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음반의 등장, 레이스 레코드의 탄생

황덕호의 JAZZ RECORDING HISTORY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3월 1일 12:00 오전

소수인종 음악에 대한 차별 속에서 굳건히 다져나간 초기 재즈의 값진 기록

소수인종 음악에 대한 차별 속에서 굳건히 다져나간 초기 재즈의 값진 기록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와 포노그래프 실린더를 판매하기 위해 1888년 설립된 컬럼비아 포노그래프 컴퍼니가 소리를 직접 녹음한 음반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01년부터다. 그리고 같은 해 빅터 토킹머신 컴퍼니 역시 음반 녹음·제작·판매를 시작하면서 두 음반사의 오랜 경쟁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두 회사가 음반 제작 판매를 시작한 지 15년 뒤인 1916년, 독일 음반사 오데온의 미국지사를 경영하고 있던 오토 K. E. 하이네만은 자신의 이름을 이니셜로 따서 오케이(Okeh)라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했다. 독일계 미국인이었던 그는 다민족국가인 미국 내에서 소수민족의 음악에 관심을 두었고, 독일·체코·폴란드·스웨덴 및 유대인 이민자들의 음악을 미국 음반업계에서 최초로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수민족 음악에 관한 언급에서 우리는 지난달에 게재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밴드(ODJB)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생각해볼 일이 생겼다. 재즈 연주자 중 다수는 역시 아프리카계 사람들이었는데 역사상 최초의 재즈 녹음은 왜 그들이 아닌 이탈리아계 백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최초의 재즈 연주자로 일컫는 아프리카계의 버디 볼든은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함으로써 이미 1907년에 그의 음악 인생은 불행하게 끝나버렸다. ‘재즈’라는 이름도 생기기 전이던 당시, 음반 제작자들이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웠다. 재즈가 뉴올리언스 혹은 남부 지역 바깥에서 연주되었던 시점은 대략 1910년을 넘어서면서 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재즈의 창시자’라고 부르던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턴은 뉴올리언스를 떠나 1912년부터 3년 동안 시카고에서 연주했다. 그보다 조금 앞선 1911년 말, 몇몇 뉴올리언스 출신 연주자들은 LA에 모여 ‘오리지널 크리올 래그타임 밴드’를 결성했는데, 여기에는 버디 볼든의 대를 잇는다고 평가받던 코넷 주자 프레디 케퍼드가 속해 있었다.

1915년 ‘오리지널 크리올 래그타임 밴드’는 ‘오리지널 크리올 오케스트라’로 개명하고 뉴욕을 포함한 동부 순회 공연에 나섰다. 그리고 이 밴드의 간판은 단연 프레디 케퍼드였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빅터 토킹머신 컴퍼니의 후신 빅터 레코드는 1916년 이 밴드에게 녹음을 제의했다. ODJB보다 일 년 앞서 재즈를 녹음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더욱이 흑인 연주자들의 최초 녹음이 담길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케퍼드는 일상 연주 때도 손수건으로 자기 손을 덮고 코넷을 연주할 만큼 자신의 연주 기교를 다른 사람이 베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던 연주자다. 그는 자신의 연주가 녹음으로 남으면 모두 자신의 즉흥연주를 흉내 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빅터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재즈 녹음은 일 년 뒤 백인 연주자들인 ODJB에게로 돌아갔으며 흑인음악가의 녹음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4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최초의 기회’를 걷어차버린 프레디 케퍼드는 1923년부터 뒤늦게 녹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소수민족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오케이는 1920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일하던 프로듀서 랠프 피어를 영입했다. 그는 과감하게 아프리카계 음악을 녹음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것은 다분히 모험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음악에는 오늘날과는 달리 민족적·인종적으로 두꺼운 장벽이 존재했기에 흑인음악은 흑인들에 의해 구매되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그 시장의 규모에 대해 어떤 음반 제작자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험적으로 시도한 메이미 스미스의 ‘Crazy Blues’가 곧장 10만 장이 팔리자 오케이는 이 시장을 꾸준히 공략하는 전략을 세웠다.

