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진 예술도시

LOCAL SCOP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0월 1일 12:00 오전

현재 대구는 근대의 화려한 문화예술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 창조의 길을 여는 출발선에 서 있다. 대구 문화 예술의 지형은 어떻게 변해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주요 문화예술공간을 중심으로 ‘객석’이 직접 찾아가 보았다

찾아가는 지역 순례의 두 번째 행선지는 해방 이후 문화예술 도시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대구이다. 대구의 인구는 현재 약 250만 명으로, 문화예술의 중앙 집중화 현상 속에서도 연중 주요한 음악회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고, 그 인구도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대구 문화예술계의 이 같은 풍요는 역사적으로 보면 그 오랜 뿌리와 전통에 기반한 것이다.

대구의 문화예술을 논할 때 역동적인 한국 근대 문화의 변화를 빼놓고는 그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 피아노와 관현악이 한국에 들어온 후 점차 발전한 서양 음악. 특히 해방 전 대구사범학교에서 펼쳐졌던 관현악 공연이 한국 관현악 무대의 효시가 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6·25 한국전쟁 전후에도 한국 음악 활동의 중심지는 대구였다. 당시 대구는 예술 활동의 교량 구실을 하던 때였을 뿐 아니라 음악 교육에서도 앞서 있었다. 1952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 음악과가 신설된 것을 시작으로 계명대, 경북대, 영남대 등에 음악과가 활성화되었다.

현재 대구는 그 전통을 이어 다양한 문화예술공간이 시민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1975년 개관하여 레노베이션 착공 후 3년 5개월 만인 2014년 재개관한 대구시민회관, 야외공연장과 미술관 앞 광장, 코오롱야외음악당 등 자연친화적 요소가 짙은 대구문화예술회관, 단일 공연장으로는 국내 최초 오페라 전용 극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마티네콘서트, 낭독콘서트, 직접 제작한 뮤지컬 등 다양한 범위의 음악 활동과 기획 마인드가 돋보이는 수성아트피아, 계명대 성서캠퍼스 내에 자리하여 출연자의 디테일한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뮤지컬 공연장 계명아트센터, 일반인들을 위한 예술 강좌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봉산문화회관, 지난 9월 개관하여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기획 공연이 마련된 아트센터 달, 여유의 미학이 돋보이는 문화 공간인 대구 미술관 등이 대구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공간이다.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대구의 예술단체들도 풍성하다. 지역 애호가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도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한 단체들이다. 1964년 창단한 대구시립교향악단을 비롯해 대구시립합창단, 대구시립국악단,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 대구시립무용단, 대구시립극단 등 음악 관련 공연단체와 음악 외의 무용단 등 인접 예술 단체까지 합하면 이들의 존재는 대구예술계를 움직이는 톱니바퀴다.

대구문화예술의 또 하나 축은 교육이다. 대구는 교육열이 높은 도시이면서 특히 음악 예술교육에서 상당히 앞서 있고 전통도 깊다. 거기에서 배출된 예술인들은 대구의 문화예술 인프라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술대학이 있는 학교는 현재 계명대, 경북대, 대구가톨릭대, 영남대로 음악 전공생은 물론 해마다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현대미술과 현대무용의 성장 또한 이런 다양한 예술교육에서 비롯되었다. 경북예고 역시 영재예술교육의 전통을 이어온 예술교육 학교다.

계명대는 1961년 종교음악과로 시작, 특히 음악 분야에서 성과가 두드러진다. 경북대는 1981년 사범대학 음악교육과로 시작해 현재는 국악학과·음악학과·미술학과·시각예술학과가 있고 20년 넘게 일본 나가사키 대학과 국제 학술교류를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임동민이 음대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구가톨릭대 음대 중 피아노과는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과(1952년 개설)다. 피아니스트 백혜선, 바이올리니스트 이예찬 등이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영남대는 1969년 성악과와 기악과를 시작으로 작곡과, 국악과 까지 신설되어 서양음악과 한국음악의 조화를 이룬 음악대학으로 명성이 높다.

