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천

즐거운 청춘의 나날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8월 1일 12:00 오전

세계적인 콩쿠르 우승 후 주목받는 연주자가 된 청년과의 유쾌한 인터뷰


▲ ⓒSophie Zhai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전도서 11장 9절 중에서)

2000년 전 성경도 청년에게 즐거이 살 것을 권한다. 밝고 건강한 즐거움은 젊은이만의 특권이리라. 20대 청춘의 젊은 날들을 유쾌하게 채워가는 레이 천은 뉴욕의 애플 스토어에서 연주하고, 프랑스 혁명 기념일 행사에 초청되어 에펠탑 앞 야외무대에서 공연하며, 조르지오 아르마니 재단의 후원을 받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팬을 거느린 그의 행보는 흡사 중화권의 유명 영화배우 같기도 하다. 물론 그의 수려한 외모와 세련된 애티튜드도 큰 몫을 담당한다.

동시에 그는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2008)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009)에서 우승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메뉴인 콩쿠르의 심사를 맡았던 막심 벤게로프는 “레이 천은 젊은이 특유의 아름다운 톤과 생명력, 그리고 반짝임을 지닌 순수한 음악가임을 증명해낸다. 그는 ‘진정으로 음악적인’ 해석이 담긴 스킬을 가졌다”고 평했다. 뛰어난 기교와 안정적인 해석이 푸르른 젊은 시절에 꽃망울을 터뜨린 셈이다.

페이스북에 ‘셀카’ 올리기를 좋아하는 철없는 남동생 같다가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 함께 모차르트 음반을 발매하면서 대중의 예상을 깨뜨리는 레이 천은, 팬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로서 다양한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는 영리한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인다. 다가올 내한 공연 ‘요아힘 프로젝트’에서도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매개로 19세기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과 레이 천 자신을 연결시킴으로써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 계보의 연장선상에 위치할 수 있다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국가와 장르 모두를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으로 바쁜 이 ‘스타’는 자신의 즐거운 삶을 마냥 혼자서만 누리지 않는다. 그의 일상이 페이스북을 통해 수만 명의 팬에게 공유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음악교육 후원을 위한 모금 프로젝트를 열성적으로 홍보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그의 건강한 열정과 포부를 느낄 수 있다.

내한을 앞둔 레이 천과 이메일로 만났다. 페이스북을 통해 익히 봐온 그의 유쾌한 말투가 낯설지 않았다.

19세기 요아힘과 21세기 레이 천을 잇는 바이올린협주곡

작년 4월에 이어 일 년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른다.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한국 관객들이다. 그들의 젊고 쿨하고 ‘힙’(hip)한 느낌에 매료됐다. 한국이야말로 클래식 음악 관객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내한 공연의 제목은 ‘요아힘 프로젝트’다.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악기와 인연이 있는 작품들을 연주한다고 들었다.

현재 내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1715년산 ‘요아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19세기 헝가리의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1831~ 1907)이 바로 이 바이올린을 사용했기에 특별히 ‘요아힘’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요아힘은 슈만·멘델스존·브람스·브루흐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과 친밀한 사이였다. 이번에 연주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요아힘에게 헌정된 곡으로, 1879년 요아힘이 초연했으며 작곡 과정에도 그의 도움이 있었다고 한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역시 요아힘의 조언을 받아 작품을 수정해 1868년 그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두 곡 모두 요아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곡들이다. 나는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열한 살에 처음 배웠다. 어려운 패시지가 많은 데다 풀사이즈 바이올린으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당시에는 꽤나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흐의 작품을 사랑한다. 브람스 협주곡은 거처를 미국으로 옮긴 후 배운 작품인데, 처음 연주했을 때 느꼈던 그 엄청난 성취감을 잊을 수 없다.

수백 년 전 요아힘이 사용하던 악기로 21세기에 이 곡들을 연주하는 느낌이 남다를 듯한데.

요아힘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이 협주곡들을 연주하는 것은 그가 남긴 유산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와도 같다. 요아힘은 브람스와 브루흐의 협주곡을 매우 훌륭히 여겼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4개의 위대한 독일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고 한다.
“가장 위대하고 강인한 곡은 베토벤 협주곡이고, 브람스의 작품은 진지함에 있어 베토벤의 곡과 비등하다. 가장 풍성하고 유혹적인 곡은 브루흐의 협주곡이다. 그러나 가장 내밀한, 마음속 보석 같은 곡은 멘델스존의 작품이다.”

