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예술을 부르는 항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드넓은 바다에 300만 인구가 맞닿아 있는 부산의 공연예술계는 도시의 역사가 품은 이야기만큼 다채로운 빛을 띠고 있다. 주요 예술 공간을 중심으로 ‘객석’이 부산의 문화 지도를 그려보았다

부산의 문화예술은 일제가 식민도시로 부산을 건설하면서 유입된 근대 문화와 동래 등지의 전통문화가 충돌·혼재하는 가운데 발전했다. 이러한 혼종성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커졌다. 일본의 식민 도시에서 피난민과 이민자의 도시가 된 부산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지닌 도시가 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은 부산의 예술이 르네상스를 맞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예술인이 피난지 부산으로 몰려들었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휴전과 더불어 서울 등지로 복귀했지만 일정 정도 부산에 정착하여 부산 예술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부산은 이렇듯 이질성과 타자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산의 문화적 위치는 부산만이 지닌 ‘운동성’과 ‘역동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

‘객석’은 대전의 8월을, 대구의 9월을 그리고 이번 호에 부산의 10월을 담아보았다. 가을의 기온이 여름 내내 빽빽하던 더위를 헐겁게 만드는 10월에도 부산의 곳곳은 공연과 축제로 달아올랐다. 그 인상은, 한마디로 잡다한 문화와 다양한 예술이 공립과 민간의 힘으로 서로 섞이며 연출하는 진풍경이었다. 이번 호에는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이문섭, 부산 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오충근, 부산아트매니지먼트·부산국제음악제 대표 이명아,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홍경희, 부산춤공간 Shin·부산국제춤마켓 예술감독 신은주, 국립부산국악원 서인화 원장 등 여섯 명이 들려주는 부산의 이야기를 담는다.

일상 속, 문화의 놀이터를 짓는다

INTERVIEW 1 부산문화재단 이문섭 대표이사

부산문화재단이 자리한 감만동. 폐교를 개조한 건물이다. 과거의 운동장이었던 곳은 이제 작품으로 가득하다.

‘일상의 재생 감만문화놀이터’라는 글자가 새겨 있는 오렌지색 콘테이너 박스 앞. 사진촬영을 위해 그 앞에 선 이문섭 대표이사의 머리가 ‘놀이터’의 ‘이’자를 정확히 가려, ‘놀터’가 되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그 앞에선 지압기로 만들어진 조각품 위를 동네 아주머니들이 ‘꾹꾹’ 밟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급기야 어떤 아주머니는 “우리도 그 옆에 슬까예?”라고 농을 건네자 옆의 아주머니가 “치워라, 네는 인물이 없어서 안 된다”라고 한다. 이 동네에서 이문섭은 어깨에 힘 잔뜩 주는 기관장이 아니라, 문화 심어주는 아저씨로 유명하다.

이문섭 대표이사 취임 이후 부산문화재단은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지원 사업 4년 연속 우수 평가, 16개 시·도 지역협력형 사업 최우수 ‘가’ 등급, 광역지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운영 인센티브, 원도심 창작 공간 문화 브랜드 대상을 수상했고, 공연예술연습공간, 공공미술 시범사업, 문화다양성 사업, 시민생활문화동아리 축제, 지역 대표 독서 프로그램 등의 많은 국비를 유치했다.


▲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2015 조선통신사 축제


▲ 부산문화재단의 우리동네 문화사랑방

이문섭 대표이사는 1977년 국제신문 입사 후 부산일보 주필, 논설주간 등을 거치며 2009년까지 언론인으로 재직하면서 부산 곳곳을 누비고 관찰하고 기록했다. 2010년에는 부산축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축제를 총괄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역임 후 2014년 부산문화재단에 취임했다.

부산문화재단의 운영 철학을 묻자 생활문화, 문화복지, 문화 향수권을 꼽는다. 이 세 개의 꼭짓점이 만든 삼각형이 부산문화재단이 지향하는 철학의 삼각형이다. 그리고 옛날을 기억하고(원로 예술인), 미래를 준비하고(청년문화예술인, 거리예술), 위(순수예술)와 아래(시민생활예술)를 챙기는 사업의 네 꼭짓점이 만든 사각형은 실행의 사각형이다.