다양한 문화예술공간과 교육 인프라를 갖추었음에도 대구 문화예술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상당하다. 규모가 큰 무대는 많아지고 있지만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나 청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수준 높은 기획 공연 역시 더 필요해 보인다. 청중을 흡입할 만한 매력적인 무대, 애호가들을 폭넓게 끌어안을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순수한 열정 역시 담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에 안주한 연주회나 전시회가 아닌 투철한 프로 의식으로 무대를 대하는 태도도 절실하다. 아울러 전통을 잇는 현대의 새로운 창조 정신만이 다양한 색채를 지닌 대구의 문화 예술을 더욱 도약하게 할 것이다.

글 국지연 기자(ji@gaeksuk.com) 사진 심규태

INTERVIEW

수성아트피아 유원희 관장

관객의 높은 안목과 뜨거운 열기

수성아트피아(수성구 무학로 소재)의 첫인상은 쉼 없이 돌아간다는 느낌, 그 자체였다. 공연장 실내·외에 부착된 공연 포스터가 각종 정보를 담고 있었고, 아카데미 수강생과 관람객들은 그 앞에 잠시 멈추었다가 교실로, 갤러리로 향하곤 했다. 수성아트피아는 이처럼 전시와 아카데미가 낮의 시계를, 공연이 저녁의 시계를 부지런히 돌리고 있는 곳이었다. 2006년 완공, 2007년에 개관한 이곳은 용지홀(1147석)과 무학홀(301석), 호반갤러리와 멀티아트홀(전시공간)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대구스트링스심포니오케스트라, TBC·수성아트피아 어린이합창단, 수성청소년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었다.

수성아트피아는 ‘명품 공연’을 주로 선보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원희 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낮은 곳으로부터’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카데미 강좌가 인기도 많고 활발합니다. ‘보는 문화’에서 직접 ‘즐기는 문화’의 시대로 넘어온 것이지요. 유시민, 진중권 등 저명한 강사가 진행하는 인문학 교실, 지역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실기 교실과 어린이 강좌 등이 있습니다. 이 수강생들은 대구시 아마추어 예술계를 이끌어나가고 있지요. 다양한 협회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하고요.”

‘공공성을 지닌 공연장에 ‘명품’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고 말하는 유원희 관장. 사실 수성아트피아를 한 바퀴 돌아보면 유원희 관장의 오랜 현장 경험에서 나온 기획력과 관객을 위한 배려 그리고 마음 씀씀이가 ‘명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내부 분위기는 대구 시민을 위한 ‘문화 놀이터’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수성아트피아의 프로그램 중 공연은 60퍼센트, 아카데미는 25퍼센트, 전시가 15퍼센트를 차지한다. 재정 자립도는 40퍼센트. 작은 수치로 느껴지지만 서울 중요 공연장의 재정 자립도가 5~10퍼센트라는 점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다.

유원희 관장은 세종문화회관 공연부 차장, 서울시청 공연문화팀장 등 요직을 거쳐 2014년 이곳에 취임했다. 서울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대구예술의 현주소에 대해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놀랄 때가 많다고.

“경북 구미 출신인 소프라노 황수미가 올해 4월 리사이틀을 가졌어요. 반주를 맡은 헬무트 도이치가 그 어느 나라 관객보다도 박수를 아끼는 대구 시민은 빈에서도 유명하다 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서울보다도 열기는 더 뜨겁고요. 무엇보다도 대구 시민은 좋은 공연에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유원희 관장은 취임 후 서울에서 쌓은 노하우를 이곳에 적용했다. 바로 후원회를 결성한 것. 작년 10월 결성 후 현재까지 3억 원 정도의 후원금을 유치했다.

“후원금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후원자들이 대구 예술의 전파자 역할을 하며, 그 의식을 공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대구시의 미래는 정말 밝습니다.”

한편으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주력하는 것도 있다. 바로 ‘지방의 힘’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역 예술을 서울과 종종 비교합니다. 하지만 서울과 지역의 한정식이 다르듯 지역예술에는 특색이 있지요. 그 고유의 색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잘되었으면 합니다.”

‘대구’ 하면 ‘사과’가 떠오르듯, ‘대구에는 미인이 많다’는 사실(?)을 활용하여 수성아트피아는 창작뮤지컬 ‘미스코리아’를 제작 중이다.

