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니스트 장 기유&캐머런 카펜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9월 1일 12:00 오전

지난 8월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클래식 음악 전용홀 롯데콘서트홀이 개관했다. 가로세로 12.2미터에 4개의 손건반과 68개의 스톱, 그리고 5000여 개에 달하는 파이프를 갖춘 새 파이프오르간은 압도적인 음향과 입체적인 음색을 자랑한다.

9월 20일, 그 진가를 단독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첫 오르간 독주회가 열린다. 초청받은 오르가니스트는 2010년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기로 결정됐으나 클래식 음악에 관심 없는 프랑스 정부에 대한 항의로 서훈을 거부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오르간의 대부, 장 기유(Jean Guillou)다. 이어 10월 5일엔 록 스타를 연상케 하는 미국 출신의 자유분방한 연주자 캐머런 카펜터(Cameron Carpenter)가 두 번째 독주회 주자로 나선다.

각각 ‘전통’과 ‘파격’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는 두 오르가니스트. 같은 악기로 선보일 서로 다른 매력을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았다.

전통을 잇는 거장, 장 기유

70년이 넘는 세월을 오르간과 함께해온 장 기유의 위상은 견고하다. 지난해 4월, 52년간 봉직했던 파리 생 외스타슈 성당에서의 고별 연주회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프라하 필이 그를 위해 연주했고, 귀빈석엔 프랑스의 명사들을 비롯해 백건우·윤정희 부부도 자리했다.

오르가니스트로서 그의 시작은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세에 생 세르주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된 장 기유는 곧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올리비에 메시앙을 비롯한 프랑스의 오르간 거장들을 사사했다. 이후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 피아니스트, 교육자, 오르간 제작자 그리고 저술가로 폭넓은 행보를 보였다. 특히 작곡가로서 50여 곡의 오르간 작품을 발표하여 레퍼토리 확장에 힘썼는데, 그중에서도 1970년 작곡한 ‘사가(Saga)’는 오늘날 가장 자주 연주되는 현대 오르간 레퍼토리 중 하나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등을 비롯한 24곡의 편곡 작품도 널리 알려져 있다. 86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장 기유는 여전히 연주 여행을 다니고, 새로운 작품을 작곡하며, 글을 써내려간다. 꼿꼿하게 앉아 연주하는 모습 역시 한결같다. 그가 이번 내한에서 들려줄, 연륜으로 가득한 깊은 울림이 이메일 인터뷰에서도 느껴졌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마르셀 뒤프레·모리스 뒤뤼플레·올리비에 메시앙으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오르간 거장들을 사사했다. 프랑스라는 문화적 뿌리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지만, 음악의 근간에는 ‘독일’이 자리한다. 첫 계약이 독일에서 이뤄졌고, 절친한 음악 동료인 카를 리히터(Karl Richter)와 그곳에서 함께 활동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파리 음악원의 세 스승에게서 그리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르가니스트를 비롯해 작곡가, 교육자, 오르간 제작자, 작가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가장 중요한 작업은 ‘작곡’이다.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도 작곡하는데, 지금까지 3개의 교향곡과 7개의 오르간 협주곡을 발표했다. 작곡가는 ‘작가’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몇 년 전부터 오르간과 관련한 책을 집필해왔다. ‘오르간의 과거와 미래’(2010), ‘음악과 제스처’(2012)를 출판했고, 마지막으로는 ‘방문자’(2014)라는 시집을 냈다.

작곡가로서 활동은 즉흥연주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당신은 목표를 명료히 세운 후 계산된 주제와 발전 형식으로 즉흥연주를 이어간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의 즉흥연주 방식은 작곡가로서 방법론에 기인한다. 즉흥연주의 구상은 작곡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보통 독주회를 마치면 관계자나 관객이 몇 가지 주제를 던지는데, 그 즉시 언급한 방법으로 주제에 즉흥을 더한다. 모든 사람이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인지하게끔 말이다.

이번 내한 공연은 롯데콘서트홀 파이프오르간의 첫 독주회다. 프랑크 ‘영웅적 소품’을 시작으로 당신이 작곡한 ‘사가’ 4·6번, 리스트 ‘바흐 이름에 의한 환상곡과 푸가’와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의 편곡 작품을 선보인다. 어떤 관점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했나?

