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 절대적 위용을 지닌 최고 신

유형종의 MYTH+MUSIC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2월 1일 12:00 오전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C장조 ‘유피테르’와 바그너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탄생시킨 제우스와 올림포스 12신 이야기


▲ 프랑스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제우스와 테티스’(1811)

제우스(Zeus)는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신의 우두머리요, 지상과 하늘을 주관하는 최고 신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유피테르(Jupiter)’로 바뀌고, 이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주피터’가 된다. 주피터는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행성 중 제왕이라는 것이다. 사실 영미권에서는 주피터보다 ‘조브(Jove)’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영화나 오페라 자막에 조브라고 표기되었다면 바로 제우스다.

최고신 제우스의 탁월한 리더십

제우스의 부친은 티탄족인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자식에게 권좌를 빼앗길까 두려워 아내 레아가 출산하는 즉시 아이들을 집어 삼켰는데, 이를 못 견뎌 하던 레아는 제우스를 낳자 돌을 강보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주고는 아이를 숨겨 기른다. 제우스는 성인이 되자 크로노스를 속여 구토제를 먹이고 형제자매인 포세이돈·하데스·헤라·데메테르·헤스티아를 구해낸다. 그리고 힘을 합쳐 티탄 족을 물리친다. 제우스는 마지막으로 태어난 자식이지만 세상에서 성장한 덕에 싸움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 승리한 다음에는 두 형인 포세이돈·하데스와 세상을 삼분하여 통치하기로 한다. 제비뽑기로 결정했지만 이미 기득권을 갖고 있던 제우스에게 가장 중요한 지상과 하늘이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상 내정되어 있었다. 바다를 차지한 포세이돈은 큰 불만이 없던 반면, 지하세계로 내려가게 된 하데스는 크게 불평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 신의 우두머리인 것은 물론 그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천둥과 번개의 신이다. 하늘의 통치자이므로 기후를 결정하고 독수리를 부린다. 고대 로마제국 이래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모스크바 공국은 물론 나치와 오늘날의 미국 국장(國章)으로도 독수리가 쓰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제우스는 신의 제왕답게 이 세상의 질서를 감시하고 리더십을 발휘한다. 제우스의 리더십은 CEO들을 위한 강의용 주제로도 적절할 것 같다. 첫째 그는 천둥과 번개, 독수리의 속성처럼 탁월한 결단력의 소유자다. 망설이는 법이 없이 빨리 판단하고 즉시 실행에 옮긴다. 둘째 용인술에 뛰어나다. 여러 자식 중에서 최고의 아들 아폴론과 최고의 딸 아테나를 좌우에 거느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그뿐 아니라 탁월한 협상력과 술책까지 지닌 헤르메스를 책사로 두고 있다. 셋째 신상필벌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가장 총애하는 아폴론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뜻을 거역하면 남의 집 머슴살이를 시킬 정도로 철저하다. 넷째 뛰어난 정보력을 갖고 있다. 헤르메스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마차를 타고 하늘을 도는 태양신 헬리오스와 아폴론을 통해 한낮에 일어난 일들을 알아낸다. 다섯째 냉정한 정치적 감각을 갖고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포세이돈과 하데스를 수시로 다독여 형제간 갈등의 여지를 없애고, 신들의 다툼을 중재한다. 세 여신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것 같은 곤란한 과제는 헤르메스의 손을 빌려 파리스에게 슬쩍 넘겨버린다.

물론 제우스의 리더십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절대적 제왕으로 군림하다 보니 섬길 줄 모르고, 포용력과 소통 능력이 크게 부족했다. 이 때문에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서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제우스의 이름이 사용된 명곡으로는 단연코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인 41번 C장조 ‘유피테르’를 최고로 꼽아야 할 것이다. 곡 제목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하이든의 ‘런던 교향곡’ 시리즈를 탄생시킨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겸 흥행사 요한 페테 잘로몬이 후에 붙인 것이다. 그런데 시비를 걸 여지가 없을 정도로 멋지게 붙였다. 조성인 C장조가 모든 음계의 중심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1악장이 시작하자마자 합주로 제시되는 당당한 첫 주제부터 올림포스 정상에서 늠름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제우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4악장이야말로 제우스의 위상에 어울리는 멋진 마무리다. 대단히 정교한 푸가인데, 푸가가 옛 양식인 것은 물론이고 그 주제로 사용한 ‘도-레-파-미(C-D-F-E)’의 선율도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따온 것이어서 단번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유럽인들에게 그리스-로마 신화에 견줄 만한 온고지신의 대상이 성경을 제외하고 또 있겠는가. 게다가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장대한 음향 효과를 빚어내고 있으니 ‘음악의 제우스’로서 흠잡을 곳이 없다.

