식 음악의 깊은 울림을 전하는 ‘마스터즈 시리즈’를 비롯해 유쾌한 음악적 탐험을 함께 하는 ‘디스커버리 시리즈’, 그리고 위로와 공감의 무대 ‘해피클래식’까지, 창조적인 기획으로 모든 공연에서 청중 판매율이 높고 매 시즌 중요한 기획들은 거의 매진될 만큼 인기가 폭발적이다. 그 밖의 단체들 역시 다양한 무대에서 훌륭한 기획을 통해 시민과 만나는 기회를 갖고 있다.

대전은 클래식 음악 교육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고, 비교적 많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으로 채택하고 있다. 대전예고를 비롯해 충남대 예술대학, 목원대 성악과, 뮤지컬 학부, 작곡·재즈 학부, 관현악학부, 건반악학부, 국악과, 배재대 실용음악과, 침례신학대 교회음악과와 피아노과 등이 대전의 주요 음악대학이다. 특히 2014년 개교 60주년을 맞이한 목원대는 지역 예술인을 배출하는 주요 기관으로, 문화의 시대에 필요한 음악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학생들은 졸업 후 개인 연주 활동과 함께 직업 연주단체나 교회 지휘자 및 솔리스트로 활동하거나 유학을 통해 전문 연주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울 등 타도시 출신 음악인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역 음악인과 전공생들이 연고지인 대전에서 진정한 음악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문화예술 기관들과의 긴밀한 협조도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각 대학마다 유기적인 교류와 협력도 시급하다.

대전 문화예술의 또 다른 중심지는 다름 아닌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다. 카이스트는 세계 대학 평가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뛰어난 인재가 모인 대학으로 한국 과학 기술의 창의와 도전을 상징하는 메카로 불리고 있다. 1989년 카이스트가 대전으로 옮겨지면서 훨씬 풍요로운 문화예술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학교에서 마련한 카이스트 문화 행사는 아름다운 캠퍼스를 배경으로 이제는 학생뿐 아니라 대전 시민이 사랑하는 공연문화로 성장하여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방송사의 경우 KBS나 MBC, TJB 등 주요 방송사에서 클래식 공연 홍보를 협찬해주고 있다. 현재 TJB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는 ‘아름다운 그대 곁에’가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으로 사랑받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욕구가 강한 시민과 다양한 기획 공연과 볼거리가 넘치는 대전. 현재 새로운 공연 문화 콘텐츠들이 기획자들의 열정과 만나 대전 문화예술의 성장을 이끌어 내고 있지만, 지역 문화예술의 성장에 필요한 문화 인식, 지속적인 경제 지원, 지역 예술인에 대한 관심 역시 필요해 보인다.

그동안 대전의 문화예술이 시민들에게 어떤 감동을 전하고 발전해 왔는지, 개선할 점은 무엇인지 대전 문화예술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TERVIEW ① 대전예술의전당 제5대 관장 오병권

클래식음악 전용홀 설립이 최고의 과제입니다

지난 4월 공모를 통해 대전예술의전당 관장으로 임명된 오병권 관장,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공연기획 전문가다. 한양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서울세종문화회관 공연기획관, 서울시립교향악단 기획실장과 공연기획자문위원을 역임했다. 30년의 시간 동안 오직 공연 기획에만 매진해온 그는 대전 문화예술의 메카 대전예술의전당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취임한 후 세 달이 지났는데, 대전이라는 지역만의 느낌과 그동안 지내온 소감은 어떠신가요?

대전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예요. 저는 이 분위기를 ‘클래시컬’하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웃음) 대전은 유난히 나무가 많은데, 숲이 많아서 그런지 공기도 좋고 여유롭고 사색하기 좋지요. 공연을 보기에 정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상 개선할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대전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갈망이 무척 높습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대전예술의전당이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부분이 있지요. 우선 좋은 음악회가 더 늘어나야 할 것 같고, 대전 지역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도 많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부서간의 소통도 더 필요하다고 느꼈고요.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대전예술의전당이라는 공간인데요. 저는 클래식 음악 전용 콘서트홀과 리사이틀홀이 따로 생겨야 모두가 원하는 문화예술 공연 서비스와 교육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취임하면서 ‘소통’을 많이 강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소통을 이뤄나갈 예정인가요?

