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담은 곧은 몸

송현민의 CULTURE COD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대나무 안에는 바람 소리와 음악이 고여 있다

竹 | 대나무를 뜻하는 한자. 속이 비어서 제 속에 바람과 소리와 울림을 지니고 사는 나무. 그 속 빔에 인간의 시선이 닿을 때 악기로 태어나기도 한다. 이 나무가 모인 숲에 바람이 스칠 때, 마른 잎들은 썰물 빠지는 소리를 낸다

나무는 자라면서 몸집을 불린다. 하지만 대나무는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린 싹인 죽순(竹筍)의 굵기가 나무의 굵기를 결정한다. 그 굵기에서 위로만 자랄 뿐이다.

윤선도(1587~1671)는 이러한 대나무에서 인간이 닮아야 할 태도를 보았다. 그가 쓴 ‘오우가(五友歌)’의 일부.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대나무에서 낭만과 풍류를 길어 올린 이는 이언창이다.

‘봄에는 새들에게 알맞아 그 울음소리가 드높고, 여름에는 바람 부는 데 알맞아 그 기운이 맑고 상쾌하며, 가을이나 겨울에는 눈과 달에 알맞으며 그 모양이 쇄락하다.’

그에게 대나무는 봄에는 청각을, 여름에는 촉각을, 겨울에는 시각을 즐겁게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문인들은 대숲에 스치고 머무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였다. 고려 말 문신이자 대학자 이색(1328~1396)은 그 소리가 속세의 번뇌를 떨쳐버리게 하는 귓가의 명약이었음을 ‘차군루기(此君樓記)’에 적고 있다.

‘누 위에서 서로 거닐 적에 대숲에서 우수수 바람소리가 들려오면 고요히 얽혔던 객진(客塵: 번뇌)이 환연히 얼음 녹듯 할 것이요.’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서 엄흔(1508~1543)은 거문고 소리와 절경을 상상했다.

‘고뇌가 사라지고 맑은 기운 뼛속에 스며드누나. 상쾌한 바람이 푸른 대나무를 흔들며 스쳐가네. 만약 여기에 스무 줄 거문고 가락을 더한다면 소상강에 밤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는 듯하리라.’

소상강은 중국 호남성의 강으로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중국 문학에 자주 등장한 강이다.

신석정(1907~1974)의 시 ‘대바람소리’는 이언창·이색·엄흔의 청각적 상상력에 물꼬를 댄다.

‘대바람 소리 들리더니, 소소한 대바람 소리 창을 흔들더니. 소설(小雪) 지낸 하늘을 눈 머금 구름이 가고 오는지 미닫이에 가끔 그늘이 진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악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거릴지언정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

대금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이상규(1944~2010)는 이 시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로 악상을 빚었다. 제목도 시와 같은 ‘대바람소리’다. 이 곡은 대금협주곡으로 대금연주자와 국악관현악단이 함께한다. 그래서 협연자와 관현악단의 대금 파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곡의 중간에는 거문고 파트가 장중한 연주를 선보인다. 귓가를 잡아끄는 묵직한 소리. 그 소리는 신석정이 환청으로 들은 ‘대바람 타고 들려오는 머언 거문고 소리’이거나, 대숲의 상쾌한 바람에 더하고 싶은 엄흔의 ‘거문고 가락’이 아닐까.

악기로 태어난 대나무의 꿈

대금·중금·소금·피리·단소·퉁소는 대숲에서 태어난 악기다. 소설가 김훈은 산문집 ‘풍경과 상처’에서, 인간에게 악기로 쓰임 받는 대나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시선이 대나무의 속 빔에 가 닿았을 때 인간은 거기에 구멍을 뚫어 피리를 만든다. 저 자신이 비어 있는 존재들만이 음악을 이루는 소리를 생산해낼 수 있다. 모든 악기는 비어 있거나 공명통을 가지고 있다.’

그 소리는 어떠했던가. 소설가 이외수는 대금으로 빚은 산조를 들으면서 묘한 통곡과 침묵을 들었다. 그 감상을 그의 저서 ‘감성사전’에 적었다.

