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콘체르탄테 ‘파우스트의 겁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9월 1일 12:00 오전

8월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가능성을 향한 고뇌의 흔적

대문호 괴테 필생의 역작.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무수한 음악 작품 가운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베를리오즈의 극음악 ‘파우스트의 겁벌’이 작곡가의 당초 의도에 따라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8월 19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다. 잘 알려진 대목이 많아 연주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잡은 작품이나, 1999년 예술의전당이 오페라극장에 올린 무대 이후 국내에서 전곡을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휘자 장 이브 오송스가 자아낸 베를리오즈 특유의 다채로운 빛깔이 지금까지도 인상 깊다.

이번 무대는 일체의 무대장치가 없어 한편으로는 음악만으로 모든 것을 재현해야 하기에 어려웠지만, 그만큼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실로 놀라운 연주였다. 이날의 무대는 후반부에서 베셀리나 카사로바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서히 중앙으로 다가오는 걸음걸이부터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내뿜었고, 그야말로 대가의 소리의 빛깔과 질을 보여주었다.

‘툴레왕의 이야기’는 조심스러운 탐색전이었다.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완전히 펼쳐내지 않은 극도로 절제된 연주였다. 멜로디가 좀 더 흘러 나왔으면 했지만 그런 빈자리는 오히려 청중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우도록 한 마력이 있었다. 음악과 자신이 일체가 된 듯한 자연스러운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4막의 로망스 ‘뜨거운 사랑의 불꽃’에서 비로소 그녀의 진면목을 실감했다. 마법과도 같은 황홀한 음색으로 절절한 그리움이 고즈넉하게 배어 나오는 품격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더 아름답고 풍성한 소리를 냈을 젊은 시절에 내한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당초 마르게리트역에 결정된 베를린 도이치 오퍼의 클레망틴 마르겐느 대신이었지만, 그녀의 지난날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선물같은 무대를 선사했다.

메피스토펠레스와 같은 악역으로 현재 사무엘 윤을 대적할 가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노래가 문제가 아니라 연주를 들으며 그의 눈빛과 표정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에 저절로 빨려 들어간다. 타고났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연기력이었다. ‘세레나데’ 장면에서 서서히 좌중을 포위하며 조여오는 고도의 계산된 노련한 연기는 아, 이제 완전히 경지에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화려하고 시원한 고음으로 세계 오페라 무대를 평정하고 있는 강요셉은 시종 고뇌하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소 피로한 음색이 아쉬웠다.

극음악이라 굳이 칭하듯 여느 오페라보다도 관현악의 비중이 크고, 독립적으로 연주하는 부분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이것이 또한 작품의 큰 묘미였다.

경기필을 지휘한 에밀 타바코프는 화려하고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경쾌한 리듬이 돋보이는 ‘라코치 행진곡’에서 일사불란한 악단의 합주를 이끌어야 할 기민한 리드가 아쉬웠다. ‘요정의 춤’에서도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낄 수 없어 효과가 반감되었다.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합창의 비중은 사뭇 큰 데 반해 서울시합창단의 연주가 이에 부응했는지 모르겠다. 드라마의 장대함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이는 4막에서 더욱 절실했다. 그러나 공연의 전반적인 수준은 무척 훌륭했고, 과연 이 모든 것이 그리 크지 않은 민간단체가 전부 준비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야심차고 세심한 기획이었다.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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