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밴드 포플레이 리허설 현장

그들이 재즈의 중심인 이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0월 1일 12:00 오전

25주년 맞아 월드 투어 개최하는 평균 나이 66세의 밴드 포플레이.

여전히, 그대로, 뜨거운 이들의 공연 현장 밀착 취재

 

아티스트와 인터뷰를 하다 보면 아주 가끔, 취재 의욕을 잃고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인터뷰이의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아 그야말로 물어볼 것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존재 자체가 예술인 사람들이다. 유수한 대회에서 상을 받고, 국가적 추대를 받고, 불후의 명작을 발표하며 현재진행형으로 역사를 써내려가지만 모든 숫자와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그저 즐기는 사람들.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로 완벽한 퍼포밍을 하니 자만할 필요도, 나태해질 이유도 없다. 그저 예술을 행하는 순간의 짜릿함을 누릴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음악에 대한 어떠한 이유와 의미를 물을 수 있을까.

지난 9월 9일, 세계 투어의 하나로 서울 공연을 가진 4인조 재즈 밴드 포플레이(Fourplay)도 이러한 드문 취재원 중 하나였다. 밥 제임스(Bob James, 피아노), 하비 메이슨(Harvey Mason, 드럼), 너선 이스트(Nathan East, 베이스기타), 척 러브(Chuck Loeb, 기타)로 구성된 포플레이는 평균 연령 66세의 노장들이다. 1991년, 제임스의 ‘Grand Piano Canyon’ 녹음을 위해 세션으로 만나 그해 포플레이라는 이름으로 1집 ‘Fourplay’를 발매했다. 팀 구성 당시 이들은 이미 유명 재즈 작곡·연주자들이었기에 사람들은 이들이 한두 해 활동하다 해체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올해 25주년을 맞았고, 13번째 앨범 ‘Silver’를 발매했다.

일곱 번째 내한 공연의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수십 년 간의 무대 경험을 지닌, 만난 지 25년이 된 팀은 어떤 연습을 하며 공연을 준비할까, 즉흥적 요소가 많은 재즈 공연의 리허설 현장은 어떠할까 궁금했다. 사실 이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은 사심이 컸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도착해 객석이 아닌 무대로 향했다. 수없이 왔던 공연장 안,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니 신기했다. 두리번거리며 대기실에서 무대 쪽으로 걸어 나가려는데 그만 얕은 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삐끗했다. 그때 마침 뒤편에서 하비 메이슨이 등장해 “여기는 조심해야 해!”라고 말하며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지나갔다. 앗, 당황한 나머지 인사를 건네지 못해 아쉬워하다 메이슨이 나에게 이곳을 안내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어 웃음이 터졌다. 올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만 네 번째인 그가 첫 방문인 나보다 이곳에 대해 잘 아는 건 당연했다.

리허설은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스태프에게 물으니 피아노와 드럼은 기획사 측에서 연주자에게 모델명을 전달받아 대여한다고 했다. 밥 제임스와 하비 메이슨은 오랜 시간 동안 사운드를 섬세하게 체크했다. 너선 이스트와 척 러브 역시 이펙터와의 연결 상태와 악기의 밸런스에 신경을 모았다. 합을 맞추어야 하는 오케스트라 연주회나 뮤지컬과는 달리 각자 개인 연습에 집중했다. 개인 행동을 지켜보며 멤버 네 명의 캐릭터를 나름대로 파악해보았다.


▲ 연주 중인 밥 제임스

밥 제임스

올해 76세로 멤버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지만, 장난꾸러기 같은 면모를 지녔다. 척 러브의 연습 연주에 맞추어 통역사와 흥겹게 춤을 추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공연장의 스태프에게 포스터를 보여주며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다. 연습도 마치 노는 듯했다. 태블릿 PC에 담긴 악보를 슥-슥 넘겨가며 가벼운 연주로 몸을 풀었다.


▲ 연주 중인 하비 메이슨

하비 메이슨

우선 뛰어난 패션 감각이 눈에 띄었다. 흰 셔츠와 모자를 무심하게 걸친 메이슨은 이어폰을 꽂은 채 30분 이상 쉬지 않고 드럼을 연주했다. 같은 비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쪼개며 페이스를 조절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소리를 체크한 후 드럼 세트의 각 부분의 음향을 세심하게 조절했다.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 마이크를 체크하고 있는 너선 이스트

너선 이스트

포플레이의 리더는 제임스로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리더 역할은 이스트가 하는 듯 보였다. 합주를 주도하고 멤버들의 사기 증진을 위해 애썼다. 객석 쪽으로 걸어가 연습하는 멤버들을 향해 “오! 너희들, 오늘 다 죽일 셈이야?”라는 말도 했다. 밴드 내에서 베이스기타 외에 일렉트로닉 더블베이스와 보컬도 담당하는 그의 다재다능한 면모가 평소 성격에서도 드러났다.


▲ 밝은 표정의 척 러브

척 러브

자신을 제외한 멤버 개개인과 합을 맞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멜로디 라인을 나누어 담당할 피아노와 자신의 양옆에 있는 드럼, 베이스기타의 사운드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원하는 사운드가 완성될 때마다 “고마워, 밥!” “오! 좋은데, 메이슨?”이라며 신사다운 면을 보였다.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지만 따뜻함을 지닌 사람인 듯 보였다.