“원로 예술인들은 부산 예술의 텃밭을 가꾼 이들입니다. 대상은 75세 이상인데, 아직도 창작열에 불타고 있는 예술가가 많습니다. 청년 지원사업은 부산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지원, 해외 진출, 일자리까지 그들이 갖고 있는 종합적인 고민을 입체적으로 풀어주는 것입니다. 거리 예술은 바닷가의 등대, 고층건물을 짓고 있는 크레인 등이 만들어내는 부산만의 ‘역동적인 풍경’을 토대로 부산이라는 공간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이 네 개 중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이문섭 대표이사는 시민들 사이로 더 많은 문화가 스며들기를 원한다는 말로 인터뷰의 끝을 맺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

INTERVIEW 2 부산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충근 예술감독

올해 4월, 지휘자 오충근은 체코 프라하의 스메타나홀에서 북체코 필하모닉과 함께 대만 작곡가 리저이가 작곡한 ‘부산 환상곡’을 유럽 초연했다. 레퍼토리는 직접 제안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오충근은 유럽 무대에 한국 부산의 원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여겼고, 이는 곧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바이올린과 해금, 2중 협주곡 형식의 ‘부산 환상곡’은 오충근의 지휘봉 아래 프라하 청중의 뜨거운 환호를 이끌었다.

부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해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지휘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오충근은 예술감독으로서 민간 오케스트라인 부산 심포니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정기연주회로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부산문화회관, 부산방송 KNN, 부산국제영화제 주최의 크고 작은 행사를 담당했다. 2007년 발족한 오충근 후원회와 2008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는 ‘대한민국 기업사랑 음악회’는 부산 심포니가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도왔다.

“부산 심포니는 원래 학생들을 위해 출범한 단체입니다. 대학 교수 몇몇이 모여 음대 관현악과를 졸업하고 연주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학생들이 악기를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죠. 초기에는 연주회를 1년에 4~5회 갖는 것이 전부였는데 올해만 돌아봐도 벌써 수십 회 무대에 올랐습니다. 함께 시간을 쌓고 경험을 채우며 실력은 향상됐지만 여전히 재정 부분은 어렵습니다. 정규직화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주력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부산의 오케스트라가 여는 클래식 음악회의 티켓 가격은 대부분 1만~3만원이다. 이마저 초대 문화가 굳어져 소비가 활발하지 않다. 오충근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클래식 음악 시장이 자생하는 길이라 여긴다.

“음악회장을 찾는 부산 관객들의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적어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부산 심포니의 공연은 90% 이상 기업과의 스폰서십으로 이루어지니 후원이 끊기면 활동을 멈춰야 합니다. 지원은 기업이 하고 소비는 시민이 해야 클래식 음악 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어요.”

체코에서의 성공적인 연주로 오충근은 유럽 여러 연주 단체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오는 11월 5일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헝가리의 사바리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고, 2016년과 2017년에는 베를린 심포니와 한국과 베를린에서 각각 연주회를 갖는다.

“서양인들이 만든 언어, 방법, 정해놓은 규칙, 그리고 이로써 탄생한 대단한 작품들… 이 모든 게 서양의 것이니 음악을 하면서 항상 고민이 됩니다. 연주를 잘한다는 의미는 가장 그들답게 한다는 것인데, 그저 그 단계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라면 그 이상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답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서양의 것을 답습하는 걸 넘어서 우리도 우리만의 뭔가를 시도해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차분한 말투에서 부산과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자체 콘텐츠 개발은 자생력을 키운다

INTERVIEW 3 부산아트매니지먼트·부산국제음악제 이명아 대표

이명아 대표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부산아트매니지먼트의 사무실 꼭대기 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나자는 회신을 보냈다. 해운대가 한눈에 펼쳐진 창가 자리에 앉은 그녀의 모습에서 부산 공연예술계를 내려다보는 대모의 위엄이 느껴졌다. 1985년부터 공연 기획에 뛰어든 이명아는 1998년, 부산아트매니지먼트를 설립해 현재까지 부산 시민들에게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여왔다. 2005년부터는 찬바람이 부는 매 겨울마다 실내악 중심의 페스티벌인 부산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명아 대표는 “부산은 클래식 음악의 황금 시대였던 1990년대 초·중반을 지나 IMF 금융 위기를 맞으며 암흑기로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각 지역마다 공연장이 많이 생겼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획사에서 극장으로 중심이 조금씩 이동했어요.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좋은 연주 단체의 공연을 개최하는 일을 극장과 나누어 하며 경쟁 구도를 갖게 됐죠. 예산을 받아 운영하는 극장과 견주니 민간기업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시립 오케스트라가 공연 티켓을 매우 낮은 금액으로 판매하고 초대권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여 부산의 클래식 음악 시장은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어요. 민간단체가 뭔가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상태죠.”