새 파이프오르간의 다양한 레지스트레이션을 보여줄 생각이다. 레지스트레이션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할 때 스톱(stop, 음색과 음높이를 결정하는 단추)을 적절하게 골라 쓰는 기법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한 다채로운 음색 변화는 파이프오르간만의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사가’와 ‘전람회의 그림’이 이를 잘 드러낼 수 있을 듯하다.

다양한 스톱을 사용한 ‘전람회의 그림’은 원곡보다 훨씬 생생하게 다가올 것 같은데.

‘전람회의 그림’은 원래 피아노 작품이다. 무소륵스키 사후 그가 살아 있었다면 완성했을 패시지를 더듬어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오케스트레이션을 했다. 작품 속 ‘그림’(악장)들은 각각 뚜렷한 콘셉트를 요구하는데, 각기 다른 컬러와 사운드, 심지어 악기까지 지시한다. 그래서 해당 악기의 음색을 최대한 가깝게 묘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담으려 했다.

가장 기대되는 레퍼토리는 당신이 작곡한 ‘사가’다. 무조성, 오스티나토와 복합 리듬, 클러스터 코드의 반복 등 상당히 독립적인 요소들이 중첩됨에도 하나의 큰 흐름이 느껴진다.

‘사가’는 스칸디나비아의 고대 설화로, ‘이야기하다’라는 뜻의 독일어에서 비롯됐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전설을 형상화한 한 편의 음악적 서사다. 그중 4번은 서정적인 면을 다뤘다. 순수한 흐름이 이어지다 중반부에 일종의 ‘파괴적인’ 선율이 등장한 후 다시 순수한 패시지로 돌아오는 구조로, 몇몇 혼란을 거치며 위험을 극복한 후 평화로운 결말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6번은 테마가 계속해서 반복되며 발전한다. 반복되는 도약 리듬은 흥분 가득한 환호성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제작에 참여한 오르간이 13대에 달한다. 특별히 아끼는 오르간이 있나?

1978년 제작한 프랑스 랄프 듀에즈 교회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손을 형상화한 외관 덕에 완성되자마자 널리 알려졌다. ‘신의 손’이라고도 불리는 오르간인데, 교회에서 재정적인 부분을 제외한 모든 자유를 허락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디자인이다. 당시 도달할 수 있는 오르간의 가능성을 빠짐없이 구현하려 노력했다. 사용할 수 있는 스톱을 최대한 장착했고, 각각의 스톱이 하나의 개별 악기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음향을 설계했다.

오르간과 관련해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음악에 대한 동물들의 반응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 언젠가 동물원에서 커다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고 싶다!

오르간을 사랑한 악당, 캐머런 카펜터

2008년, 스팽글이 잔뜩 달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르간 앞에 앉았다. 쇼팽의 연습곡 Op.10-12 ‘혁명’을 발건반으로 연주하는 화려한 기교와 범상치 않은 외모로 오르간계에 ‘혁명’을 일으킨 이는 캐머런 카펜터였다. 그는 같은 해 동일한 타이틀의 데뷔 음반(Telarc)으로 오르가니스트로선 최초로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했다. 올 6월엔 바흐의 곡으로 구성한 신보 ‘올 유 니드 이즈 바흐’(Sony Classical)를 내놓았다. 한국에는 지난 8월 11일 라이선스 음반으로 발매됐다.

카펜터는 기존의 틀을 거부하며 음악을 ‘엔터테인먼트’의 한 요소로 생각한다. 모히칸 헤어스타일에 가죽 재킷을 입고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록 스타 같다. 흰 슬리브리스를 입고 무대에 오를 땐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스친다. 자유로운 의상만큼이나 무궁무진한 그의 오르간에 대한 발상은, 2014년 자신의 철학을 담은 오르간인 인터내셔널 투어링 오르간(ITO) 제작까지 이어졌다. 이동이 가능한 디지털 오르간이라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한국에서의 첫 데뷔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는 그에게 이번 공연에서 기대하는 바를 물었다. “내가 즐기는 것!” 그의 대답은 아슬아슬하고, 때론 위험하기까지했다.

