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강화 고사소리’와 ‘창부타령’에 담긴 간절한 마음

해금 연주자 꽃별의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7월 1일 12:00 오전

내비게이션을 따라 들어선 길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간신히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에 무척 가팔랐다. 어쩌지… 우물쭈물하는 사이, 길은 비밀의 숲으로 이어졌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그 몽롱하고 아련한, 신비로움이 가득한 숲으로!

내비게이션을 따라 들어선 길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간신히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에 무척 가팔랐다.
어쩌지… 우물쭈물하는 사이, 길은 비밀의 숲으로 이어졌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그 몽롱하고 아련한, 신비로움이 가득한 숲으로!

강화도의 여름

강화도는 맹렬하게 푸르렀다. 산은 이미 빽빽하게 몸이 부풀었고, 산 너머 바다는 굽이치며 넘실대고 있었다. 산과 바다로 쏟아지는 햇볕은 여름 그 자체였다. 초지대교를 건너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초지진이었다. 고등학교 때 국사 책에서 보던 초지진, 덕진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의 아픈 역사와 전쟁을 견뎌낸 장소가 어찌나 작은지, 대체 이 작은 곳에서 나라를 어떻게 지켰을까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곽은 완전히 소실된 걸 복원한 것이었지만, 성곽 입구 반대편의 소나무는 전쟁에 맞은 포탄 자국을 품고도 꿋꿋하게 서 있었다.

초지진에서 덕진진은 5분 거리에 있었다. 강화도는 해안을 따라 53개의 돈대가 쭉 늘어서 있다. 이 작은 섬이 얼마나 많은 침략을 견디고 막아내며 살아왔는지 실감했다. 덕진진에서 바라보는 해협은, 바다보다는 작은 강처럼 보였다. 저렇게 얕아 보이는 해협을 건너지 못하게 막고, 또 뚫으며 치열했을 먼 옛날의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근처에는 논이 많았다. 벼를 총총히 심어놓은 걸 보면서 천천히 차를 몰았다. 길에 핀 노란 금계국이 차창에 스치며 흔들렸다. 수많은 희생을 앞세운 이 평화로운 땅을, 감사히 한껏 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성문 오른쪽 소나무 산책길이 아름답다. 자그마하게 언덕을 이루면서 펼쳐진 소나무 숲은 적당히 깊어 위축되지 않아 좋았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소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시원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서 여름 나무의 싱싱하고도 비릿한 냄새가 났다. 광성보 끝까지 걸어가면 나오는 손돌목에는 전설이 있었다.

고려 시대의 왕이 피난을 위해 손돌이라는 뱃사공에 의지하여 이곳을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물살이 위태롭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왕이 손돌을 의심하여 죽이라 명했다. 손돌은 죽기 전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손돌의 말대로 하여 안전하게 이곳을 지난 왕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손돌의 넋을 위로하며 장사를 지냈다.

표지판을 읽고 있자니 속이 부글거려 애꿎은 돌부리만 툭툭 찼다. 땡볕 아래서 흙탕물같이 흘러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는 역사 속 어디쯤에 서 있는 건지 가늠해봤다. 바다 쪽으로 비죽이 튀어나온 돈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너무나 느긋해, 여기서 적을 바라봤을 손돌이나 어린 군사의 마음은 얼마나 두렵고도 비장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강화 고사소리로 마음을 달래다

유지숙 명창의 강화 고사소리가 생각난 건 그래서일까. 나는 비나리나 고사소리 액맥이소리를 좋아한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비는 마음’이 좋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엄청난 힘을 지녔고 원대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약하고 고독하다. 그래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고, 자신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을 이루기 위해 치성을 드리지 않는가. 종교적인 것을 떠나 무언가를 비는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간절함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유지숙 명창은 서도소리를 한다. 서도소리는 황해도 지방의 소리다. 굵직하게 떠는 음이 특징인데, 남도의 굵직함과는 전혀 다르다. 먼저 소리를 치켜든다. 그리고 그 소리를 흔드는데, 나뭇가지를 꺾을 듯 격렬하다. 목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오지, 싶을 만큼 사정없이 흔든다. 그런데 듣다 보면 신기하다. 왠지 모를 유머 감각이 느껴진다. 쓰는 목 자체가 그렇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선선하고, 빈틈없이 조여오다가도 단번에 허물어진다. 부드럽고 맑은 소리로 감싸주다가도 어딘가 몸속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강력함이 있다.

원래 고사소리라는 것이 비나리나 액맥이소리와 마찬가지다. 좋은 일을 축하하거나, 집안의 번영과 자손들의 부귀영화를 비는 축원의 내용이다. 그래서일까? 가사의 모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들어도, 들을수록 마음이 편안하고 느긋해진다. 끊임없이 좋은 말들을 쏟아부어 주는 통에 뭉클함마저 느껴진다. 강화가 고향이라는 유지숙 명창의 강화 고사소리로 53개의 돈대에 서 있었을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바닷길을 따라 섬을 돌았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햇볕을 받으며 빛나는 바다는 아무런 걱정 없이 잔잔했다. 멀리 섬들도 해무 속에서 고요했다. 작은 섬이란 본래 그런 것인지, 해변을 벗어나면 금세 경사를 만들며 산으로 이어졌다. 마니산을 향하다 조금 길을 잘못 들었는데, 그 잘못 들어간 산길이 예쁜 동화 속 같았다. 푸르고 싱그럽고 명랑했다. 숲에 사는 작은 생명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이 애틋하고, 즐거운 광경이었다.