유원희 관장의 또 다른 바람 중 하나는 “대구는 성악의 도시입니다”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취임 후 성악 페스티벌을 기획했지만 계획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그는 대구시민의 성악과 오페라에 대한 애착은 이 페스티벌의 무한한 가능성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사실 이 말을 듣고 나서 앞서 들은 헬무트 도이치의 평가,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존재감, 예술에 대한 열정을 지닌 시민, 더운 날씨, 패션산업이 발달한 곳 등등을 꿰어 생각해보니 대구와 이탈리아는 닮은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성아트피아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수상자 초청 피아노 시리즈로 블라디미르 옵치니코프(10월 22일), 나탈리아 트로울(11월 29일), 알렉세이 나비울린(12월 10일)을 준비 중이었다. 이처럼 수성아트피아는 ‘명품 공연의 공급처’이자 대구의 ‘예술 특산물을 만드는 곳’, 그리고 ‘뜨거운 관객’을 계발하는 곳이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대구시민회관 이형근 관장

대중과 클래식을 더 가깝게 만들기

1975년 경북권의 유일한 종합공연장으로 대구시민회관(중구 태평로 소재)이 개관된 후 2013년 재개관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그랜드홀과 챔버홀의 음향이 돋보인다. 그랜드 콘서트홀은 1284석으로 세계 유수의 콘서트홀이 지니는 음향적 특성을 모두 충족한 설계를 적용하여 이상적인 비율과 높은 층고의 확보, 그리고 우수한 음향 반사 마감재를 확보한 슈박스 형태로 건축되었다. 248석의 챔버홀은 실내악 연주와 독창회 등 연주자와 관객과의 호흡이 긴밀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설계하여 그 아늑함이 감동을 더한다. 또한 대구시향과 합창단이 상주하고 있다.

대구시민회관 이형근 관장은 대구시민회관이 재개관되면서 전문 콘서트홀로 탈바꿈했기 때문에 이제 시민들을 위한 회관의 기능에서 더 도약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고 이제는 좀 더 전문화된 클래식 공연장으로서 도약하기 위해 대구 콘서트 하우스로 내년부터는 이름이 바뀔 예정입니다. 대구는 클래식 전용 홀과 오페라홀이 개관되면서 문화예술의 성장이 최고 속도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자부심도 무척 커졌습니다.”

이형근은 국립중앙극장 국립교향악단과 광주시립교향악단 단원을 거쳐 경상북도 도립예술단 상임지휘자와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을 지낸 음악인 출신 예술경영인이다.

“공연장을 운영하면서 제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마인드’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아티스트가 최고 스타가 되게 하기 위함이고, 관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지요. 기초순수 예술은 인기가 많은 분야는 아니지만 대중예술의 수준을 높이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모든 문화의 척도를 판가름합니다. 공연장도 이제 새로운 관객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구시민회관에서는 대중이 클래식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많은 시도를 해왔는데 어린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인기가 많다.

“해설 음악회나 로비 음악회 등 부담 없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아하! 클래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어린이들과 엄마들에게 굉장히 호웅이 좋습니다.”

특히 대구현대음악제 같은 의미 있는 음악제들이 벌써 25회를 맞아 해를 거듭하면서 대구 음악계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세계현대음악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세계 음악계를 이끌어갈 젊은 한국 작곡가를 양성해야 하는 큰 과제도 안고 있다. 또한 다양한 음악단체가 저마다 갖고 있는 비효율적인 시스템 개선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뤄야 할 숙원사업인 클래식 전용 홀 개관으로 이제 큰 산은 하나 넘은 셈이니 이를 기점으로 앞으로 대구문화예술의 비약적인 성장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글 국지연 기자(ji@gaeksuk.com)

대구문화예술회관 최현묵 관장

대구시민과 예술인을 위한 친환경 예술무대

대구문화예술회관(달서구 공원순환로 소재)은 아름다운 자연과 공원 속에 자리하고 있어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운동하면서도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전시실과 카페에서 다양한 그림과 책들을 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 팀장, 수성아트피아 관장등을 역임한 대구문화예술회관 최현묵 관장은 영문학을 전공한 후 희곡작가로 활동했고 문화예술 경영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4월 취임한 그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이라는 곳의 정체성에 대해 강조했다.