기획팀이라고 공연만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홍보도 알고 마케팅도 알아야 하죠. 또 홍보부 역시 공연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당연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마케팅까지 연결되어야 하고요. 각 분야 사람이 서로 유기적으로 일을 돕고 전문성을 가질 때 사람도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야 일이 재미있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고요. 제가 취임해서 가장 주력했던 부분입니다. 5월 8일부터 무대 스태프, 주변 커피숍 직원들까지 서비스 교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공연장 활용, 활성화, 시민 교육프로그램, 나아가 학생 음악교육프로그램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서비스 교육을 받은 직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매우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조직이 커지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관료화’지요. 관료 사회는 자기 업무를 방어하기 위해 규정을 따지고 자기 벽을 치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내 옆 사람이 힘들고 어려울 때 같이 돕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장님은 공연기획뿐 아니라 해설자로도 유명하신데요.

좋은 공연을 만들었으면 홍보를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하죠. 어떻게 이 연주를 알릴 수 있을까. 어떤 콘셉트로 홍보를 해야 할까. 늘 사람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현재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람의 심리를 알고 문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하지요.

처음에 해설음악회는 공연의 모티브를 잘 설명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서울시향에 있을 때 만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해설을 하게 된 건 순전히 아나운서나 전문 MC들에게 줘야 할 사례비를 아끼기 위해서였어요.(웃음) 요즘은 제가 꼭 필요한 해설을 제외하고는 홍보팀이나 기획팀 직원들이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연장에는 공연 모니터링 전문가와 공연 해설 전문가가 필요한데 그런 일꾼들이 대전에서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연이 이제 대전예당 출신 전문가의 손을 거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임 관장에게 거는 지역 예술인과 시민들의 기대도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30년을 공연 기획을 하며 보낸 것이 분명 대전예술의전당을 이끄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교향악단 전문가는 오케스트라뿐 아니라 오페라, 발레, 실내악, 독주 등 모든 음악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공연기획은 종합예술이지요. 연주자와 청중이 그에 맞는 대우를 받고 존중받아야 기획도 성공하고 음악도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대전은 그동안 문화예술의 전당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다양한 기획 공연을 통해 묵묵히 이 일들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더욱 전문적인 공연장에서 더 다양해진 공연으로 대전 시민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선물해 드리고 싶습니다. 대전예술의전당이 우리나라 공연장을 선도하는 최고 연주회장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

 

 

학생과 시민이 어우러진 축제, 카이스트 문화 행사

카이스트 학생들의 문화 예술적 경험을 위해 마련한 카이스트 문화 행사는 1986년 4월 영화 상영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인기가 높아져 일반 시민에게도 문호를 개방,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행사를 통해 카이스트 구성원은 물론 대전 시민에게도 문화적 경험과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봄 학기와 가을 학기에 걸쳐 학기당 6~7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온 이 문화 행사는 2015년 여름, 현재까지 총 560여 회의 공연과 50여만 명의 청중을 유치하며 그 명성을 지키고 있다.

문화 행사의 기획을 맡아온 원경원 교수는 카이스트는 과학을 공부하는 곳이지만, 우리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하나의 답을 찾는 과학과 함께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예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다양한 연주자와 예술인이 카이스트를 찾았습니다. 물론 뮤지컬과 연극 공연도 이루어졌지요. 1980년대 대전으로 옮겨진 카이스트는 정말 허허벌판과 다름없었죠. 공부도 좋지만 문화예술을 즐길 만한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나 학생들이 금요일마다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학교에서 카이스트 금요문화행사를 시작한 것이지요.

다양한 음악이 있는데 카이스트에서 굳이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문화 행사를 꾸미는 이유는 다른 음악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들을 수 있지만 클래식 음악은 아무래도 쉽게 듣기 힘든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서를 안정시키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클래식 음악만 한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공연을 하면 청중이 700~1000명 정도 오는데, 60%가 시민이고 다음이 학교 학생과 직원으로 채워집니다. 모두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기는 모습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꽃을 보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 눈을 감아볼 수 있는 여유가 우리 삶에는 꼭 필요하니까요. 과학이 추구하는 이성과 예술이 추구하는 감성이 어우러진 인재들이 카이스트에서 더 많이 배출되고 그들이 사회를 의미 있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INTERVIEW ② 대전시립교향악단 지휘자 금노상 

아시아와 유럽 넘나드는 오케스트라를 꿈꾼다

30년 전 1984년 5월 2일 대전음악사에 남을 연주회가 대전시민회관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창단 연주회였다. 현재 대전 클래식 음악의 비약적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이들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30년의 시간은 이들을 깊이와 넓이를 갖춘 악단으로 성장시켰다. 새로운 30년을 향한 첫 발자국을 내디딘 금노상 음악감독을 만나보았다.

