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송현민의 CULTURE COD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6월 1일 12:00 오전

거장의 탄생. 그 뒤에는 스승과 제자의 잔혹사가 담겨 있다

스승 | ‌본래 일찍부터 도를 깨달은 자, 덕업이 있는 자,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
제자 |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 박송희. 지난 5월 6일 남산골한옥마을 내에 있는 민씨 가옥 안채에서 노래하던 노(老)명창은 90세에 이른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꼿꼿한 소리로 한옥을 가득 채웠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 매번 스승 박녹주 명창과의 추억을 들려주었는데, 이제는 대가가 되고도 남았을 나이건만, 어린 시절 스승의 이야기를 할 때면 영락없는 소녀였다. 아직도 그녀의 스승이 살아 있다면 90세의 몸을 이끌고 스승에게 매일 수업을 받을 것 같았다. 어떤 공연이든 초입에 단가 ‘인생백년’을 선보이는 박송희 명창. 1979년, 운명을 앞둔 명창 박녹주가 자신이 살아온 영욕의 세월을 뒤돌아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절절히 노래한 것이 이 단가다.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소통하며, 한옥에 내리는 고즈넉한 저녁에 만나고 있었다.

한줄기 빛이거나, 저승사자이거나

모든 것이 무서운 속도로 바뀌어가는 시대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의 수업 광경은 훈장이 “하늘 천 따 지”라고 읊으면 제자들은 ‘입’으로 따라 부르고, ‘손’으로 써가며 외우는 전근대적 교육방식이 여전히 건재하다. 선생이 내는 소리가 곧 교본이자 교칙이다. 선생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음들을 후학이 잘 따라오는지 걱정하느라 예민하게 귀를 세운다. 제자는 한 치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느라 분주하다. 레슨 시간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러다 제자가 삐끗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레슨은 일대일인 경우가 많기에 제자는 울어도 혼자다. 구해줄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러면서 학생은 음악의 꽃을 피울 영양분을 스승에게서 빨아들인다.

많은 음악가를 인터뷰하면서 어리다는 이유로 선생이 실수를 눈감아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반 갈라미언은 정경화, 김영욱, 강동석, 김남윤 등을 길러낸 스승이다. 교수법이 어찌나 스파르타식인지 그의 레슨실은 ‘지옥의 교실’로 불렸다고 한다.

김영욱이 갈라미언에게 배울 때 이야기다. 김영욱의 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김승현 박사로, 김영욱은 부와 명예를 쥔 명가의 6남매 중 사랑스러운 막내였다. 그런데 이러한 ‘명문가 도련님’의 배경은 지옥의 스승 앞에서 아무 소용없었단다. 갈라미언은 김영욱이 레슨을 받고 돌아간 뒤에도 바로 전화를 걸어 “지금 바이올린을 하고 있느냐?”는 독촉을 자주 했다. 크리스마스 날에는 김영욱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오라고 했다. 어린 영욱은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아마도 선생님께서 값진 선물이라고 주시려는가 보다’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그의 호텔 방으로 달려갔더니 호통이 떨어졌다고 한다. “어서 바이올린을 켜!” 이것이야말로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이 되는 셈인데, 김영욱은 스승의 열의에 감복하여 어느 날보다 더 열띤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 김남윤 원장은 ‘한국의 갈라미언’으로 통한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길러내며, 세계 바이올린계의 역사를 바꾸고 있는 그녀의 레슨은 혹독하고 엄하기로 유명하다. 갈라미언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녀 또한 외친다. ‘연습 가라사대!’ 연습을 안 하고 레슨실에 들어오는 학생에게는 딱 한 마디만 할 뿐이다. “나가!”

음악가들이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보다도 무서운 단 한 명의 ‘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테크닉에 물과 비료를 주고, 배포를 키운다. 그러한 스승과의 첫 만남은 어둠 속 한줄기 ‘빛’이었거나 ‘저승사자’와의 만남, 둘 중 하나다. 대성한 음악가들은 스승의 은혜를 기억하며 인터뷰 현장에서 종종 눈물을 흘리지만, 사실 스승과의 첫 만남은 ‘잔혹사의 서막을 여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의 기억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첼리스트 양성원은 인디애나 음대에 재직하던 첼리스트 야노스 스타커의 조교를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스타커의 조교’라는 수식어가 명성과 직결될 정도로, 스타커는 세기가 낳은 첼리스트였다. 양성원은 몇 십 년 후 스승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17세 때 스위스 로잔에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1악장을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연주했습니다. 선생님은 제 연주를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리며 ‘브라보!’를 외치셨어요. 그러고는 제 옆을 지나쳐 피아니스트를 안아주시면서 ‘이렇게 자기 맘대로 하는 첼리스트를 반주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실력이네!’라고 얘기하셨어요.”

후에 이 이야기를 들은 스타커는 양성원에게 “그랬나요? 사람들이 예전엔 내가 좀 고약했다고 하더군요”라며 웃었다.


▲ 영화 ‘마지막 4중주(A Late Quartet, 2012)’

사제의 경쟁과 상생

스승은 어떤 지식을 ‘알고 있는 자’다. 제자는 ‘모르고 있는 자’이거나 스승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되는 자’다. 이러한 선후(先後)의 인연을 맺으며 사람은 성장한다. 하지만 오늘날엔 다르다. 지식의 유입이 빨라지고, 그 경로 또한 다양해진 시대에 사방에 널려 있는 정보가 스승이며, 손가락 ‘터치’ 하나로 스승을 불러낼 수도 있다. 스승이란 존재는 흔해졌고, 예전만큼 귀하지도 않다.

제자는 스승의 작품이다. 인간은 태어나 누구든지 제자의 과정을 거친다. 이때 스승은 제자가 지닌 후천적 재능을 믿고 그것을 잘 세공하여 희미한 앞길을 뚜렷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런 사람을 찾아 부모는 오늘도 ‘삼천지교’한다. 물론 맹모삼천지교의 부작용이 일어나 ‘맹목’적인 ‘삼천지교’가 될 때도 있지만 말이다.

가끔 씁쓸한 풍경도 펼쳐진다. 제 품에 안고 있을 때, 엉뚱한 짓 좀 한다고 패대기쳐버린 탕아 같은 제자가 어쩌다 성공이라도 하면 “그 녀석이… 내가 가르칠 때, 자기 세계가 좀 있었지”라며 마치 자신이 고슴도치처럼 제자를 품었던 스승인 척을 하는 이도 많다. 콩쿠르에서의 우승은 곧 스승을 빛나게 하기에 이러한 풍조는 앞으로 더욱더 짙어질 것 같다.

스승이 무대를 계속 지키고 제자가 쑥쑥 성장하는 한, 사제의 수직적 관계는 언젠가 수평적 관계가 된다. 백발의 선생과 싱그러운 머릿결의 스승이 나란히 무대에 서는 장면은 보는 이에게 음악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 ‘마지막 4중주’는 첼리스트 피터와 그의 제자뻘인 3명의 단원이 결성한 푸가 현악 4중주단의 얘기를 담고 있다. 피터의 파킨슨병을 계기로 단원 간에 불화가 생기지만, 피터는 그들에게 앞으로도 이 현악 4중주단을 이끌고 나갈 의무와 깨우침을 주고 마지막 무대를 내려온다. 영화에서처럼, 가르치는 자는 피터와 같은 스승과 선배가 되기를 꿈꾸고, 배우는 자는 그러한 스승을 갈구하며 인생과 예술의 길을 걸어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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