그럼에도 독주자로 명성이 높은 세계 여러 나라 연주자들을 모아 프로젝트 실내악단을 만들어 열흘간 연주회를 여는 부산국제음악제는 10년째 굳건해지고 있다. 매년 부족한 예산에도 수준급의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해 이명아가 동분서주하는 이유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부산만의 고유 콘텐츠를 가지기 위함이다. 서울에 공연하러 오는 유명 연주자를 부산에 들르게 하는 부수적 공연만으로는 부산의 클래식 음악계를 활성화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 2015 부산국제음악제 공연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비엔날레, 부산국제연극제, 부산국제무용제 등 많은 페스티벌이 부산에서 열리는데 음악제만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나이 들면서 보람 있는 일을 찾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실내악이 좋으니 저질러보자 했어요. 적자를 많이 봤지만, 2010년에 사단법인으로 전환한 후로는 많이 안정화됐습니다. 부산국제음악제에서 라이징 스타로 꼽았던 연주자들이 해외에서 활약하는 걸 보면 뿌듯해요. 한국의 실내악이 다양화된 것도 보람된 일이고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획기적 발전을 위한 방안을 음악감독인 피아니스트 백혜선 외 임원들과 함께 모색하고 있어요.”

이명아 대표와의 대화에서 부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미국 LA를 보면, 뉴욕만큼은 아니어도 월트디즈니 콘서트홀과 LA 필하모닉 등 자체적으로 충분히 활성화하고 발전되어 있잖아요. 부산 역시 그랬으면 합니다. 클래식 음악이 융성하던 1990년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고여 있는 물을 흐르게 해야지요.”

그녀의 각오에 실린 힘만큼 부산의 공연예술계는 크게 도약할 것이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생동감을 유지하기 위한 땀방울

INTERVIEW 4 부산시립무용단 홍경희 예술감독

10월의 청명한 하늘 아래, 한적한 평일 낮 시간 부산문화회관 광장에서 부산시립무용단 홍경희 예술감독을 만났다. 홍경희는 서울시립무용단(현 서울시 무용단) 수석무용수·지도위원으로 20년 간(1978~1999) 활동했고,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 단장(2000~2002)과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2007~2011)을 역임했다. 2013년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그녀는 ‘부산살이’가 제법 익숙해진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과거부터 ‘호남은 소리요, 영남은 춤이다’라고 하잖아요. 한국 최초 시립무용단인 부산시립무용단에 오게 되었을 때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역시 42년 전통을 지닌 무용단에는 저력이 있더군요. 단원들이 지닌 프라이드도 강하고,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도 대단했어요. 마치 배김새(몸을 힘차게 던져 디딘 후 천천히 푸는 춤사위) 같은 단원들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부산시립무용단은 연간 두 번의 정기 공연 외에 복지관순회공연,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부산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홍경희는 양질의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매 무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봄에는 김매자, 배정혜, 국수호 등 명인들과 함께 춤의 본질을 담아내는 창작 공연 ‘오래된 미래’를 선보였어요. 하반기 공연은 ‘신(新)월인천강지곡’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대성 몸의 언어를 지닌 현대적 무대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사실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건 계절마다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는 건데요. 예산과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실행을 못하고 있지만, 언제든지 바쁘게 돌아가야 관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 번씩이라도 공연장에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시립단체로서 본이 돼야 하는 책임감도 있고요.”


▲ 부산시립무용단 ‘춤추는 영혼’ 공연 장면

부산시립무용단은 지난 9월, 부산과 자매 도시인 이스탄불에서 초청 공연을 개최했다. 조선 시대 소설 ‘이생규장전’을 모티브로 하는 창작 무용 ‘춤추는 영혼’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리틀엔젤스 예술단 출신인 홍경희는 “1960년대와 다름없이 여전히 장구춤·부채춤만으로 한국의 춤을 알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옛것에 머물러 있으면 생동감을 잃게 마련입니다. 이제는 외국에서도 현대와 통하는 이야기와 정서를 기대해요. 창작 작품으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꾸 시도하고 부딪혀야 발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도전의 중심에 부산이 있기를 바랍니다.”