2011년에 취임해 올해 5년째 맞았는데요.

지난 2014년은 대전시향이 창단 3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많은 연주 중 특히 12월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가 있었는데, 그 연주의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30년이라는 가치를 되새기는 데 의미 있는 연주회였다는 평을 받았지요. 중요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시향과 인천시향을 이끌었던 경험이 대전시향을 지휘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각 지역마다 모두 특색 있고 좋은 연주를 시민에게 들려주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단원과 공연장, 시의 도움과 시민의 참여가 절대적이지요. 저 역시 어느 시향을 이끌던지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은 늘 있었습니다. 그 아쉬움을 보완하기 위해 대전에 와서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고요. 대전시립교향악단은 제가 오기 전부터 이미 좋은 연주를 해온 터였고 좋은 해외공연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해외 공연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무대였나요?

대전시립교향악단은 2012년 12월 5일부터 18일까지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역사적인 연주 투어를 가졌습니다. 특히 한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빈 무지크페라인 골드홀에서 연주했고, 헝가리 부다페스트홀, 이탈리아 문화홀, 스메타나홀, 헤라클레스홀을 연결하는 유럽 투어를 통해 대전시립교향악단은 세계화된 교향악단의 면모를 갖추었지요. 그 역량이 지금도 이어져 대전에서 펼쳐지는 시즌별 마스터즈 시리즈는 전회 매진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통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인 마스터즈 시리즈가 매진인 경우는 쉽지 않은데, 다른 다양한 기획 공연에 대한 시민의 반응은 어떤가요?

취임한 후 많은 시민이 클래식 음악을 더 사랑해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정통 클래식 음악 레퍼토리뿐 아니라 뮤지컬, 영화음악, 월드 뮤직을 소개하는 디스커버리 시리즈, 뛰어난 기량을 갖춘 단원들로 구성된 챔버 시리즈, 우리 동네 해피 클래식, 스쿨 클래식 등 다양한 기획 공연을 찾는 층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시리즈 기획 공연마다 특성이 있어서 찾아오는 관객의 연령층도 모두 다르지요.

대전시립교향악단은 기획이 굉장히 많고 다양한데, 기획팀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사무국의 시스템이 안정적이고 직원들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어느 단체보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것이 다양한 기획이 나올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단기간 기획을 하고 시간에 쫓겨 일회성으로 공연을 마무리하다 보면 절대 그 기획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10명의 직원이 다양한 공연과 홍보를 유기적으로 이어나가고 서로 교류하면서 연주회를 진행하기 때문에 당연히 공연의 질이 높고 음악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대전 클래식 음악 시장만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대전은 조용하고 안정적인 도시면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인구가 많은 편입니다. 관객층도 나이가 어느 정도 지긋한 경우가 많고, 시리즈 연주나 전문적인 기획 공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작년 12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는 미리 티켓이 매진될 만큼 관심을 모았습니다.

훌륭한 인프라가 있음에도 아쉬움은 존재할 텐데요.

아직은 미흡한데,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처우 개선이 시급합니다. 이건 대전시립교향악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오케스트라의 문제지요. 우리 사회에 좀 더 예술을 존중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대전에 아직 클래식 음악 전용홀이 없는데, 홀이 생겨난다면 대전 문화예술이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클래식 음악 전용홀 건립은 많은 예산이 필요할 텐데, 결국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를 아는 것이 중요하겠군요.

예술은 멀리 보고 가꿔야 합니다. 2012년 빈 무지크페라인 골드홀에서 연주할 때 대전시립교향악단은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사람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환호와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단원들도 감동받았고, 저 역시 그날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유럽 투어 연주를 하는데 예산이 많이 들었지만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의미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그 이후로 대전시립교향악단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이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앞으로의 청사진이 궁금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가 클래식 음악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아시안 페스티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대전이 중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태국, 방콕을 잇는 동북아의 클래식 음악의 허브를 형성할 수 있다면 대전시립교향악단이 음악적으로 더 큰 비전이 생겨날 수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아주 반가운 소식은 10월 4일과 5일 일본 아시안 연맹에서 주최하는 음악회를 오사카와 대전에서 합동으로 펼칠 예정이라는 것인데, 의미 있는 공연인 만큼 다른 아시아 무대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대전의 유일한 클래식 음악 방송 TJB의 ‘아름다운 그대 곁에’

클래식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방송 매체다. 클래식 음악 방송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긴 하지만,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서울과 수도권 방송국에서도 롱런하기 어려운 장르다. 대전의 클래식 음악 방송은 라디오 프로인 TJB 클래식 방송 ‘아름다운 그대 곁에’(이하 ‘아그대’)가 유일하다. 방송 진행을 맡고 있는 권기호 아나운서가 말하는 대전 클래식 음악 방송의 현재를 들어보았다.

