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와 시간을 거닐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북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 트론헤임 심포니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장한나. 그녀의 빛나는 순간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장한나는 독자적 행보로 우리에게 늘 놀라움을 안겨줬다. 열한 살 나이로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해 한국인 첼리스트로서 활로를 개척하고, 음대가 아닌 하버드대 철학과에 진학해 고고학에 탐닉하며 작품 해석에 깊이를 더했다. 25세가 되었을 때는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성남 국제 청소년 관현악 페스티벌을 통해 지휘자로 데뷔, 지난 3월에는 북유럽의 명문 악단인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TSO)의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는 낭보를 전해줬다.
이렇게 몇 줄의 글로 건조하게 나열하기에는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녀의 결단과 노력이 너무나 뜨겁기에, 그녀의 삶 속으로 짧은 시간 여행을 떠나보려고 한다. 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나아가던 첼리스트에서, 100여 명의 단원과 함께 겪어내야 하는 ‘시간’, 나눠야 하는 ‘진심’에 대해 고민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어떤 꿈을 꾸며 살아왔을까.

2016년, 현재
장한나는 2017년부터 상임지휘자·예술감독으로 임기를 시작할 TSO를 “오랜 전통을 지닌,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발전을 추구하는 오케스트라”라고 소개한다.
1909년에 설립된 TSO는 노르웨이 왕국 최초의 수도인 트론헤임에 둥지를 틀고 있다. 니다로스 대성당을 중심으로 중세의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도 대학이 밀집해 있어 젊음과 예술의 도시라 불린다. 대니얼 하딩이 20대 초반의 나이로 TSO를 이끌었고(1997~2000),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에이빈 오들란도 TSO 포디엄을 오랫동안 지켰다(2003~2010). 크시슈토프 우르반스키에 이어 바통을 넘겨받을 장한나는 2013/2014시즌부터 이 악단의 상임 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녀는 “리허설에서 단원들과 함께 나눈 것들이 연주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 보람을 느낀다”며 악단과의 호흡을 자랑했다.
2011년 바이에른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을 역임한 장한나는 2013년 카타르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2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년 만에 직책을 내려놓았다. 사임 배경에 대해 영국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장한나가 독일인 행정감독인 쿠르트 마이스터와 불화를 빚었다’고 풀이했지만, 장한나는 “음악적 견해의 차이”라는 간단명료한 이유만 내놓았다. 
그녀가 국제무대에 강한 인상을 남긴 건 2014년 BBC 프롬스 데뷔 무대다. 이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예테보리 심포니·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인디애나 폴리스 심포니·도쿄 심포니 등을 지휘했다. 올해 4월에는 이탈리아에서 산 카를로 극장 오케스트라, 스웨덴에서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과 연주회를 가졌으며, 5월에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에서 북 네덜란드 오케스트라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2007년 5월, 지휘자로서 첫 무대
장한나는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 중국 심양청소년교향악단, 독일 브란덴부르크청소년교향악단 등 각 단체의 단원들이 고루 섞인 연합 청소년관현악단을 지휘하는 것으로 지휘자 데뷔를 치렀다. 무대를 마치고 그녀는 “연주자들보다 조금 앞장서서 전체 흐름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됐다. 또한 표면적인 악상보다는 ‘이런 감정으로’ 혹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라는 조언으로 포인트를 짚어줄 때 소리가 확 달라지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2008년 4월, 포스코 창립 40주년 연주회
가야금 명인 황병기는 장한나의 지휘로 자신이 작곡한 가야금 협주곡 ‘새봄’을 협연하며 깜짝 놀랐다. 리허설에서 장한나가 플루트 연주자에게 ‘공중에 학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같이 연주하라’고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명인은 “작곡가인 나도 생각하지 못한 표현을 짚어내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더불어 “장한나가 다른 지휘자들과 다른 점은 곡에 대한 공부를 엄청나게 한다는 점이다. 한나는 지금도 훌륭하지만, 또래 음악가들보다 훌륭하게 성장할 것”이라며 그녀를 칭찬했다.

2016년 1월,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첫 지휘
“마치 신세계와도 같은 특별한 순간을 맛봤다.” 그녀는 오슬로 필하모닉과의 첫 연주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100명 가까이 되는 단원들과 며칠 동안 리허설을 하며 서로 알아가고, 한마음으로 음악을 완성하기까지 그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하며 행복감을 표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로 ‘시간’을 꼽는다. “지휘자가 살길은 정성, 노력, 열정, 그리고 꾸준한 연구뿐”이라고 말하며,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오케스트라 앞에 서고, 그들과의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 그녀는 솔리스트 시절보다 자신의 시간을 꼼꼼히 관리하고 있다.

천재 소녀가 음악가로 성장하기까지

1987년, “나는 재클린 뒤 프레가 될 거예요.”
여섯 살 꼬마 장한나는 재클린 뒤 프레가 검은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LD를 보고 푹 빠져 “나도 검은 드레스를 입을래요”하며 졸라댔다. 그녀는 ‘객석’ 1998년 12월호 ‘연주자가 쓰는 나의 음악 나의 예술’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개구쟁이 시절, 뒤 프레의 연주를 듣고 유려한 첼로 선율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의 연주를 통해 첼로가 단순히 연습을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감동시키는 매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걸 알게 됐다. 나도 뒤프레처럼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첼로와 아주 빨리 친해졌다.”