‘소리 죽여 흐르는 통곡의 강물이다. 피울음 삼키면서 돌아보는 세월이다. 세속을 등지고 마주 앉은 적막강산. 구름은 소리를 따라 하늘 언저리를 떠돌고 숲들은 달빛 아래 숨을 죽인 채 새들을 잠재운다. 대금 하나로 이 세상 모든 한을 잠재우고 대금 하나로 이 세상 모든 혼을 선계(仙界)로 이르게 한다. 풍류(風流)의 도(道)다.’

악기로 태어난 대나무는 인간의 현실과 꿈을 매개하기도 했다. 신라 신문왕 때 동해에 작은 산이 하나 떠내려 왔다. 그 산에는 신기한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왕은 그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으며 가뭄 때는 비가 오고 장마 때는 바람이 멈추고 물결이 가라앉는 등의 신기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2권 만파식적(萬波息笛)조에 실린 내용이다. 적(笛)은 피리를 뜻한다.

대금에는 칠성공(七星孔)이라는 구멍이 있다. 음정을 조절하기 위해서 뚫었기에 ‘조종 구멍’이라고도 한다. 실용적인 기능을 품은 구멍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주적 상상력이 고여 있기도 하다. 북두칠성은 원래 7개의 별이고, 대금에 뚫린 칠성공은 과거에는 5개였다가 오늘날에는 1~2개로 줄었기에 북두칠성을 본뜬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壽命)과 화복(禍福)을 관장하는 별이 북두칠성이라 믿어온 조상들은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북두칠성님 전에 비나이다”를 외웠다. 사찰에는 칠성각(七星閣)이 들어앉았으며, 사람이 죽으면 관 아래 까는 송판의 이름도 칠성판(七星板)이었을 정도로 칠성 신앙이 깊었다. 그래서 대금으로 다시 태어날 대나무에 북두칠성이 들어가 칠성공이 되었고, 그곳으로 소리가 나올 때마다 대금에 숨을 넣는 사람과 그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들 모두 복(福)이 가득하기를 염원했던 게 아닐까.

마음을 붙든 대숲의 소리

설령 악기로서 모습을 갖추지 못한 대나무라 할지라도 그것은 시상(詩想)과 문기(文氣)를 일으키는 상상의 악기로서 대우 받았다. 소설가 최명희(1947~1998)는 대숲에 이는 소리들을 의인화하여 ‘혼불’의 한 장을 메운다.

‘대숲에서는 제법 바람소리까지 일었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울타리 삼아 뒤란에 우거져 있는 대밭이나 고샅에 저절로 커 오르는 시누대, 그리고 마음을 에워싸고 있는 왕대숲의 대바람 소리는 그저 언제나 물결처럼 이 대실을 적시고 있었다. 그저 저희끼리 손을 부비며 놀고 있는 자잘하고 맑은 소리, 강 건너 강골 이씨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쪽 대실로 마실 나온 바람이 잠시 머무는 소리, 어디 먼 타지에서 불어와 그대로 지나가는 낯선 소리, 그러다가도 허리가 휘어질 만큼 성이 나서 잎사귀 낱낱의 푸른 날을 번뜩이며 몸을 솟구치는 소리, 그런가하면 아무 뜻 없이 심심하여 제 이파리나 흔들어보는 소리,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 밤 제 몸 속의 적막을 퉁소 삼아 불어내는 한숨 소리, 그 소리에 섞여 별의 무리가 우수수 대밭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라도 얼마든지 들어낼 수가 있었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2001)는 최명희가 그린 것 같은 대숲의 풍경에 연인을 밀어 넣는다. 연인은 그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소리를 채취하는 녹음기사 상우(유지태 분)는 대숲에서 침묵한다. 은수(이영애 분)는 설렘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멀리서 대나무를 살짝 잡았다 놓는다. 대나무는 흔들리며 ‘솨르르’ 하는 소리를 내고, 그것이 은수가 상우에게 보내는 마음을 대신한다. 대숲의 아늑함과 그 공간을 채우는 바람 소리와 잎과 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두 사람의 운명을, 그렇게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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