오르간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미국의 구식 라디오 쇼에 나오는 극장용 오르간(theater organ, 무성영화를 반주하기 위해 극장에 설치한 오르간)을 좋아했다. 남들처럼 성당의 파이프오르간을 접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요점은 나의 음악적 관점이 ‘엔터테인먼트’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문화적 배경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미국은 ‘사상의 자유로움’이 보장된 나라다. 이 환경은 종교적인 관점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오르가니스트로서 나의 큰 장점은 무신론자와 회의론자라는 것이다. 종교는 창조적인 예술가의 정체성과 스스로의 판단 능력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철학이 담긴 나의 음악은 기독교적 전통과 매너리즘에 빠진 기존 오르가니스트들의 연주와 차별된다.

무대에 오른 당신은 마치 록 스타 같다. 그런 당신의 모습에 언론은 매번 ‘화려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나는 화려한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단지 캐머런 카펜터만의 스타일을 고수할 뿐이다.

크리스털로 장식한 오르간 슈즈가 눈에 띈다. 특별 제작한 것인가?

발건반을 더욱 자유로우면서도 정확하게 밟을 수 있도록 직접 디자인했다. 청중이 발건반을 밟는 모습을 멀리서도 쉽게 지켜볼 수 있도록 반짝이는 크리스털을 부착했다.

첫 내한 공연의 레퍼토리로 바흐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 BWV582와 ‘전주곡과 푸가’ A단조 BWV543을 선택했다. 당신이 추구하는 파격과는 거리가 다소 멀어 보이는데.

연주 전날까지 롯데콘서트홀의 새 오르간이 어떤 악기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필요했다. 답은 하나였다. 바흐.

최근 바흐의 곡으로만 구성된 음반 ‘올 유 니드 이즈 바흐’도 발매했다. ‘바흐’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바흐의 작품은 완전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인간의 모든 감정과 순간이 담겨 있다.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음반 타이틀은 여기서 힌트를 얻었고, 대중적 요소를 가미하고 싶어 한 레이블의 뜻에 따라 비틀즈의 노래 제목을 땄다. 음반에 담은 20개의 트랙은 녹음 당시 손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곡들로 구성했다.

즉흥연주에선 주로 어떤 요소들을 가미하나?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고, 악보는 없지만 예술적으로는 분명히 완성됐고, 리허설도 없고 반복조차 없는 음악이 ‘즉흥연주’다. 동시대의 작곡 트렌드를 거부하는 나의 즉흥연주는 꽤나 보수적이다. 조성적이고, 후기 낭만의 센티멘털과 자유로움으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선율과 대위법, 구조의 발전 형식이다.

음악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는지.

‘영감’이란 단어를 믿지 않는다. 음악을 발전시켜나가는 동안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은 논리와 의도적인 생각, 계산된 목적의식이 느껴질 때다. 오르간을 연주할 때 이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오르간은 다른 악기들과 다르게 이진법적 논리가 필요한 악기이기 때문이다. 오르가니스트는 모든 음표와 그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변수, 이를테면 스톱이나 건반 위치와 같은 부분에 대해 매순간 ‘예’ 또는 ‘아니요’라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번 내한에서는 롯데콘서트홀의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지만, 평소에는 당신을 위해 제작된 인터내셔널 투어링 오르간(이하 ITO)을 가지고 다니며 연주한다고 들었다.

파이프오르간은 유동성이 없는 특수한 악기다. 곳곳의 악기는 저마다 생김새와 특성이 달라 자신만의 스타일을 드러내기 어렵다. 이는 현대 오르가니스트의 딜레마다. ITO는 이런 제약을 극복한 가장 진보적인 오르간이다. 파이프오르간을 디지털 영역으로 가져왔으며, 분리·이동·조립이 가능하다. ITO를 연주할 때면 항상 집에서 연주하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평소에는 주로 어떤 음악을 듣는지?

음악적 취향은 1930년대 이전에 멈춰 있다. 지금 듣는 대부분의 음악은 20세기에 유행하던 것들이다. 현재의 음악들은 평범하고, 지루하다.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혹시 은퇴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음악은 아름답다. 그러나 더욱 아름다운 것은 ‘인생’이다. 훗날 나의 테크닉이 쇠퇴함을 느끼는 즉시 은퇴할 생각이다.

사진 롯데콘서트홀·소니 클래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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