“대구는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김천·구미·창원·김해·울산·부산과도 가까워 마케팅 인구가 대구 250만 명, 그 인근 지역까지 합하면 약 750만 명 정도 됩니다. 또한 성악 분야도 강해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발전했지요.”

그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정체성은 ‘대구’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공연장(팔공홀·비슬홀·코오롱야외음악당), 미술관이 있는데, 대구의 대표적 문화공간인 오페라 하우스가 오페라를, 대구시민회관이 클래식 전용 홀로서 클래식 공연을, 대구미술관이 전시를 담당한다면 대구문화예술회관은 대구시민과 대구 지역 문화예술인의 창작활동을 돕는 곳이어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구 시민을 위한 친환경적인 문화 공간, 대구 예술인을 위해 무대를 마련해줄 수 있는 창작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합리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각자 위치와 담당 업무를 세밀하게 나누면서도 함께 공통된 이념을 갖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장르별·세대별로 나누어 클래식 음악·무용·연극·국악 분야와 원로·중견·청년층을 위한 공연과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대구예술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수도권과 세계로 네트워크가 연결 될 수 있도록 대구 문화 예술의 먼 미래를 조망하고 있지요.”

한편 대구가 정치·문화적으로 보수성이 강한 도시이지만 현대무용이나 현대미술의 성장 또한 눈에 띈다. 대구에 잠재해 있는 문화 에너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치·경제·역사적으로 대구는 확실히 보수가 강한 곳이지만 그런 보수적인 기조 아래에서도 현대무용이나 현대미술의 성장이 눈부신 곳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무용가와 안무가, 미술가들이 포진해 있고 해마다 실험적인 작품이나 무용, 야외 퍼포먼스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예술적으로는 진보적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는 예전의 문화가 고급 취향의 ‘그들만의 리그’였다면 이제는 좋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청중에게 예술 체험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그래서 참여와 함께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문화예술단체에서 문화민주주의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예술경영자로서 공연장에 있으면서 느낀 것은 경영철학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영은 예술이고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환경과 구성원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기도 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목표가 뚜렷해야 하지요.”

공연장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무대, 인력의 재편성, 전문성 확보가 관건이다. 또한 단기간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략적으로 예산과 시간을 분배하느냐에 따라 공연장의 성장은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전시적 공연보다는 시민이 공감하고 참여하고, 대구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경영은 원칙을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한데,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는 시너지를 낼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현대무용과 현대미술 등을 더 확대시켜 세계적인 축제 교류 프로그램의 기반도 만들고 싶습니다.”

글 국지연 기자(ji@gaeksuk.com)

대구문화재단 심재찬 대표

대구의 상징 근대예술문화 콘텐츠

문화예술의 창의성이 지역발전과 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이라는 신념으로 대구문화재단(중구 대봉로 소재)의 수장을 맡은 심재찬. 그는그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상임이사,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을 거친 인물이다.

“3개월 동안 대구에서 지내면서 대구라는 도시의 매력을 객관적으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대구는 공연문화가 굉장히 발전했어요. 클래식 음악, 뮤지컬, 오페라가 많이 열리고 시민의 문화 의식이 높습니다. 근대 역사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과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 그 영향력도 큰 곳이지요. 그러다 보니 건물이나 문화 등에서 느껴지는 근대적 이미지가 뚜렷합니다. 아직은 지켜보는 단계이지만 예술계의 현장에서 있었던 경험을 잘 살려서 요즘 변화하는 예술 생태계 속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지원의 주체자로서 공연 예술문화의 방향을 잡고 녹여낼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구문화예술의 정체성은 일부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한다고 말한다.

“대구에 와서 이곳이 근대예술 문화에 대한 특성이 높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근대예술에서 현대예술까지의 콘텐츠가 무척 탄탄한 대구가 앞으로 근현대를 동시대 예술로 더 포용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면 더욱 큰 성장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더불어 동시대성이란 예술가들뿐 아니라 관객의 참여와 변화도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단순히 아름다운 예술을 감상만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예술이 더 이상 감상을 위한 도구가 아닌 관객과 작품, 관객과 예술가와의 대화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술을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이 바로 현재 대구 문화예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소재역시 보여주는 식의 방법이 아닌, 이야기하는 예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구 지역 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질까?

