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라는 이름의 주인공

송현민의 CULTURE COD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월 1일 12:00 오전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극장국가(theater state)’ 이론을 통해 바라본 북한 모란봉악단 이야기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극장국가(theater state)’ 이론을 통해 바라본 북한 모란봉악단 이야기

극장국가 | 권력을 공연하는 무대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으로 구성된 시공간
모란봉악단 | 권력의 향기를 날리는 꽃. 북한 김정은에 의해 2012년 창단

조선 말, 청나라의 제후에서 벗어나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고종은 자신이 통치할 대한제국을 서구의 전제군주가 이끄는 제국처럼 새롭게 정비하려는 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내 곧 대한제국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는 대한제국 선포를 현실화하고 세계 제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제국’으로서 외양을 갖추기 위해 황제의 권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기념물·건축물을 설치한다.

그리고 국가 의식과 행사 같은 퍼포먼스도 기획한다.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이라는 국가를 ‘무대’로 내세운 퍼포먼스의 실질적인 ‘연출가’였다. 우선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전인 1895년 의욕적으로 국가제례를 정비했다. 이 정비로 말미암아 이 시기에 거행된 제향 의식 ‘종묘제례’와 ‘문묘제례’는 조선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거행되었다.

고종 황제가 ‘연출가’로서 역할을 확장한 것은 칭경 예식이었다. 1902년, 즉위 40년을 맞은 51세의 고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국가 행사를 준비한다. 황제의 권위와 권력 강화를 꾀하던 그에게 경축을 뜻하는 ‘칭경’ 예식은 외국 사절들을 초대할 수 있는 명분 있는 행사였고, 자신의 황제권을 국제 사회에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신하들의 상소에서 시작된 다른 의식과 달리, 칭경 예식만은 고종 황제가 직접 내린 지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요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칭경 예식은 1902년부터 창궐한 콜레라·가뭄·기근 탓에 수차례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 행사가 다음 해로 연기되면 사실상 무산되는 것이 관행이던 당시 고종 황제는 칭경 예식만은 강행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준비는 해를 넘겨 계속되지만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칭경 예식은 끝내 거행되지 못했다.

극장국가의 원리

실질적 국가 권력을 의례나 의식의 형식을 통해 유지하는 것을 ‘극장국가(theater state)’라고 한 이는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제임스 기어츠다. 한마디로 통치자의 정치권력이 일정한 정치 제도가 아닌 권력을 과시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어츠는 이러한 국가의례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퍼포먼스적 진행 과정을 의식하여 ‘극장국가’라는 연극적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극장국가를 구성하는 것 중 중요한 것은 극장(=국가)에서 선보이는 문화적 재현물뿐 아니라, 극장국가의 ‘관객(=국민)’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의식을 ‘보는 것(관람)’이란, 일련의 과정을 직접적으로 체현하는 것과 같다. 결국 왕이라는 직위가 권력으로 아이콘으로 부상하도록 만드는 것은 주역으로 등장하는 왕의 신체를 직접 볼 수 있는 국가 의례를 통해서이며, 이때의 퍼포먼스와 의례의 참관(참여)은 극장국가를 완성하는 뼈와 살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의식의 생산 주체(권력·연행자·연출가)가 ‘보여주는 것’과 그것을 관람하는 체험 주체(피권력·국민·관객)의 보는 행위를 통해 극장국가는 유지된다.


▲ 모란봉악단의 패션은 탱크톱부터 제복까지 다양하다

권력의 향기를 날리는 꽃, 모란봉악단

12월 베이징 국가대극원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가 갑작스레 취소된 북한 모란봉악단은 극장국가 원리를 통해 지도자의 권력이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준 좋은 예다.

최고 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정치적 의미가 부여된다. 그가 특정 악단의 공연을 자주 관람한다는 것은 곧 그 공연 내용이 단순한 문화정책을 넘어 지도자가 의도하는 변화와 방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여성 밴드 모란봉악단은 ‘평양판 걸그룹’으로 김정은이 3년간 19차례나 공연을 관람한 ‘친솔 악단’이다. 단원들의 세련된 외모와 뛰어난 가창과 연주력, 혁명가요 외에 클래식 음악과 팝음악까지 아우르는 파격적인 레퍼토리로 북한뿐 아니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미니스커트와 탱크톱 등 과감한 무대의상을 착용하기도 했다.