홍경희는 이미 초석이 다져져 있는 부산의 춤이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오르도록 숨을 불어넣고 있다.

글 김호경 기자(ho@gaeksuk.com)

의무감과 사명감

INTERVIEW 5 부산춤공간 Shin·부산국제춤마켓 신은주 예술감독

1997년 신은주 무용단 창단, 2010년 부산국제춤마켓 시작, 2011년 부산춤공간 Shin 설립. 글로 쓰면 한두 줄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부산국제춤마켓은 지역 교류 및 국제 협업의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축제를 통해 쌓아온 네트워크로 독일,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쿠바, 일본, 이탈리아, 파나마, 멕시코 등 여러 단체와 개인이 부산에 몰려들어 춤바람을 일으킨다. 부산에서 신은주를 만난 때는 제6회 부산국제춤마켓(10월 1~11일)이 끝난 바로 다음 날.

“부산국제춤마켓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고,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외국에 나가 새로운 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다 보니 새로운 형식의 미학과 기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도는 무모했죠. 예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생각해보면 간도 크죠.”

결론은 의무감과 사명감이었다. 그런 그녀의 사무실에는 ‘덕필유린(德必有隣)’ 네 글자가 적힌 큰 글씨가 걸려 있다. 덕 있는 자는 따르는 사람이 많아 외롭지 않다···. 양산 학춤의 대가 학산 김덕명(1924~) 선생이 하사한 글씨다. 글씨에 서린 문기(文氣)가 매섭고, 꿈틀거리는 무기(舞氣)는 자유분방하다.


▲ 신은주의 공연장면

부산춤공간 Shin도 신은주의 춤과 덕으로 쌓아올린 공간이다. 보통 무용 연습실이나 소극장은 건물 지하에 자리한다. 하지만 부산춤공간 Shin은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10층에, 레지던스 및 사무 공간은 바로 위 11층에 있다.

“이곳에서 부산국제춤마켓도 열리고, 워크숍은 물론이고 레지던시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만나 협업합니다. 11층에 마련된 공간에서 숙박하기도 하고요. 예술가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모든 무용 연습실이 그렇듯, 우리도 지하에 있었습니다. 스튜디오 공연을 매번 했는데 그 공연을 매번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어느 날은 햇빛이 보고 싶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했는데, 그 소원이 이렇게 풀어진 것이죠.(웃음)”


▲ 부산춤공간 Shin에 오른 카와사키 요시히로

2008년 부산시가 메세나사업을 추진했을 때 기업 대창메탈, 환경바이오, 부산학원과 인연이 되었다. 부산춤공간 Shin이 위치한 빌딩은 원래 부산학원으로 유명했던 건물인데, 현재는 건물 9층까지 모두 병원으로 쓰인다. 나는 ‘연습하다가 부상당하면 바로 치료가 가능하겠어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개인의 이름으로 부산 춤의 살림을 이고 가는 신은주는 “이제 겨우 씨앗을 심은 것일 뿐이고, 어떻게 발아가 될지는 모르겠어요”라며 웃는다.

“사실 제 나이 또래들이 허리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장을 찾아보면 별로 없어요. 이러한 현상의 현실이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과제를 주었던 것이죠. 춤과 사람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신은주가 부산에 춤의 씨를 뿌린다면 퇴비를 주는 건 부산 관객들의 몫이다.

“이곳에 오는 모든 이들이 즐거워합니다.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것을 또 좋아하기도 하고. 예술이란 것은 참 느리게 성과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관객들의 빠르고 솔직한 반응이 그 발전을 촉진시켜요.”