“대구 출신의 뛰어난 예술가들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활동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요. 문제는 네트워크입니다. 그들과 단절되지 않고, 또는 그들이 더 의미를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이 지역의 예술 시장을 형성해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나눠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술은 드러내야 하는 것인데 대구의 문화예술인들이 이제 그 용기를 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문화 예산 집행은 예술교육과 복지, 창작지원, 축제를 비롯해 기초 예술을 육성하는 데 골고루 편성할 예정이다.

“예술은 움직이는 것이지요. 인위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술은 특성보다 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행정과 섞이기 어려워요. 결국 여러 예술계의 상황을 감안해 함께 이 길을 걸어가야 하겠지만 재단이 그 권위를 갖추려면 투명성과 개방성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느 분야든 대안이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예술계가 유독 대안 세력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대구를 상징할 수 있는 임팩트를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구를 현재 ‘컬러풀 대구’라고 하는데요. 대구 문화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들이 각자의 성격을 갖고 하나씩 올라온다면 대구는 진정한 ‘컬러풀 대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인프라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한 것은 대구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를 이끄는 힘, 최고 인프라는 바로 시민이라는 것이지요.”

글 국지연 기자(ji@gaksuk.com)

대구오페라하우스 박명기 예술감독

완벽한 오페라를 위한 준비

멀리서 보이는 대구오페라하우스(북구 호암로 소재)는 반짝거리는 그랜드피아노 같았다. 2000년 11월 첫 삽을 뜨고, 2003년 완공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전문 상연을 위한 국내 최초 전문 극장으로 1508석의 객석 수를 확보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업 메세나의 모범적 사례로도 기록되고 있다. 이 공연장의 터는 원래 제일모직이 있던 곳으로, 후에 제일모직이 이전하면서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여 대구시에 기부 채납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호암 이병철 회장의 동상은 이러한 내력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내의 사무실은 제13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10월 8일~11월 7일)를 빚느라 분주했다. 2013년에 재단법인으로 발족된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공연예술본부장) 박명기는 첫 인사와 함께 대구의 이미지를 강하게 소개한다. “대구시는 오페라 하나만 내세우는 게 아닙니다. 문화·예술이 경제·정치와 어우러지며 발전한 도시로, 세계 도시들의 모델로 만들고자 노력 중입니다.”

취재 전, 대구의 공연장과 시립예술단을 살펴보며 ‘문화지도’를 그려보았을 때 조금은 놀라웠다. 지방이라 할지라도 양과 질에 있어서 서울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구의 예술계를 바꾸는 데 ‘결정타’를 날린 것은 한국전쟁입니다. 당시 서울의 모든 인프라가 대구로 집결했지요. 수많은 선교사와 미션 스쿨도 예술 발전에 기여했고, 현대음악과 현대미술이 유입될 때 창구 구실을 한 것도 대구입니다. 현재 서울에 국립현대무용단이 있지만 대구시립무용단(1981년 창단, 현 예술감독 홍승엽)은 어떻게 보면 한국 최초로 공립의 성격을 지닌 현대무용단이지요.”

대구 대건고와 계명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박명기 예술감독은 대구로부터 받은 지기(地氣)와 서울시오페라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육을 통해 쌓은 경력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2013년에 재단법인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설립 조례가 통과하면서 대구오페라하우스·대구국제오페라축제조직위·대구시립오페라단 3개 조직이 일원화되었다. 특히 오페라 전용 극장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하드웨어다.

