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첫 LP가 등장하자 재즈 음반 제작자들은 과거의 녹음들을 찾기 위해 먼지로 뒤덮인 그들의 자료실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78회전 음반과는 이미 현격하게 차이가 났던 과거의 재즈 실황 연주를 비로소 음반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컬럼비아 레코드는 LP를 위한 첫 재즈 녹음인 듀크 엘링턴 앨범을 발매하기에 앞서 베니 굿맨의 그 유명하던 1938년 카네기홀 실황을 1950년에 LP로 발표했다. 긴 즉흥연주 때문에 78회전 음반으로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 녹음은 LP의 등장과 더불어 비로소 빛을 보았고, 재즈가 최초로 미국 음악계의 중심부에 등장했던 이 역사적인 공연을 담은 더블 LP는 판매 100만 장을 돌파했다.
1944년 ‘재즈 앳 더 필하모닉’(JATP)이라는 음악회를 시작으로 음악계에 뛰어든 프로듀서 노먼 그랜즈는 1946년 음반사 클레프를 설립하여 SP 음반 제작을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기획했던 JATP 실황을 음반으로 내길 원했는데, 당시 SP 음반 수록 시간의 한계 때문에 12인치 78회전이라는 기이한 형태로 발매해야 했다(보통 78회전 음반은 7인치였다). 그렇게 해서 발매된 JATP 1집은 12인치 78회전 음반 3장을 한 세트로 묶어 발매됐는데, 그렇게 했음에도 그 세트를 통해 들을 수 있던 것은 ‘How High The Moon’과 ‘Oh, Lady Be Good’ 단 두 곡뿐이었다. 하지만 이 곡들은 5년 뒤 10인치 LP로 재발매하자 간단하게 음반 한 장에 모두 수록되었다. 그러자 노먼 그랜즈는 과거 JATP 실황을 LP로 재발매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했다.
1940년대 후반 재즈 DJ로 명성을 얻은 진 노먼은 노먼 그랜즈와 유사하게 ‘저스트 재즈’라는 이름의 음악회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1947년 패서디나 시민회관에서 있었던 라이어널 햄프턴과 올스타즈의 잼 세션은 대표적인 공연으로 이 실황은 1951년 10인치 LP로 첫 발매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1930, 1940년대 실황들을 LP로 발매하는 것은 1950년대 초 LP가 녹음되던 당시까지의 기술을 전부 활용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과거의 녹음들은 마그네틱테이프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녹음할 수 있는 주파수도 극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황 음반 LP들은 음악이 중단되지 않고 재생되었을 뿐 여전히 그 음질은 78회전 음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자 진 노먼은 1951년 마그네틱 릴 테이프에 소리를 담기 위해 4년 전 라이어널 햄프턴이 무대에 섰던 패서디나 시민회관에서 또 다른 ‘저스트 재즈’를 기획했다. 주인공은 루이 암스트롱과 그의 올스타 밴드였고, 그들의 살아 있는 연주는 관중의 환성과 박수, 루이의 유머 있는 무대 진행과 더불어 생생하게 녹음되어 12인치 LP를 통해 재생되었다. 특히 베이스와 드럼의 생동감은 이전 녹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감상자는 음악당의 R석에서 음악을 듣는 것과 거의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재즈가 LP에 담기기 시작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스스로를 ‘재즈 사기꾼’이라고 불렀던 프로듀서 테디 라이그는 사보이 레코드에서 찰리 파커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기념비적 데뷔 음반들을 녹음한 뒤 1949년 자신의 음반사 루스트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그는 사보이 시절부터 함께 작업해온 스탠 게츠와 계속 녹음을 이어갔는데, 특히 1951년 보스턴의 스토리빌에서 가졌던 실황 녹음은 재즈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재즈클럽에서의 최초 공식 녹음이자, 모던재즈 최초의 실황 녹음이며, 젊은 시절 스탠 게츠의 빛나는 한순간을 포착한 녹음이란 점에서 재즈 컬렉터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러한 음반들을 듣게 되면 마치 LP의 등장은 순식간에 SP를 시장에서 몰아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SP와 LP는 한동안 공존했으며, 스튜디오에서 재즈 연주자들에게는 여전히 ‘3분의 벽’이 존재했고 긴 즉흥연주와 실황 녹음은 여전히 모험이었다. LP는 주로 클래식 음악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모던재즈의 혁명을 이끌었던 초창기 비바퍼들은 혁명 당시에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한동안 새로운 녹음 기술의 진보가 가져온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53년 비밥의 주역들인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월,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는 캐나다 토론토의 뉴재즈 협회로부터 공연 초청을 받았다. 이 화려한 슈퍼 올스타 밴드의 실황 녹음은 당연한 듯 보였다. 하지만 연주자들이 이 녹음을 노먼 그랜즈에게 제안했음에도 녹음은 성사되지 못했고, 오히려 노먼은 자신과 독점 계약을 맺고 있는 찰리 파커의 이름과 얼굴을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의 연주는 토론토 뉴재즈 협회가 녹음하고 밍거스와 로치가 공동으로 설립한 음반사 데뷔를 통해 발매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부재로 녹음은 신통치 않아 밍거스가 자신의 베이스를 오버 더빙해야 했지만, 비밥의 개척자들이 우여곡절 끝에 함께 녹음한 이 호연은 실황 녹음 LP가 불가능한 시대였다면 남지 못할 역사적 자료가 되었다.