춤꾼에게 춤출 수 있는 공간이란, 화가의 물감처럼 음악가가 산책 중 듣는 새 울음소리처럼 큰 영감을 준다. 부산국제춤마켓과 부산춤공간 Shin은 무용수들에게 그러한 공간이다. 다시, 또 한 번의 결론을 내린다. 신은주의 의무감과 사명감.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부산의 발견, 전통예술의 재발견

INTERVIEW 6 국립부산국악원 서인화 원장

국립부산국악원의 10월은 바쁜 나날이었다. 20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에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국립부산국악원 기악단(예술감독 권성택)과 무용단(예술감독 오상아)이 축하 무대를 열었다. 또한 해운대그랜드호텔 지하에 있는 왕비의 잔치 전용 극장에서 7월 28일부터 선보이고 있는 상설 공연 ‘왕비의 잔치’의 중간 점검이 바쁘게 진행된 시간이기도 했다. 2008년에 개원한 국립부산국악원은 삶 곳곳에 국악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산 시민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는 중이다.

2013년 개방형 공모를 통해 부임한 서인화 원장은 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했고, 국악이론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국악원 학예실, 진흥과, 장악과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그녀는 연구실과 공연장을 넘나들었다. 진흥과에서 국제교류를 담당하던 시절에는 영문학도 출신의 경력을 십분 발휘하기도 했다.

“지방의 문화를 모르고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에 재직하던 시절에 인근의 민요를 조사하고 다녔어요. 고개만 넘어도 달라지는 상여 소리를 발견하면서 지방문화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국립부산국악원에 부임할 때도 부산에 숨 쉬고 있는 소중한 자산에 대한 기대가 많았습니다.”

서울을 오랜 시간 벗어나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연고가 없는 부산은, 초반에 좀 쌀쌀맞은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부산에 숨 쉬고 있는 전통문화에 빠져들고, 그 맛을 부산시민과 공유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는 ‘국악’ 하면 보통 전통음악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국악은 곧 가(歌)·무(舞)·악(樂)의 또 다른 말이다. 노래와 춤과 음악. 옛 명인들은 노래를 부르다가 흥의 물꼬를 틀어 악기를 탔는가 하면, 그 흥에 몸이 달아오르면 춤으로 그 흥을 이어갔다. 부산은 특히 춤의 흥이 지기(地氣)에 강하게 흐르고 있는 도시다.

“그 누가 부산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하던가요. 다대포, 수영, 동래, 구덕 등지에서 전통문화와 보존회의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시민의 뜨거움도 이곳의 전통예술을 떠받치는 귀한 에너지다. 서인화 원장은 이 힘에 대해 “격하고 거친, 하지만 인간적인! 음식을 준비하다가 손님이 오면 손을 씻지도 않은 채 반갑게 손을 잡아주는 것”에 비유한다.

“정말이지 부산이 어떤 곳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관객을 들여다봐야 해요. 서울의 경우는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모객이 여기서는 하루이틀이면 끝납니다. 부산 사람들, 성질 급하잖아요. 자기표현은 못하지만 공연 뒤의 뜨거움 그 자체를 박수에 실어요. 좋은 음악을 만난 이들이 보내는 인간적인 반가움이에요. 한번 끌고 오기 힘들 뿐 한 번 온 사람들은 단골이 됩니다. 부산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하는데, 저는 ‘국악의 블루오션’이라 생각합니다.”

부산국립국악원이 개원한 것은 2008년이지만, 사실 국립국악원(서울)은 한국전쟁기에 부산에서 설립된 역사를 갖고 있다.


▲ ‘왕비의 잔치’ 중 대례복 시연


▲ ‘왕비의 잔치’ 공연 장면

국립부산국악원은 현재 상설 공연 ‘왕비의 잔치’에 열정을 쏟고 있다. ‘왕비의 잔치’는 일종의 무용극으로 궁중정재와 고성말뚝이, 아미농악과 밀양백중놀이로 대표되는 영남 지역의 춤과 연희, 왕비의 대례복 입는 모습을 재현하는 한판 ‘잔치’ 같은 공연이다. 매주 토요일에만 열리는 국립국악원(서울)의 ‘토요명품공연’과 달리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열린다. 2010년부터 부산에 기항하는 크루즈선과 연계한 부정기 공연 경험을 밑거름 삼아 ‘왕비의 잔치’를 선보였지만 아직 안정화되지 않아 관객이 150명이 드는 날도 마냥 기뻐할 수 없고, 20명 들어 텅텅 비는 날도 마냥 낙심할 수는 없다.

“그래도 열심히 해서 부산에 있는 공연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것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사진 한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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