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크리스티/레자르 플로리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28일 12:00 오전

하프시코드 주자 겸 지휘자, 음악학자인 윌리엄 크리스티(William Christie)가 1979년 창립한 프랑스 시대악기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 예술의 번영, 이하 LAF)’과 오는 10월 15일, 23년 만에 두 번째 내한 공연을 롯데콘서트홀에서 갖는다. 지난 20여 년 간, 여러 고음악 단체가 한국을 찾고 다시 다녀갔지만 유독 LAF의 재방문은 어려웠다. 민간 기획사는 상대적으로 높은 개런티에 주저했고, 공공기관 역시 최소한의 흥행을 자신하지 못했다.

LAF을 대하는 한·일의 저변 차이는 2006년에 뚜렷했다. 11월 분카무라는 크리스티/LAF와 조제 몽탈보·에르비외 안무로 라모 오페라 ‘편력 기사(Les Paladins)’를 상연했다. 같은 해 6월 성남아트센터는 조제 몽탈보·에르비외 무용단을 불러 ‘편력 기사’의 축약 버전 ‘춤추다(On Danse)’를 올렸지만, LAF의 라이브 대신 레코딩 음원을 썼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LAF의 아시아 투어작 ‘이탈리아의 정원’은 도쿄와 서울, 상하이에서 차례로 공연된다. 2002년 크리스티가 만든, 젊은 가수들의 2년제 아카데미 ‘목소리의 정원(Le Jardin des Voix)’이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니콜로 포르포라 등 생소한 이탈리아 고음악과 바로크 희귀작을 비발디·하이든의 성악곡과 버무린다.

건반과 지휘봉으로 고음악을 섭렵하다


크리스티는 1944년 버팔로 태생으로 하버드와 예일대에서 예술사와 하프시코드를 배웠다. 베트남전 징병에 반대해 1971년 파리로 근거를 옮겼고 1995년부터 프랑스 국적이다. 프랑스 서부 방디(vendèe)에 자리한 자택의 정원 디자인을 직접 했는데, 건축을 전공한 부친의 영향도 보인다. 2012년부터는 자신의 정원에서 고음악 축제를 열고 있다.

크리스티는 1982년부터 13년간 파리 음악원 교수를 지내면서 학문적 연구를 공연으로 옮기는 데 꾸준한 성과를 이뤘다. 1987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의 륄리 ‘아티스(Atys)’부터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17·18세기 프랑스 바로크를 발굴하고 재생하는 능력이 알려졌고, 캉프라·몽동비유·몽클레어의 희귀작들이 세상과 만났다. LAF를 설립할 때도 샤르팡티에의 동명 오페라에서 이름을 빌렸다.
영국에선 계몽 시대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글라인드본, BBC 프롬스를 통해 헨델·퍼셀을 조명했고 “국수적 관점에서 벗어나 보편적 시각을 중시해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다. 사이먼 래틀 휘하의 베를린 필과 메트 오페라가 고음악을 섭렵할 때 그를 찾았다. 하프시코드 주자로서, 프랑스 이주 초기에는 베리오·리게티의 현대작을 제수알도·몬테베르디와 커플링했고, 21세기 초까지 LAF 리더 구로사키 히로와 듀오 앨범(Virgin Classics)도 냈다. 이제는 독주를 위한 건반 활동은 보기 어렵다.

지난 25년 동안 노르망디의 캥 극장(Thèâtre de Caen) 상주 단체로, 연간 70만 유로(약 8억8000만원)를 지원받았지만 2014년 캥 시장에 부임한, 중도우파 경향의 공화당 소속 조엘 브루노의 결정으로 2015년 말 캥 극장에서 나왔다. 현재 단체의 위계는 크리스티 밑에 스코틀랜드 테너 폴 애그뉴(1964~), 영국 지휘자 코너선 코헨(1977~)이 부음악감독·부지휘자를 맡고 있다.

지난 9월 1일, BBC 프롬스에서 LAF와 바흐 B단조 미사를 위한 리허설을 마친 크리스티를 만났다.

23년 만의 내한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1993년 예술의전당 공연은 기억이 뚜렷하다. 연주곡들은 희미한데, 관객들이 시무룩하다가 점점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봤다. 상당히 특이한 반응여서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기억한다.

한국인 음악가 가운데 임선혜와 공연한 적이 있는데.

아주 똑똑하고 친절한 가수라고 생각한다. 지시 내용을 금세 파악하고,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안다. 줄리아드에서 성악과 시대악기를 가르친 한국 학생이 많다. 특히 줄리아드 415에서 본 바이올리니스트 김나연의 실력은 대단했고, 명성이 곧 알려질 것이다.

롯데콘서트홀처럼 새로 개장한 홀의 어쿠스틱에는 어떻게 적응하나?

새 홀에 대한 정보를 동료들에게 듣지 못했다. 로열 앨버트홀처럼 공연장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합창과 앙상블의 조화를 리허설만큼 본 공연에서 구현하느냐에 우선 관심을 둔다. 성당의 어쿠스틱이 더 좋고 다목적 공연장은 나쁘다는 식의 편견은 없다.

리허설 이후 즉흥성을 통해 해석이 바뀌는 경우도 있는지?

많은 관중이 함께하는 BBC 프롬스에선 그런 경험이 있다. 나뿐 아니라 단원들이 자연스럽게 흥분할 때 그 느낌을 살리는 게 좋다. 그래도 앙코르할 때나 그렇고, 본 공연에서는 자제하려고 한다.

아카데미 ‘목소리의 정원’을 직접 뽑는 건 기존 고음악 성악 교육이 충분하지 않아서인가?

신인을 공연마다 만나서 우리 스타일에 익숙하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이념을 잘 아는 기성 가수만 쓰는 것도 지루하다. 아카데미를 통해 좋은 가수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보람이 있다.

주역 솔리스트를 선별하는 지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적이어야 한다. 물론 테크닉과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지성을 중요하게 본다.

내한 레퍼토리인 ‘이탈리아의 정원’은 어떻게 구상했나?

아시아 관객은 이전에 잘 듣지 못했겠지만, 우리 연주로 작품의 귀중함을 알게 되는 곡이 무엇인지가 기준이었다. 그래서 17년 전에 연주하던 목록을 꺼내어 봤다.

무명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희귀곡은 어떻게 연구했는가?

오랫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체크했다가 그것을 묶었다. 그래서 추가 연구는 없었다. 대개 문헌을 검토하고 단원들과 해석을 공유하며 발전시킨다.

LAF 시즌을 구성할 때 자신과 애그뉴, 다른 스태프들은 어떤 과정으로 예술적 결정을 내리는 편인지?

그해에 기념이 되는 작곡가가 누군지를 먼저 살핀다. 오래전에 했던 작품 중 일부를 다시 살리려면 무엇이 좋을지 검토하거나, 오페라의 경우 우리만 할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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