2014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 함께한 모차르트 음반 이후 아직 새 앨범 소식이 없다. 신보를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 많지 않나?

사실 요즘 전통적인 CD보다는 생중계 영상이나 캠페인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내 노트북에는 이제 CD롬도 없고 모든 것은 디지털화되고 있다. ‘물질’로 존재하는 몇몇은 그저 특별한 기념품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지금 협주곡을 녹음한다고 해도, 5년 혹은 10년 안에 더 나은 연주를 보여줄 수 있을지 없을지 누가 알겠는가?(웃음) 어쨌든, 난 아직 어리다!

청춘을 즐기는 꿈 많은 연주자


▲ ⓒSophie Zhai

대중 앞에선 당신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거침없다. 고독한 음악가보다는 낙천적인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본인의 원래 성격에 따른 자연스러운 모습인가? 일각에는 자신의 태도를 연출하는 아티스트들도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유명해지기 전과 다름이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외식도 몇 번 못했고 패션도 엉망이었다. 물론 최근 몇 년 간 나를 둘러싼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과거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음악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진실함을 잃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정한 목적과 의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작품 속의 ‘진짜 나’는 사라질 테고, 연주자에게 그것은 ‘끝’을 의미한다. 아티스트에게 자신을 향한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믿게 되니까.

필라델피아에 사는 20대 남자 레이 천의 일상이 궁금하다. 음악 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

스카이다이빙, 페인트볼 게임, 아시아에서 몇 년 살기 등, 정말 해보고 싶은데 아직 시도하지 못한 것이 많다. 기회가 되면 꼭 이루고 싶다. 여러 나라를 돌며 공연을 하는데, 세계 곳곳에 있는 친구들 덕분에 연주 여행조차 일처럼 여겨지기보다는 즐겁게 느껴진다. 스카이프와 페이스북으로 오랜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이 일상의 낙이다. 수많은 메시징 앱 덕에 세상은 더욱 가깝고 친밀해지는 것 같다. 이 모든 테크놀로지가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몇 달 전 당신의 페이스북 팔로어가 10만 명을 돌파했다. 비디오 게임을 흉내 낸 바이올린 대결 영상, 악기를 들고 총싸움을 하는 영상 등 당신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콘텐츠들은 가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웃긴다. 소셜 미디어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소셜 미디어는 이제 사람들 간의 연락을 위한 극도로 효율적인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는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의 소통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내가 사는 도시에 연주자가 올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려야 했지만, 이젠 다르다. 나는 지구 곳곳에 있는 내 관객들에게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바로 알려줄 수 있다. 음악은 사람 간의 소통에 관한 것이므로, 친근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 노력할수록 더욱 좋은 음악이 탄생한다고 믿는다.

요즘 ‘음악의 영웅들(Musical Heroes)’ 후원 프로젝트에 열정을 쏟고 있다. 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어린 친구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음악의 힘’을 믿어왔다.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책임감과 원칙, 시간 관리 등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 몇 년 동안 수많은 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알려주는 자리를 가졌지만 스케줄이 너무 바쁜 탓에 늘 한계를 느끼곤 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이미 많다는 것이다. ‘음악의 영웅들’이라는 콘셉트는 거기서 시작됐다. 나는 이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음악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위해 모금 활동을 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 필라델피아에 사는 첫 번째 ‘영웅’을 위한 모금액이 1만5000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꽤 좋은 출발 아닌가? 이러한 움직임이 더 많은 ‘음악의 영웅들’에게 영감을 줘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레이 천은 지금 중요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아시아계 선배인 요요 마와 랑랑처럼 롱런하는 스타 연주자로 안착하느냐, 혹은 잠시 반짝였던 젊은 연주자로만 기억되고 이내 사라지느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희망적인 것은 그가 음악적 재능과 건강한 열정을 가졌고, 동시대 대중과 같은 템포로 호흡하는 동시에 예술적 진지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이 천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사진 마스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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