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글래스의 필름 오페라‘미녀와 야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3월 22·23일
LG아트센터

부분이자 전체로서의 음악

양수겸장, 수륙양용. 최근 우연치 않게 많이 접했던 필립 글래스의 음악에서 떠오른 두 단어다. 이는 장기판에서의 두 나라, 즉 두 개의 상반된 면인 ‘물과 육지’를 지칭한다. 나아가 글래스의 음악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또 다른 색채와 의미도 무한히 찾을 수 있다. 그의 음악은 듣는 이들의 심리 상태에 따라 그 모습이 끝없이 변하는 연체동물 같다.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 슬립스(truman sleeps)’나 영화 ‘디 아워스’의 ‘추징 라이프(choosing life)’ 등을 들으며 그의 음악을 그저 그런 효과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감상자들은 ‘글래스웍스’에서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반복 프레이징에 놀라게 마련이며, 소싯적 작품인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접하면 당혹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래스의 음악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미국적 실용주의’를 그대로 담고 있다. 아울러 오랫동안 ‘미니멀리즘’이라 불리는 그의 수법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사실 그 자신은 그저 ‘반복 구조를 지닌 작품을 쓰는 작곡가’라고 불리길 원한다지만, 얼마 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네 악장’을 한국 초연했을 때 관객들이 보여준 열띤 반응은 남달랐다. 단순한 듯한 그의 악보는 예상을 넘는 매력으로 가득차 있었다.

필름 오페라라는 특별한 장르의 작품 ‘미녀와 야수’를 감상한 후에도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오묘함을 느꼈다. 객관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미리 영화 원본을 보길 잘한 듯하지만, 그래서인지 생각할 거리는 더 많이 늘었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은 아니지만 참 괜찮은 복합예술을 관람했다는 만족감은 충분했다. 영화는 시와 소설, 영상과 음악을 모두 아우르는 장 콕토 식의 현학적 느낌이 분명했지만, 끝까지 일관성을 갖춘 글래스의 음악은 거기에 새로운 통일성을 덧입혔다.

영화 초반 미녀의 아버지가 우연하고 환상적인 계기로 야수의 성에 들어서는 장면이 제일 인상 깊었다. 흑백 화면임에도 분위기 전환과 상상력의 확대가 느껴지는 부분인데, 한정된 음량과 화성 구조 내에서도 섬세한 뉘앙스를 정확히 포착한 작곡 솜씨가 놀라웠다. 이미 완성된 영화의 불규칙한 타이밍에 맞춰, 나아가 가사까지 동반하는 음악을 붙여내는 과정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그를 오차 없이 연주해낸 필립 글래스 앙상블의 노련함도 오래 칭송받을 만하다. 글래스 음악의 수호자라고 불릴 만한 마이클 리스먼의 지휘는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완벽했고, 현악기의 역할을 하는 두 키보드 주자는 색소폰 등 관악기의 울림이 생경하지 않도록 적절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작품의 음반 녹음에도 참여했던 야수 역의 그레고리 펀하겐은 초연 때보다 더욱 깊어진 울림과 표현력을 들려주었으며, 아름다운 음빛깔로 미녀를 연기한 하이 팅 친과 아버지 역의 피터 스튜어트 역시 완성도 높은 연주였다.

필립 글래스는 영화의 부수인 동시에 전체를 지배하는 요소를 창조해냈다. 1940년대 만들어진 세련된 아방가르드 영화에 언어가 다른 미국 작곡가가 만든 50년 후의 음악을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그 발상보다는 해보자는 용기와 뚝심에 더 큰 점수를 주어야 할 듯하다. 관객들은 콕토가 곳곳에 심어놓은 웃음 코드에 즐거워하는 동시에 그 효과를 글래스의 음악이 배가시킨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받아들였다. 마치 멋진 여행지에 도착해 먼저 그곳의 향기를 기억하게 되고, 파티장이나 레스토랑의 화려한 조명 빛을 오래도록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글래스의 작품은 탁월한 영화 속에 자신만의 인장을 분명한 모습으로 새기고 있었다.

사진 LG아트센터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