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 피아노 독주회 ‘모던 타임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4월 1일 12:00 오전

2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적인 에너지, 기능적 완숙함의 조화

손열음의 음악회는 곧잘 ‘블록버스터’처럼 느껴지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그녀의 최대 장점은 의외로 ‘고민하는 능력’에 있다고 본다. 로맨틱 레퍼토리를 연습하면서도 바로크에서부터의 음악적 뿌리와 아이덴티티를 찾고, 작곡가 고유의 어법을 숙지해 자신이 설정한 플롯으로 소화해내려는 의지도 강하다. 거침없는 테크닉과 선 굵은 표현 속에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소리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면 이 당찬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조금 더 다채로운 색깔로 느껴질 것이다.

가장 폭이 넓고 화려하지만 갖가지 사조와 스타일이 창작과 해석 양쪽에서 범람하던 20세기 초 피아니즘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손열음의 신보 ‘모던 타임스’는 지적 에너지와 그를 담을 수 있는 기능적 완숙함이 겸비된 연주자가 아니고는 시도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는데, 연일 격찬이 쏟아졌던 전국 투어에서도 그 결과는 훌륭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보통의 연주자에겐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채우기 마땅한 아돌프 슐츠 에블러 편곡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시종 맑은 음색과 밀도가 가벼운 음상으로 부담 없이 연주되었다. 편곡이 등장할 당시, 즉 20세기 초의 어마어마하던 비르투오소적 풍모보다는 개운한 뒷맛이 느껴지는 깔끔한 아고긱이 인상적이었다. 단숨에 처리해버린 듯한 첫 곡의 해석은 한없이 복잡한 스케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이날의 프로그램들을 시종 즐거운 분위기로 이끌어나가려는 의지로 비쳤는데, 이어진 라벨의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 역시 장황한 뉘앙스나 현학적 모습을 슬기롭게 다듬어놓은 모양새였다. 후반부 첫 순서였던 거슈윈의 노래 세 곡은 손열음의 전방위적 피아니즘을 살짝 보여주는 자리였다. 그간 카푸스틴을 포함한 재즈 작품에 열정을 보여준 바 있고 효과적인 연주를 위해 특별 지도를 받기도 한 그녀의 즉흥성은 초기 재즈의 춤곡 리듬인 래그타임과 원 스텝 등을 타고 과도하지 않게 드러났다. 단순한 흥겨움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작품들을 음악회장의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진지함을 섞어 연주한 자세도 훌륭했다.

이날의 백미인 스트라빈스키의 모음곡 ‘페트루슈카’는 손열음이 새롭게 엮은 드라마를 지켜보듯 흥미진진했다. 콩쿠르나 콘서트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레퍼토리임에 무색하게, 이날의 해석은 신선한 날것 그대로 프레이징과 그 조합들이 만들어내어 제공하는 특별한 상상력의 세계로 청중을 인도했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 들어 있는 루바토와 극단적인 다이내믹, 세심함으로 짜 맞춰진 페달링에서 나오는, 일렁이듯 자유로운 음상의 유연한 흐름까지 15분 남짓한 시간이 언제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오케스트라 전체를 장악하듯 다양한 뉘앙스를 만들어낸 라벨의 ‘라 발스’ 역시 피날레에 적합한 선택이었다. 근육질이 느껴지는 음향과 기름처럼 매끄러운 음상이 교차되는 악상의 부딪힘이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날 10곡에 달하는 앙코르 무대 역시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연주할수록 힘이 나는 듯한 손열음의 무대 체질과 신청곡을 받아 연주해도 흔들리지 않는 피아니스트로서 기본기는 피아노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경이롭게 느꼈을 법하다. 희귀함과 난해함 등 여러 이유로 무대에서 듣기 어려운 요한 슈트라우스의 ‘트리치 트라치 폴카’(치프라 편곡), 클레망 두세의 ‘쇼피나타’ 등을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특별한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사진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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