재즈 녹음에 있어 그 누구보다도 진취적이었던 블루노트의 알프레드 라이언도 1951년부터 10인치 LP를 발매했지만 당시엔 주로 SP 음반의 재발매였으며, 12인치 LP 녹음을 통해 ‘3분의 벽’을 허문 것은 1953년부터였다. 그리고 이듬해 이 음반사는 녹음 장비를 클럽 버드랜드로 이동해 클럽의 생생한 소리를 음반에 담아 재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여기서 결정적인 기술적 공헌자는 1952년부터 알프레드를 만난 당시 아마추어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였다. 이들의 사운드는 재즈 녹음의 새로운 표준이 되었고, 1954년 아트 블레이키의 버드랜드 실황은 훗날 탄생할 자신의 실황 음반 걸작들은 물론이고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 등의 실황 앨범의 신호탄이 되었다.
Decca/DL 8041|1951년 1월 30일 녹음
루이 암스트롱(트럼펫·보컬)/잭 티가든(트롬본·보컬)/바니 비가드(클라리넷)/
얼 하인스(피아노)/아벨 쇼(베이스)/코지 콜(드럼)/벨마 미들턴(보컬)
“>
▲ 루이 암스트롱과 올스타즈 ‘Satchmo at Pasadena’
Decca/DL 8041|1951년 1월 30일 녹음
루이 암스트롱(트럼펫·보컬)/잭 티가든(트롬본·보컬)/바니 비가드(클라리넷)/
얼 하인스(피아노)/아벨 쇼(베이스)/코지 콜(드럼)/벨마 미들턴(보컬)
Royal Roost/RLP 407|1951년 10월 28일 녹음
스탠 게츠(테너 색소폰)/지미 레이니(기타)/앨 헤이그(피아노)/테디 코틱(베이스)/타이니 칸(드럼)
“>
▲ 스탠게츠 퀸텟 ‘Jazz at Storyville’
Royal Roost/RLP 407|1951년 10월 28일 녹음
스탠 게츠(테너 색소폰)/지미 레이니(기타)/앨 헤이그(피아노)/테디 코틱(베이스)/타이니 칸(드럼)
Debut/DLP-2|1953년 5월 15일 녹음
디지 길레스피(트럼펫)/찰리 파커(알토 색소폰)/버드 파월(피아노)/찰스 밍거스(베이스)/맥스 로치(드럼)
“>
▲ 더 퀸텟 ‘Jazz at Massey Hall Vol. 1’
Debut/DLP-2|1953년 5월 15일 녹음
디지 길레스피(트럼펫)/찰리 파커(알토 색소폰)/버드 파월(피아노)/찰스 밍거스(베이스)/맥스 로치(드럼)
Blue Note BLP 1521|1954년 2월 21일 녹음
클리퍼드 브라운(트럼펫)/루 도널드슨(알토 색소폰)/호러스 실버(피아노)/
컬리 러셀(베이스)아트 블레이키(드럼)
“>
▲ 아트 블레이키 ‘A Night at Birdland Vol. 1’
Blue Note BLP 1521|1954년 2월 21일 녹음
클리퍼드 브라운(트럼펫)/루 도널드슨(알토 색소폰)/호러스 실버(피아노)/
컬리 러셀(베이스)아트 블레이키(드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