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 ‘다시’ 듣기의 쾌감

송현민의 CULTURE COD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0월 1일 12:00 오전

음악은 곡을 재연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는다

재연 | 한 번 했던 행위나 일을 되풀이함. 연극이나 영화 따위를 다시 상연하거나 상영함

1 재연(再演)과 재현(再現)은 구별해 써야 한다. 재연은 음악·연극·영화 등을 다시 상연하는 것을 뜻하고, 재현은 다시 나타나거나 다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2 보통 예술가는 창작자라고 생각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음악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연주자는 사실 창작자라기보다는 재연을 일삼는 재연자다. 그는 연주를 통해 몇 세기 전의 음악을 ‘다시’ 들려주기 때문이다. 18세기 모차르트의 음악을 21세기인 지금 연주한다는 것은 그 음악을 ‘다시’ 들려줌으로써 3세기의 시간적 간극을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콘서트홀을 가는 것과 전시된 유물을 보러 박물관을 가는 것과는 별반 다를 게 없다.

3-1 연주자는 늘 두 가지 고민에 빠진다. 첫째, 얼마나 원본·원전에 충실해야 할까. 둘째, 그러면서도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할까. 즉, 원전을 반복하면서도 연주자의 개성이 빚은 차이의 지점을 집어넣어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3-2 예술가는 원래 모델보다 더 나은 것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이는 ‘시학’을 쓴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이 말인즉, 작품에는 그가 모방하는 대상(원본)보다 더 ‘훌륭’하고 ‘탁월한 것’이 함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탁월하다’는 말은 ‘더 많이 소유한다’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풍경을 캔버스에 ‘재현’할 때 회화 속 풍경은 원래 풍경보다 더 많은 미적 함의를, 예를 들어 더 예쁘거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현·재연에 의해 산출되는 그 초과적 잉여분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헤도네(hedone)’, 즉 ‘쾌감’이라고 했다. 이 쾌감은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지니는 생리적·심리적 쾌감이다. 결론적으로 ‘다시’ 상연하는 재연이나, ‘다시’ 나타내는 재현은 원래의 것(원전태)보다 더 많은 실재성과 완전성을 연주와 작품(재현태)에 수태시키는 능력이 필요한 셈이다.

4 음악회장은 ‘다시’ 들려주는 자(연주자)와 그것을 듣는 자(관객)가 만나는 시공간이다. 우리는 새로운 스타일을 연출하는 연주자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기다린다. 말러 교향곡 1번이라는 단 하나 곡이 있다 할지라도, ‘재연’하는 지휘자에 따라 그 음악은 각각 다르게 만들어지고, 다가온다. 그렇기에 수없이 많은 연주가 나올 수 있고 음반 제작이 가능하다. 즉,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각기 다른 스타일로 재연되는 것이다. 그리고 견고한 연주력 위에 재치 있는 해석이 더해져 원본을 능가하는 또 하나 음악이 탄생할 때, 우리는 헤도네(쾌감)를 느낀다.

5 오디오 마니아들도 헤도네를 느낀다. 오디오는 음반에 담긴 음악을 퍼 올려 듣는 이에게 꺼내놓는 재연-기기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음반 속 음악을 고스란히 재연해 듣기보다는, 끊임없이 성능을 바꾸어 더 많은 미적 함의를 머금은 재연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고 싶어 한다.

6-1 잠시 멜로 클래식(Melo Classic) 레이블의 음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레이블은 2013년 루드비히가 예술 교육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최근에는 방송용 음원이나 실황의 녹음 마스터를 CD로 발매하고 있다. 모차르트의 어떤 곡을 재연(연주)한 재연물로서의 음원을 리마스터링(재연)하여 CD로 옮긴 것이다. 재연(연주)을 통해 생산한 방송국 보관용 테이프나 SP를 또다시 CD로 재연한 구조다. 이른바 복각이다. 이 음원들은 바이올리니스트 미셸 오클레르, 롤라 보베스코, 폴 마카노비츠키와 첼리스트 야노스 스타커, 모리스 장드롱, 피아니스트 루돌프 피르쿠스니, 슈라 체르카스키 등 20세기 전기를 풍미하던 이들의 귀한 음원이다. 이 앨범들은 최초 공개 음원으로 레코딩이 귀해 이름만 회자되거나 고가로 거래되어 표적이 되기도 한 페르디난트 라이트너 등의 사운드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6-2 기존 음원을 복각한 이 음반들을 들을 때도 역시 헤도네(쾌감)가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레코딩이지만 시간의 간극이 무색해질 만큼 완벽한 음질로 재연한다는 것이다. 오리지널 테이프(원본)를 리마스터링(재연)한 사운드는 상상 이상의 놀라운 음질(헤도네)을 들려주는 것이다. 연주자의 기교가 뒷받침되지 않은 음악은 맛이 없듯이, 재연의 기술력에 매료된다.

6-3 또 다른 재미는 현장의 분위기다. 미셸 오클레르의 음반(MC 2014)에서 라벨 소나타(1958년 녹음)와 텔레만 모음곡(1967년 녹음)이 시작되기 전에, 피아니스트 슈라 체르카스키(MC 1033)가 연주하는 풀랑크의 세 개 소품 FP 48 중 토카타(1952년 녹음)가 시작되기 전에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온다. 이러한 요소들을 지우지 않은 것도 이 음반들의 매력이다.

7 생각해보면 평론 행위도 과거의 음악을 연주(재연)할 때 연주자가 수반하는 미적 잉여분을 발견하는 작업이다. 매번 똑같은 슈트를 입고 나타나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손목의 커프스 버튼과 시계의 변화를, 넥타이와 행커치프의 달라진 색을 찾아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즉, 눈앞에 보이는 옷이 지난번 옷과 같아보일지라도 다른 것을 발견하는 세심한 작업인 것이다.

8 복사한 것을 다시 복사하고, 그렇게 복사된 것을 다시 복사할 때가 있다. 색은 점점 흐려지고 질은 떨어진다. 그런데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란 말을 생각해보자. 푸른색(재연태)은 남색(원본)에서 나오지만 그 남색보다 더 푸르다는 뜻. 이는 파생되어 나온 것이 원천의 것을 능가하는 사태로, 존재론적 탁월성의 등급이 생성의 순서에 의해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연주도, 음반 복각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같은 곡을 재연하는 반복의 예술이지만 어제의 모차르트는 오늘과 다르고, 오늘의 모차르트는 어제와 다름을 지향해야 한다. 그래서 재연은 단순히 ‘다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보여주되 ‘다르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진 씨앤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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