“오페라극장은 오페라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페라와 연관된 심포니, 발레, 콘서트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전국에 문화회관이 많은데, 오페라를 비롯하여 연극·뮤지컬·음악 등 ‘모든 것’을 위해 지은 공연장은 사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여기에 대구에 자리한 ‘음악 명문’ 계명대, 경북대, 대구가톨릭대, 영남대는 연간 100여 명의 성악가를 배출하여 인적 자원을 공급한다. 공연장과 인적 자원, 그리고 이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오페라축제가 삼박자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박명기 예술감독은 “이는 시작일 뿐”이라며, ‘만족’하기보다는 ‘절반의 가능성’으로 생각하며 판을 더 키울 생각이라고 한다. 그의 지론은 다소 당황스럽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현재 연간 공연 제작비만 35억 원입니다. 점점 낮아지는 추세지요. 대중음악은 ‘지금’의 상업성이 있고, 클래식은 ‘미래’의 상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본인을 위해 작곡했지만, 그의 음악이 후손을 먹여살리잖아요. 오늘날 예술은 도시와 시민의 꿈이 되었습니다. 10년 후 실행된다 해도 지금 예산을 확보하고 천천히 그리고 멀리 내다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페라의 첫 번째 조건은 성악가가 아니다”라는 그의 지론도 귀 기울일 만하다. 즉, 성악가보다는 ‘붙박이’ 오케스트라·합창단·발레단이 구비되어 오페라극장으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성악가들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 연출가 양성 또한 마찬가지다. “연출가요? 오페라극장의 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여러 무대를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러한 가운데 금세 발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육십 세가 되면 자신이 살아온 나라, 그리고 주위의 인간이 보여야 하고, 그 발전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박명기 예술감독. 경상도 사나이의 거친 말투 속에는 대구와 한국의 오페라 발전을 위한 온기와 미풍이 느껴졌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 ‘아이다’의 정선영 연출가

연습 때부터 퍼지는 입소문, 성공으로 이어진다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출가 정선영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개막작의 단골 연출가다. 2012년부터 비제 ‘카르멘’, 베르디 ‘운명의 힘’(2013), 푸치니 ‘투란도트’(2014)의 연출을 맡아왔고, 올해도 개막을 장식하는 베르디 ‘아이다’의 연출을 맡았다.

대구오페라하우스 3층에 자리한 대연습실. 바닥에는 테이프를 마킹하여 배역들의 위치와 동선을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출연자들 사이로 최혜지(조연출), 천진석·서보민(조연출 보조), 김기홍·송윤아(소품)가 정선영 연출가를 도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영남대·계명대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이들. 김기홍은 작년 개막작 ‘투란도트’를 보며 “연출가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투란도트’가 지닌 광활함, 계단을 이용한 연출 등 유튜브의 영상을 통해 접하던 프로덕션과는 다른 무대였습니다.” 송윤아도 “많은 효과보다는 깔끔한 인상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천진석은 ‘투란도트’의 배역 중 한 명이었다. 이처럼 작년 오페라축제의 ‘소비자’였던 그들은 올해 개막작의 ‘생산자’가 되어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선영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졸업 후 ‘오페라 연출’만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오직 현장에서만 가질 수 있는 궁금증과 느낌이 소중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대구는 참 묘한 곳”이다. “공급이 관건이던 축제가 이제는 미래 인력들을 끌어냅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측은 스태프를 늘 따뜻하게 챙겨요.”

연출가를 꿈꿀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그 꿈의 지점에 첫 발을 디딜 수 있는 곳. 더구나 그럴 수 있는 곳이 ‘지방’이라는 점이 내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처럼 대연습실은 작품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동시에 후학들이 산 경험을 접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정선영은 밑그림을 그리며 동시에 산전수전을 겪은 선배의 역할도 한다.

“나(연출가)를 내세우려고 오페라를 하면 밑도 끝도 없이 모든 게 어긋나. 모차르트의 의도는 들리지도 않는다고. 그러다 보면 성악가들이 아니라 무대에 걸어 다니는 내가 보이지. 나의 이기심이 무대를 망치는 거야. 그리고 자꾸 궁금증을 갖도록 해야 해. 사랑하는 사람의 시간을 궁금해하듯,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궁금해해야 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개막작인 베르디 ‘아이다’(10월 8~10일)를 비롯하여 독일 비스바덴 슈타츠오퍼 초청작인 바그너 ‘로엔그린’(10월 15·17일), 광복 70주년 창작오페라 ‘가락국기’(11월 6~7일) 등을 메인공연으로 선보이고, 베르디 ‘리골레토’, 비제 ‘진주조개잡이’ 등도 올린다. 모든 작품을 화제작으로 만들려는 의지. 대구예술의 열기는 대구만의 여름처럼 뜨거웠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음대 학생들이 많이 와서 함께 합니다. 이들을 통해서 연습 때부터 입소문이 이미 퍼지는 것이지요. 여기에 대구시민들의 뿌리 깊은 관심도 한몫합니다. 이곳은 서울과 달리 말로 할 수 없는 묘한 열기가 있는 곳이에요.”(정선영)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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