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녹음의 나이, 백 살

황덕호의 JAZZ RECORDING HISTORY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월 1일 12:00 오전

2017년, 재즈 녹음은 100년의 시간을 맞는다. 2015년에 재즈 스탠더드 넘버를 연재한 황덕호가 올해는 재즈 녹음 역사에 관한 열한 개의 이야기를 준비했다(편집자 주)

2017년, 재즈 녹음은 100년의 시간을 맞는다. 2015년에 재즈 스탠더드 넘버를 연재한 황덕호가 올해는 재즈 녹음 역사에 관한 열한 개의 이야기를 준비했다(편집자 주)

작년에 발표된 2014년 미국 음악산업 결산을 보면, 재즈는 전체 음반 시장에서 점유율 1.4%를 기록해 여러 음악 장르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결산에서 재즈가 최하위를 기록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이 뉴스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재즈가 그렇게 인기가 없었나? 하고 의구심이 드는 독자라면 일 년 동안 단 한 장의 재즈 음반도 사지 않은 자기 자신 혹은 주변 사람들을 볼 때 조금은 납득이 갈 것이다. 미국이라고 다를 것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통계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디지털 음원 시장에 관한 통계로, 전년(2013년) 대비 올해(2014년) 디지털 시장은 당연히 거의 모든 장르가 성장세다. 디지털 시장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 시장도 미세하게나마 매해 소폭 상승 중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재즈만은 2013년도 대비 2014년 통계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왜 그런 것일까?

이 현상은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나는 다음 두 가지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음악적인 것으로, 현재 모든 대중음악과 재즈 사이에 놓여 있던 다리가 완전히 끊겼다는 점이다. 이 점은 블루스와 로큰롤의 퇴조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팝 음악에서도 재즈적 요소, 특히 즉흥연주가 조금씩이나마 늘 필요했지만 현재의 대중음악에서 그러한 요소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팝 음악 녹음에서 재즈 연주자들을 세션맨으로 기용하는 모습은 과거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제 그러한 풍경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어린 시절 팝 음악을 즐겨 듣던 10대 팬들이 성인이 되면서 재즈로 유입되던 것도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재즈로서는 잠재적 시장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음원이라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과 관련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재즈는 디지털 시장과 가장 맞지 않은 대표적인 음악이다. 디지털 시장으로 매우 더디게 이동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을 예로 들면, 협주곡의 경우 작곡가·곡목(각 악장들)·독주자·오케스트라·지휘자의 이름이 음반처럼 일목요연하게 감상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상자는 큰 불편을 느낀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의 디지털 시장의 성장세가 그토록 느린 것이다. 그런데 재즈는 디지털 매체에서 더욱 불편하다. 만약 4중주단의 연주라면 네 명의 이름이 모두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이 연주한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 A단조라고 하면 대략 감상할 수 있지만, 존 콜트레인 4중주단이 연주한 ‘I Want to Talk about You’는 네 명의 연주자 이름을 일일이 모르고서는 결코 감상했다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재즈는 연주자 각각이 음악의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음반 커버가 없던 78회전 SP(Standard Play)판 시절, 음반 중앙에 붙어 있는 레이블을 보면 재즈 음반의 경우에는 밴드 리더 외에도 연주자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데(물론 빅 밴드의 경우에는 불가능했지만), 그것은 재즈의 음악적 특성을 고려한 재즈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런데 그 전통이 디지털 시대에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재즈의 위기이기도 하다. 물론 재즈의 위기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늘 이야기돼온 터라 식상하지만 말이다.

그러한 와중에도 내년 2017년 재즈는 자신의 소리를 음반에 담은 지 정확히 100년째를 맞이한다. 녹음으로 기록되기 전인 대략 20년의 세월을 포함해 120년 동안 재즈가 끈질기게 버티며 끊임없이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온 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로서 이 음악을 숙달하고 싶었던 수많은 연주자의 열정 덕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음반이 없었다면 악보로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아름다운 즉흥연주를 선사하던 수많은 연주자들의 이름은 오늘날 상당 부분 잊혔을 것이다.

동시에 예술이란 늘 인간의 산물로 여겨짐에도 한편으로 시대의 산물이고 특히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재즈 역시 마찬가지다. SP 시절 3분 내외의 녹음 시간제한은 재즈라는 긴 즉흥연주의 음악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밀도 있게 표현하려는 편곡의 역할을 오히려 자극했다. 동시에 마이크로그루브의 개발로 한 면당 재생 시간 20분이 넘는 LP의 탄생은 모던재즈 시대에 자유분방한 즉흥연주에 박차를 가했다.

음반사·방송사·음악인들의 이해 갈등은 표준에서 벗어난 상이한 음반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재즈의 이면들과 녹음이 공백으로 남겼던 시대를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탄생한 재즈 독립 레이블들은 이후 재즈 사운드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고, 그 표준화된 소리란 역시 음반의 존재 덕이었다. 1960년대 로큰롤의 태풍은 재즈를 날려버린 것 같았지만, 그 시대를 버텨내며 재즈의 생명을 연장시킨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은 로큰롤의 무기였던 스튜디오 편집기술 덕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아울러 그 반대의 경향으로 메인스트림 재즈의 부활도 1970년대에 이루어졌다. 이렇듯 재즈는, 모든 예술이 그렇듯 과학기술과 여러 사회적 요소 속에서 영향 받았고,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그중 가장 직접적인 요소는 녹음과 음반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이 글은 11회에 걸쳐 재즈 녹음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음반사를 통해 본 재즈의 역사는 재즈 통사(通史)를 꿰어온 독자들에게 재즈의 다른 모습들을 보여줄 것이다. 아울러 음반이 사멸하는 시대에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재즈가 앞으로 어떻게 감상되고 기록되어야 하는지를 한 번쯤 생각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밴드

2월 재즈녹음의 탄생: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
3월 흑인의 등장: 레이스 레코드의 탄생
4월 어쿠스틱 녹음에서 전기 녹음으로: 루이 암스트롱
5월 원 맨 밴드: 시드니 베쳇과 오버더빙
6월 이해 갈등의 산물들: 트랜스크립션 디스크와 V-디스크
7월 재즈의 미래를 보다: 재즈 독립 레이블의 탄생
18월 마음껏 즉흥연주를 펼쳐라: LP의 탄생
19월 클럽은 재즈의 산실이다: 실황 음반의 시대
10월 소리의 장관: 스테레오의 등장
11월 프로듀서의 시대: 스튜디오 편집
12월 디지털 레코딩: 음반의 흥망성쇠

(목차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글 황덕호

KBS 1FM ‘재즈 수첩’을 16년째 진행하고 있다. ‘평론가’보다는 ‘애호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쓰고, 듣고, 틀고,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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