“‘아그대’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2시까지 한 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하는데, 청취자 중에는 태교하시는 분이 많은 편이에요. 장르 자체가 익숙지 않아서 비롯되는 어려움을 ‘아그대’가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은 어렵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우연히 주파수를 돌리다가 만난 ‘아그대’에게 청취자들은 이런 말을 건네요. 마음의 위로가 된다고. 그것이 클래식 음악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휴식을 선사하고, 슬플 때 위로를 선사하는 영혼의 반가운 손님. 그래서인지 ‘아그대’를 통해 클래식 음악이 좋아졌다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종종 도착해요. 시민학교나 동호회에서 클래식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오기도 하고요. 소수만 즐기던 클래식 음악이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하나의 문화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이것이 ‘아그대’의 자부심이기도 해요.

선곡은 정통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크로스오버, 팝페라, 뮤지컬, 국악 등 다양하게 하고 있어요. 사실 청취자 중에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도 있지만,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입문자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획한 코너가 ‘명곡 속 숨은 악장’이에요. 우리 귀에 익숙한 유명한 악장과 더불어 그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악장을 소개하는 거죠. 스토리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친근하게 만나보는 ‘온리 유’나 작곡가의 명곡이 탄생하게 된 도시로 떠나보는 ‘클래식 음악도시기행’도 인기 코너예요.

결국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클래식 음악의 감동을 자리에서 변함없이 전하는 것이 ‘아그대’에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 음악을 좀 더 편안하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고요. ‘아그대’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에서 나아가 공연장을 찾는 것이 많은 이의 일상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INTERVIEW ③ 대전예술기획 대표 황하연

고음악과 바로크 실내악, 이제 대전에서 들으세요!

서울과 수도권에서 꾸준히 하기 어려운 실내악 축제와 고음악 시리즈를 통해 대전 공연문화의 현장을 누비고 있는 대전예술기획의 황하연 대표는 대전에서 나고 대전에서 공부하며 음악을 전공한 그야말로 대전 토박이 기획자다. 1992년 첫 출발한 이래 많은 성장을 이루어 지금 대전에서 펼쳐지는 많은 공연들 중 대전예술기획의 손이 가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다.

요즘 대전실내악축제로 한창 바쁘시지요?

작곡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공연기획사를 시작할 때 꿈꾸었던 것이 바로 실내악 축제였습니다. 워낙 실내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실내악으로만 구성된 축제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내악이 워낙 마니아층이 좋아하는 장르이고, 대중화하기 어려워 막상 진행하기 힘든 면이 많았습니다. 어느덧 벌써 15회 째를 맞았고, 많은 연주자 분이 도와주시고 성원해준 결과 자리를 잡고 요즘은 좋은 무대를 많이 펼치고 있습니다.

처음 어떻게 대전에서 기획사를 시작하셨나요?

1992년 음악을 전공하고 사랑하는 친구들 다섯이 모여 좋은 음악 공연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지금은 각각 자기의 길을 가고 있지만요.(웃음) 하지만 지금도 서로 기획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으로나마 응원해주고 있지요. 대전은 서울보다는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적고 찾아오는 연주자도 많지 않아 처음엔 고생이 많았습니다. 첫 공연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임버 오케스트라 연주였는데, 그러면서 점점 기획력도 생기고 연주자도 많이 찾아주고, 시민의 반응도 좋아지면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획을 할 때 어떤 점에 가장 주력했나요?

처음엔 유명한 외국 연주자나 단체를 불러오는 것에 집중했는데, 어느 순간 우리 지역의 훌륭한 연주자들, 그리고 현재 대전의 클래식 음악 활성화를 위해 뛰고 있는 음악인과 교육자들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그분들을 위한 음악회도 기획하면서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획한 무대를 보면 실내악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신데요?

지방에서 실내악 축제를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긴 실내악을 활성화하는 건 어디에서나 어려운 일이지요. 2001년 시작한 대전실내악축제를 비롯해 1997년 대전에서 창단한 챔버플레이어스 21 앙상블의 실내악 무대는 그런 의미에서 대전문화예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사례라고 자부합니다.