오케이가 1921년 ‘레이스 레코드 시리즈’라는, 흑인음악 별도의 카탈로그를 만들자(아마도 흑인음악을 별도로 취급했던 것은 미국 문화에 만연해 있던 흑백 분리 정책의 영향으로 보인다) 파라마운트(1922), 컬럼비아(1923), 보컬리언(1926), 빅터(1927) 등 기존 음반사들도 레이스 레코드 시리즈를 만들면서 흑인음악 시장에 점차 뛰어들었다. 뉴욕 할렘의 스트라이드 피아노 스타일을 대표하던 제임스 P. 존슨은 1921년 피아노 음악을 전문으로 녹음하다가 흑인 피아노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된 아르토, 흑인음악만을 전문으로 녹음한 블랙 스완과 각각 한 곡씩의 녹음(‘Harlem Strut’ ‘Keep off the Grass’)을 남기고 같은 해 오케이 레코드와 피아노 독주 ‘Carolina Shout’를 녹음했다. 현란한 기교에 싱커페이션을 곁들인 이 즉흥연주들은 재즈 역사상 최초의 피아노 독주 녹음으로 기록되었다.

버디 볼든 밴드에서 트롬본을 연주하던 키드 오리는 1919년 LA로 이주해 그곳에서 흑인음악을 전문으로 녹음하던 선샤인 레코드와 ‘Ory’s Creole Trombone’을 녹음했다. 이 녹음은 최초의 흑인 밴드 녹음으로 기록에 남았다.

하지만 흑인음악 시장의 잠재력은 베시 스미스가 출연하기까지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컬럼비아 레코드는 1923년 프로듀서 프랭크 워커를 기용해 레이스 레코드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블루스 가수 베시의 음반을 발표했다. 그녀의 샤우트 창법을 담은 ‘Downhearted Blues’는 6개월 만에 78만 장이 팔리면서 결국 20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게 되었다. 레이스 레코드는 이미 인종의 장벽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스 레코드는 전체 음악시장과는 늘 별도로 취급되었고, 음악평론가 제리 웩슬러가 1949년 ‘리듬 앤 블루스’라는 본격적인 음악 용어를 만들기까지 인종주의적 태도를 느끼게 하는 이 용어는 무려 30여 년 간 계속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차별 속에서도 소수인종 음악에 대한 개별적인 관심은 재즈라는 음악의 확고한 진지를 가능하게 했다. 재즈는 판매와는 무관하게 초기 그들의 값진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던 것이다.

이 달의 추천 재즈음반

1 메이미 스미스
‘Complete Recorded Works in Chronological Order Vol. 1’
Document DOCD-5357|1920년 2월~1921년 8월 녹음|메이미 스미스(보컬)/윌리 ‘더 라이언’ 스미스(피아노)/레가 오케스트라/재즈 하운즈

2 제임스 P. 존슨 ‘Harlem Stride Piano’
Jazz Archives 111|1921년 8월~1929년 11월 녹음|제임스 P. 존슨(피아노)/제임스 P. 존슨 재즈 보이스/제임스 P. 존슨 하모니 8/제임스 P. 존슨 오케스트라

3 키드 오리 ‘Ory’s Creole Trombone’
ASV AJA 5148|1922년 6월~1944년 4월 녹음|키드 오리(트롬본)/오리 선샤인 오케스트라/킹 올리버와 딕시 싱코페이터스/루이 암스트롱과 핫 파이브/뉴올리언스 원더러스/뉴올리언스 부트블랙스/젤리 롤 모턴과 레드 핫 페퍼스/키드 오리 크리올 재즈밴드

4 베시 스미스 ‘The Complete Recordings Vol. 1’
Columbia Legacy C2K 47091|1923년 2월~1924년 4월 녹음|베시 스미스·클라라 스미스(보컬)/조지 부케·어네스트 엘리어트·돈 레드먼(클라리넷)/로버트 로빈스(바이올린)/클래런스 윌리엄스·플레처 헨더슨·어빙 존스·지미 존스(피아노)/해리 레저·존 그리핀(기타)/버디 크리스천(밴조)

글 황덕호
KBS 1FM ‘재즈 수첩’을 17년 동안 진행하고 있다. ‘평론가’보다는 ‘애호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쓰고, 듣고, 틀고, 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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