올림포스의 12신과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제우스는 올림포스 산정에 기거하는 12신을 정함으로써 통치 기반을 완성했다. 언제든지 잠재적 라이벌이 될 수 있는 형제 포세이돈과 하데스는 배제했다. 간혹 포세이돈을 12신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지만 어차피 소수 의견이고, 바다의 신이 산 위에 거주한다는 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12신 중 제우스의 남매가 셋이다. 아내이자 결혼의 여신 헤라(로마 신화의 유노),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케레스), 부뚜막의 여신 헤스티아(베스타)가 그들이다. 나머지 여덟은 제우스의 자식에 해당한다. 정실인 헤라와 낳은 전쟁의 신 아레스(마르스)와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불카누스)는 둘 다 제우스의 마음에 차지 않는 아들들이다. 티탄 족의 딸 레토와의 사이에서 가장 총애하는 예술과 예언의 신 아폴론(아폴로)을 얻었고,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디아나)를 쌍둥이로 함께 얻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는 역시 티탄 족인 아틀라스의 여동생 마야 사이에서 태어났다.

포도주와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는 12신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빠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모친이 여신이 아닌 인간 여인 세멜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멜레가 죽을 때 제우스는 재빨리 뱃속에서 아이를 꺼내 자기 넓적다리에 넣고 남은 달을 채웠다. 낳기는 제우스가 한 것이니 인간 여인에게서 얻은 다른 자식들보다 격이 높다. 딸 중에서 가장 총애하는 지혜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 아테나(미네르바)도 제우스의 몸에서 나왔다. 아테나의 모친은 제우스의 첫 아내 메티스인데, 아들을 낳으면 제우스의 권좌를 위협하리란 예언을 듣자 제우스는 아내를 집어삼켰다. 아테나는 엄마 뱃속에서 나와, 제우스의 머리로 올라가 두통을 일으켰고 제우스는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머리에서 딸을 꺼냈다.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베누스)만은 특이하다. 일반적으로는 제우스의 할아버지인 우라노스(유러너스)의 성기가 잘려 던져진 바다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는 제우스와 여신 디오네 사이의 딸이라고 설명한다. 거품에서 태어난 이야기가 흥미롭긴 하지만 제우스가 올림포스 12신을 자신의 혈족만으로 채운 것을 생각하면 디오네 여신에게서 얻은 딸이라고 하는 편이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 메트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중 ‘라인의 황금’에서 신들의 왕 보탄(터펠)이 용으로 변신한 알베리히를 마주한 장면 ©Ken Howard

바그너의 장대한 4부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는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썼지만 그 뼈대는 바이킹의 신 에르다와 독일 신화 ‘니벨룽의 노래’에서 가져왔다. 그런데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여러모로 그리스-로마 신화와 닮았다. 그 이유는 신화가 지닌 근본적인 속성이 비슷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론 고대 로마의 정복사업의 결과 그리스-로마 신화가 유럽 전역에 퍼졌기에 그보다 후에 나온 신화의 체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기준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신(主神) 보탄과 그 아내 프리카는 명백하게 제우스와 헤라에 해당한다. 프리카와 헤라 둘 다 결혼의 여신이고 남편에게 잔소리를 퍼붓지만 극중 존재감은 크지 않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보탄이 거인들을 시켜 지은 발할라 성은 올림포스 산정에 해당한다. 전야(前夜)인 ‘라인의 황금’에 나오는 도너·프로·프라이아는 프리카와 같은 핏줄이다. 도너는 천둥의 신이니 제우스의 속성 하나를 반영하고 있고 싸움을 즐기는 성급함에 있어서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닮았다. 프라이아는 신들을 늙지 않게 만드는 과실의 재배를 담당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름다움의 여신이어서 거인족 형제들에게 갈망의 대상이다.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점에서는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를 닮았고, 젊음을 상징하는 여신이란 점에서는 제우스와 헤라의 딸인 헤베에 해당한다.

헤베는 12신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제우스 곁에서 늘 시중을 드는데도 제우스가 애정을 주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탄이 처제 프라이아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발할라를 지은 대가로 거인 형제에게 주려는 것과 흡사하다. 보탄의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 처리하는 로게는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에 해당한다. 모사꾼이라는 점에서도 닮았다. 거인 형제 파프너와 파졸트는 그리스 신화의 기간테스와 비슷하다. 기간테스는 신화에서 올림포스 신들과 세상의 패권을 놓고 다투다가 패배하는 거인 족으로 짧게 언급되며, 자이언트의 어원이기도 하다.

보탄이 사랑하는 딸 브륀힐데는 아테나와 닮았다. 브륀힐데가 방패와 창을 들고 있는 여전사 발퀴레이고, 아버지의 고민을 들어주는 어른스럽고 영민한 딸이라는 점에서도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막강한 방패를 든 전쟁의 여신이자 학문을 즐기는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의 모습이다. 보탄이 인간 여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지크문트와 지클린데 남매는 쌍둥이란 점에서 제우스가 사랑하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연상케 한다. 아폴론과 아프로디테는 비극의 주인공이라 할 수 없지만 그 모친 레토는 헤라의 박해로 온갖 고생을 한 비운의 여신이다.

글 유형종
발레·오페라·클래식 음악 등 공연 예술 전반에 관한 집필과 해설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무지크바움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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