재정적으로도 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오랜 기간 대전에서 공연 기획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대전에서 기획을 시작할 때 기획사는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사업가로서보다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음악 자체가 좋고 그걸 우리 대전 지역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전실내악축제를 비롯해 음악 축제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음악은 결국 우리가 모두 다 마음을 열고 즐길 때 아름답고 좋은 것이지요. 세대별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문화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어 공연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공연기획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5년 전부터는 찾아가는 공연을 통해 대전의 명소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곳, 동학사 입구의 숨겨진 공간, 돌담교회, 수녀원, 기업, 병원, 미술관의 로비에서 음악회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공연들은 음악을 듣고 도시의 아름다운 장소도 구경하고 홍보할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외국인들도 대전에서 하는 축제를 찾고 있나요?

제가 기획한 외국 단체나 연주자들에게 서로의 나라에서 열리는 도시 축제에 초청하는 네트워킹을 지금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축제만도 여러 개라 멤버들 간의 교류를 통해 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전의 청중은 주로 어떤 층으로 분포되어 있나요?

대전은 카이스트와 대덕단지를 비롯해 정부청사까지 있어 교육 수준이 매우 높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시민이 많습니다. 음악대학도 많고요. 주된 청중은 학생이 50퍼센트를 차지하고, 일반인과 노년층도 꽤 있습니다. 대전에는 은퇴하고 노후를 즐기시는 분도 많습니다.

지역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춘 공연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요.

우리나라는 유난히 세계 최고만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세계적인 연주자나 단체가 올 때만 관심을 갖곤 하지요. 우리나라 우리 지역에도 얼마든지 훌륭한 연주자들과 단체가 많은데,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너무 상업적이지 않고 우리 것을 부각시키고 사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 연주자, 우리 도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대전만의 자랑, 대전에서 하고 싶은 공연은 무엇이 있나요?

대전은 푸른 도시예요. 조용하고 단정한 느낌이 있고, 사람들도 순수하고 또 서두르지 않죠. 특별히 하고 싶은 공연은 고음악인데요. 고음악 앙상블 공연을 많이 소개하고 싶습니다. 오는 10월에도 벨기에의 내셔널 고음악 그룹 ‘일 가르첼리노’의 무대가 펼쳐지는데, 바로크 음악의 아름다움과 감성을 현대의 청중에게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소프라노 루치아나 만치니도 함께 해 가을의 음악 정취가 기대됩니다. 힐링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예요.

 

 

60년 음악 교육의 전통을 지켜온 목원대 음대

대전은 대전예고를 비롯해 충남대, 목원대, 배재대, 침례신학대 등에서 클래식 음악 전문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플루티스트 최나경,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가 대전 출신 음악가로 지금도 수많은 전문 음악인이 사회로 나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목원대는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사립대학으로 대전 지역 음악 교육의 큰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목원대 음대 성악과 교수이자 대전음악협회 회장인 장동욱 교수를 만나 목원대 음대의 역사와 활동, 그리고 지역 연주자들의 연주 활동, 앞으로 대전 음악 교육의 개선점 등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지금까지는 클래식 음악이 명맥을 유지해왔지만 고등학교 졸업 정원이 줄었고, 이제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인구도 많이 줄어 사실 여러 모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예체능계의 경우 사회에 진출하여 일하게 되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 보니 요즘은 부모도 아이에게 괜히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음악 분야를 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부담이 많으니까요.

사실 음악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지역 음악인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무대가 다양해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대전 음악계의 총체적 도움이 필요합니다.

대전을 대표하는 대전문화예술의전당과 대전문화재단에서 그동안 좋은 기획 공연을 많이 해왔지만, 안타까운 점은 아직도 대전 출신 지역의 음악 전문가가 많지 않고 대전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입니다. 20~30퍼센트 정도만이라도 대전 출신 음악인들을 우대해 주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대전을 대표하는 축제에 가보면 클래식 음악가 보다 대중음악이나 실용음악 연주자가 훨씬 많이 초청된 걸 볼 수가 있습니다. 대중음악은 여러 매체에서 많이 들을 수 있으니 대전을 대표하는 축제에서는 이제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의 무대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현재 음악을 전공한 학생들은 각종 연주활동 뿐 아니라 방과 후 예술교육이나 토요 특기 학교 등에서 아이들을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정규 교육기관에서 음대생이 아닌 전문 음악가들을 정식으로 채용해서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음악 예술 교육을 가르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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