▲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 1위 후

1999년, 로린 마젤과의 추억
지휘자 로린 마젤은 장한나에게 수시로 전화해 “집에 놀러오라”고 말할 만큼 그녀를 끔찍이 아꼈다. 1999년 4월, 뮌헨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장한나는 마젤의 지휘로, 마젤이 작곡한 ‘내레이터, 첼로, 오케스트라를 위한 셸 실버스타인의 이야기’를 연주했다. 그녀는 “작곡가랑 연주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어요. 이것저것 요구가 많으니까요!”라고 말했지만 마젤은 “너, 말 안 해도 내 생각을 그냥 다 아는구나! 어떻게 알았니?”라며 그녀의 연주를 만족해했다.

1997년, 나의 스승들
장한나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승으로 미샤 마이스키·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아이작 스턴을 꼽는다. ‘객석’ 1997년 10월호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일 처음으로 큰 가르침을 받은 분은 미샤 마이스키 선생님이에요. 제가 아홉 살 때 선생님은 그러셨죠. 첼로는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라고요. 스턴 할아버지에게는 실내악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어요. 다른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또 로스 할아버지는 음악가로서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음악 안 하는 친구도 많이 만나고, 연주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연주만 잘하는 바보’가 되지 말라고 하셨어요.”


▲ 2000년 음반 ‘백조(EMI Classics)’를 발매한 그녀

2001년, 하버드에서의 대학생활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또 내 목소리(첼로)에 힘을 싣기 위해 철학을 택했다.”
장한나는 하버드대 철학과 진학 동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철학과 문학을 통해 한 시대의 사상 자체를 통찰해 자연스럽게 음악에 묻어나게 하겠다는 의지다. 2년 간 바쁜 연주 일정과 학과 공부를 병행한 그녀는 “인간 장한나로서 많이 변했다. 전에는 음악가로서만 세상을 바라봤는데 훨씬 넓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버드는 나에게 심각한 취미생활이다. 이해하고, 이해할 때마다 느껴지는 보람과 즐거움이 정말 좋다”고 전했다.


▲ 2009년 지휘자로서의 시작

2011년 9월, 후회하지 않는 법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한 장한나는 “단 한 번도 좌절한 적이 없다, 희생이 아닌 선택이었으니.”라고 말했다. 모든 건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 그녀는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발전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가능성은 점점 더 열릴 테니까, 한계를 두지 마세요. 나 자신을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사명, 그리고 가치관

2011년 8월, 예술가로서 책임에 대해 말하다
장한나는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천재상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을 누구보다 맹렬히 지키는 동시에 본인의 이기를 잊어버릴 수 있는 드문 존재”라고 정의했다. 시대에 묶이지 않고, 동시에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뚜렷한 목소리를 지니고, 나아가 사회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변화를 일으킬 만큼 살아있는 힘, 생기가 가득한 살아있는 감동이 음악의 본질이다.”


▲ 2014년 BBC 프롬스 무대에 서다

2016년, 다시 현재
장한나의 일상을 궁금해할 독자를 위해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지, 음악을 하지 않는 시간에 무얼 하는지 물었지만 “다른 일을 할 시간이 거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저 지휘를 할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지휘자에게만 주어지는 책임에 충실하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음악 세계를 만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에 진심 어린 행복감이 느껴졌다.
현재 그녀는 TSO에서의 임기 시작을 앞두고 첫 시즌 및 향후 시즌을 계획하느라 무척 바쁘다. 노르웨이의 경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편이다. TSO도 ‘프로그램 위원회(Program Committee)’ ‘예술 위원회(Artistic Committee)’ 등이 조직되어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비전과 성장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장한나는 “리더가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시스템보다는 행정부와 단원들이 함께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오케스트라라는 거대 조직의 발전에 훨씬 긍정적이고 효과적”이라며 TSO와의 미래를 기대했다. 그녀는 지휘자로서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가짐으로 ‘진심’을 꼽았다. 이는 음악을 향한 진심이기도, 단원들을 향한 진심이기도 하다.
“지휘자는 말이 아닌 음악으로 소통하기에 나만의 해석과 나만의 표현 방식을 정확히 세워야 100명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그리고 미래
장한나는 말뫼 심포니와의 스웨덴 투어,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새러소타 심포니·세인트루이스 심포니·노르셰핑 심포니·북 네덜란드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앞두고 있다.
그녀의 시간은 전보다 조금 느리게, 그러나 촘촘히 흐르고 있다. 첼리스트로서 해외 곳곳에서 연주 활동을 할 때에는 홀로 한 국가에 2~3일을 머물고, 한번 호흡을 맞춘 오케스트라와는 2년쯤 지난 후에야 다시 만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휘자로서는 최소 일주일을 한 곳에 머무르며 리허설 및 연주를 하고, 마음이 잘 통한 오케스트라와는 해마다 연주를 갖거나, 몇 달에 걸친 투어 공연을 갖기도 한다. 그녀는 여유를 두고 많은 이와 마음을 나누며 함께 음악을 완성해가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천천히, 차근차근 협력하면서,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즐거운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다.”
장한나의 모든 시간과 흔적이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라며 이쯤에서 그녀와의 여행을 마친다.

사진 HarrisonParrott·월간객석 DB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