마니산 입구에는 ‘우주에서 보면 가장 강력한 기운이 뻗어 나오는 곳이 있는데 그게 바로 마니산이다’라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진위는 모르나, 영험하고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없었다. 우아하기 이를 데 없이 피어 있는 산딸나무 꽃을 보며 걷는 것은 참으로 황홀했다. 산 아래에는 인삼막걸리와 감자전, 국수 등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와 파라솔을 내놓고 나무 그늘에 앉아, 사람들은 세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인삼막걸리는 향이 좋았다. 마른 목에 막걸리를 들이켜니 등줄기까지 시원했다. 산딸나무 향기와 소나무 냄새가 풍기던 숲길에는 감자전 부치는 냄새와 인삼막걸리 냄새가 섞여들었다. 한적한 숲이나 옛 자취가 묻어 있는 공간을 다니다 보면, 그 무한하고 아득한 느낌에 마음이 움직이고 평화로워진다. 하지만 그 무한한 시간에서 다시 유한의 삶과도 같은 나의 시간으로 돌아올 때 느끼는 그 안도감과 복닥거림 역시 일종의 평화로움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옛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

엄마를 부르며 우는 아이가 있었다. 조용하던 나무 터널 같은 길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그 아이의 울음에는 경계가 없었다. 산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해 몽롱하던 기분이 물러가고, 나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창부타령에 담긴 웃어버리는 마음

태어난 지 다섯 달이 된 조카가 있다. 눈부시게 웃고, 목청이 좋다. 그 좋은 목청으로 울기 시작하면 집이 떠나갈 듯하다. 어느 날 그렇게 우는 아기를 달래며 무심코 내 입에서 튀어나온 노래는 태평가였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바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무엇보다 내 입에서 경기민요 가락이 나왔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고백하자면 나는 경기민요를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중계하는 씨름판에서나 봤고, 그마저 채널을 돌리게 하는 이유였다. 높이 지르는 특유의 비음과 간드러지는 표현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남도민요나 판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슬픔이나 묵직한 정서를 경기민요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 음악을 하면서도 가장 낯설고, 마음을 주지 못하던 장르가 경기민요였다. 그런데 2년 전쯤, 방송에서 전태용 명창의 창부타령을 들었다. 아, 그때 그 기분이란! 말하자면 완전히 새로운 것을 접하는 기분이었다.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창법, 독특한 말 붙임, 게다가 음들을 떨어뜨리거나 질러 올리는 방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아직 선율이 남아 있음에도 그냥 무심히 버리기도 하고, 조를 바꾸는 것이 아닌데도 완전히 다른 조처럼 부르기도 했다. 가사들을 툭툭 던지듯이 내뱉고, 옥타브마저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이게 무슨 노래인가 싶었다. 그날 전태용 명창의 소리를 하루 종일 들었다. 난생 처음 듣는 창부타령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소리였다.

우연히 길을 갈 적에 이상한 새가 울음을 운다
무슨 새가 울랴마는 적벽화전이 비운이라
하야구구 진터를 보고 설리(서러웁게) 통곡허는 모양
사람에 인정치고는 차마 어찌 볼 수가 있으랴
얼씨구 절씨구 절사자(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백구야 나질 마라 너 잡을 내 안 간다(아니다)
성상이 버리시 매 너를 쫓아 여기 왔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들어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가 요만 허면 넉넉할 거냐
일촌간장 맺은 설움 부모님 생각뿐이로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전태용 명창의 창부타령은 자유롭다. 여러 명창이 민요를 부르지만, 이처럼 ‘제멋대로’ 부르지는 않는다. 본래 우리 음악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구전심수로 전하면서 스승이 그날 그날 다르게 불러주면 그것을 체득해 또 자기 식대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 우리 음악의 생명력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악보화되었고, 음원으로 남아 있는 명창들의 소리를 그대로 본뜨려 애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토양이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식으로 배웠다. 하지만 전태용 명창의 소리는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날것의 소리다. 가사의 내용에 따라 감정과 선율이 급변한다. 가파르면서도 조급하지 않고, 곤두박질칠 때는 오히려 감칠맛이 난다. 꾸밈없는 데서 오는 미묘함이 듣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위의 가사는 전태용 명창이 부른 창부타령의 일부인데, 특히 ‘우연히 길을 갈 적에’ 다음에 한숨을 쉬는 부분이 참 좋다. 좋다기보다 정말 특별하다.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꼭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수많은 굴곡의 역사에서 결국 나라를 일으킨 것은 위정자가 아니라 민초였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화에서 마주한 것은 그런 민초들의 삶이었다. 그들을 달래고 울리고 웃게 한 노래가 민요였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저 구부러진 소나무 밑동이나, 햇볕이 떨어지는 포대 앞에 앉아 노래를 불렀겠지. 온갖 내용의 가사 끝에 ‘얼씨구’를 외치고,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며 웃어버리는 그 마음을 닮아야겠다. 결국 스러지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을 더욱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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