멤버들 모두 누구 하나 어른인 듯 잘난 척을 하거나 뻣뻣하게 구는 이가 없었다. 이들은 서로의 소리를 듣고, 배려했으며 리허설 도중 문제가 생겨도 유연하게 대처했다. 한국에서 포플레이의 히트곡 ‘Let’s Make Love’를 리메이크한 스윗소로우가 게스트로 등장했을 때도 서슴없이 대하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포플레이가 여전히 컨템퍼러리 재즈의 중심에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냥 즐기며 감상하고 싶었지만 기자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멤버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13번째 음반 ‘Silver’는 무엇을 상징하나? 음악적으로는 어떤 새로운 시도들을 했는지 궁금하다.

메이슨 전통적으로 50주년은 금, 25주년은 은으로 기념하지 않나. 우리도 창단 25주년을 맞아 ‘Silver’를 타이틀로 정했다. 언제나 그렇듯 최고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앨범에는 내가 내면의 강렬함을 최고조로 끌어올려 작곡한 ‘Silver Streak’, 밥이 섬세하게 써내려간 ‘Horace’ 등 포플레이만의 감성이 깃든 곡들이 담겨 있다.

그동안의 음악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멤버 네 명 모두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서로 의견 조율은 어떻게 하나? 예를 들면 ‘Silver’라는 타이틀을 두고 각자 작곡을 한 후 다시 모이는 식인지?

제임스 그렇다. ‘Silver’ 역시 그동안 작업해온 방식대로 만들었다. 우리는 타이틀을 논의한 후 각자의 홈 스튜디오에서 따로 작업을 했다. 이번에 너선과 척은 함께 작업했다. 우리는 각자 데모 트랙을 준비해 만났지만, 실제로 합주를 하면서 발전시킨 것이 곡을 완성하는 데 더 크게 기여했다.

포플레이 음반의 레코딩 퀄리티는 언제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라이브 연주를 할 때와 스튜디오 연주를 할 때 차이를 두는 것이 있는가?

이스트 우리는 우리의 엔지니어를 그룹의 다섯 번째 멤버로 언급하곤 한다. 엔지니어는 밴드의 훌륭한 소리를 캐치하는 일을 하며 이는 작곡만큼 중요한 역할이다. 포플레이는 지난 25년간의 투어 공연과 스튜디오 녹음을 엔지니어인 돈 머리와 켄 프리먼에게 믿고 맡겨왔다. 그들 덕에 청중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라이브 연주는 공간과 공간 사이에 변화가 존재하기에 조금 더 도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스튜디오 연주는 안정적이고 이상적이지만, 청중이 전해주는 에너지와 사랑에 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러브 나 또한 돈 머리, 켄 프리먼과 일하는 걸 행운으로 여긴다. 라이브 연주는 모든 일이 순간순간 실제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나를 흥분시킨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연주 방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튜디오 연주가 좋다. 스튜디오 녹음 중 밴드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르면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곤 한다. 이러한 과정의 많은 부분이 우리 음반에 담겨 있다.


▲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밥 제임스와 너선 이스트

오랫동안 팀을 유지하며 세계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아온 비결은 무엇이라 보는가?

제임스 우리는 의사소통을 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관계는 음악을 통해 공명한다.

메이슨 사랑받는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멤버 네 명 모두 진심 어린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다는 것, 가슴속 깊이 음악에 대한 존중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젊은 세대가 아님에도 현재 재즈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올드해지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워지기 위해 생활 속에서 노력하는 것이 있는가?

이스트 젊은 세대 음악가들의 곡을 많이 듣는다. 에스페란사 스폴딩, 로버트 글래스퍼, 스나키 퍼피, 제이컵 콜러, 알프레도 로드리게스, 더티 루프스, 안드레아스 버러디… 이들의 음악을 통해 생동감, 창의력, 예술적 진실성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투어 공연을 할 때나 평소에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

메이슨 일주일에 5회 이상, 심장 강화 운동과 더불어 스트레칭과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투어 공연을 가면 그 지역을 여행하며 좋은 기분을 느낀다.

러브 기타를 연습하는 만큼 먹고 운동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인다.

제임스 음악적으로 명확한 생각을 지니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공연 전에는 긴장이 풀릴 수 있도록 충분한 리허설을 갖는다.

이스트 수영과 자전거를 즐긴다. 음악과 함께 요가와 명상을 즐기는데,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멤버끼리 미래의 활동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는지 궁금하다.

이스트 일단 유럽과 미국으로 투어 공연을 이어갈 것이다. 이후에는 밥과 내가 어쿠스틱 듀오로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 더블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 빌 에번스&에디 고메즈, 키스 재럿&찰리 헤이든 등의 곡을 연주하는 프로젝트 ‘New Cool’을 선보일 계획이라 기대된다. 그 외에는 각자 솔로 음반을 준비할 예정이다.

제임스 우리는 그저 우리 앞에 놓인 프로젝트를 위해 최고의 음악을 만드는 데 정진할 뿐이다.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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