모란봉악단의 등장에는 김정은의 젊은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뜻이 있다. 1994년부터 집권한 김정일에 비하여 2012년에 권력을 잡은 김정은은 정치적 기반이 취약했다. 그래서 단기간에 확실한 이미지를 창출하고자 ‘생활편의시설 확충’과 ‘문화공연 확대’에 주력했다. 능라곱등어(돌고래)관, 능라물놀이장, 롤러스케이트장, 평양민속공원 등 대규모 유희장을 열고 살림집을 건설한 것은 생활편의시설 확충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능라인민유원지 야외무대 설치, 모란봉악단의 결성은 문화공연 확대에 해당한다. 이러한 배경 아래 모란봉악단 결성은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과 함께 국내외에 김정은이 ‘연출’한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모란봉악단 출현의 또 다른 이유로는 남한 대중문화를 비롯한 대외문화에 대한 대응이다. 북한은 중국과 무역 확대로 국경 지역을 통해 한국과 중국 드라마·방송·영화가 대량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남한 드라마·방송·영화를 예전보다 훨씬 쉽게 접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통한 서독의 문화 침투를 억지로는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동독이 자신들도 재미있는 프로를 만들어 대항하려 했다는 ‘오락의 변증법’처럼 모란봉 악단 창단도 그런 차원의 대응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 분단 이후 극장이란 시공간은 각 정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장’이었고, 대립하는 이념의 보이지 않는 ‘격전지’였다. 남한에서 대형 뮤지컬을 주특기로 하여 1961년에 창단한 예그린악단과 그 성과를 계승하여 1973년에 창단한 국립가무단이 대표적 예다. 표면적으로 국립가무단의 목표는 민족문화 소재를 바탕으로 한 ‘한국적 뮤지컬’을 개발하고 이를 국제적 수준의 뮤지컬로 발전시키는, 이른바 예그린악단 창단 목표의 맥을 잇는 것이었다. 그런데 순수예술로도 대중예술로도 분류되지 않는 이른바 ‘중간예술’단체인 국립가무단을 국립극장에 소속시킨 이유는 당시의 남북회담에 영향받은 정치적 목적에서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72년 8월과 9월 평양과 서울에서 각각 열린 남북회담이 끝난 뒤 1971년에 만들어진 북한의 혁명가극 ‘피바다’를 보고 그 장대한 스펙터클 형식과 내용에 충격을 받은 남한 관계자들이 북한과의 문화 대결을 위해 대형가무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의 혁명가극에 대항할 수 있는 ‘한국적 뮤지컬’ 정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즈음 탄생했다가 나중에 서울예술단으로 바뀐 88서울예술단과도 비슷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간 빠른 속도로 진행된 남한 대중문화의 변화, 그리고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활발하던 남한 방송사들의 방북 공연에 대한 북한 관객들의 반응은 북한으로 하여금 새로운 대중문화 필요를 의식하게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김정일의 명령으로 결성된 보천보전자악단(1983년 창단)과 왕재산경음악단(1985년 창단)은 ‘전자음악’과 ‘경음악’으로 시대의 유행을 선도하기 위한 단체를 지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젊은 세대의 변화된 감성을 담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후계자의 등장을 계기로 2009년에 삼지연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을 결성했다.

두 악단 모두 클래식 악기가 중심이며 단원들의 세련된 미모와 의상, 경쾌한 음악은 이전의 왕재산경음악단이나 보천보전자악단과 차별화되었다.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리설주도 은하수관현악단에서 가수로 활동한 바 있다. 삼지연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으로 새로운 공연 스타일의 수용이 확인되자 2012년 김정은과 리설주가 주도하여 모란봉악단을 결성했다.

극장국가의 예술감독

모란봉악단은 단순한 ‘걸그룹’이 아니다. 그것은 새 권력자가 전 세대와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구별 짓기를 통해 신(新)권력을 생산하기 위한 극장국가용 산물이다. 보여주는 행위와 보는 행위가 오고가는 극장에서, 권력은 보는 자의 시선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고종황제가 ‘연출가’와 ‘배우’가 되어 연출한 대한제국의 문화적 퍼포먼스를 통해 신생국가의 권력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여 선포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조선의 신민이 대한제국의 신민으로 다시 태어나게끔 했다. 기존 ‘조선-백성’의 관계를 새로운 ‘대한제국-국민’의 관계로 탈바꿈하게 한 것이다. 모란봉악단 역시 권력을 생산하되, 전 지도자와 다른 젊은 권력을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국가 의례와 예식이 펼쳐지는 극장의 객석에는 최고 지도자가 자리한다. 카메라는 그의 참석을 담아서 전국에 방영한다. 그것은 극장국가의 연출자를 소개하는 것과 같다. 공연 후 커튼콜에서 총연출가가 출연진의 환영을 받으며 등장하듯, 극장국가의 총연출자도 그렇게 등장하여 자신의 권력을 재생산하고 과시하는 것이다.

클리포드 제임스 기어츠 ‘Negara-The Theater State in 19th Bali’, 김기란 ‘대한제국기 ‘극장국가(theater state)’ 연구(1)’, 오기현 ‘평양 걸그룹 모란봉악단’,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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