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 마스터클래스 현장

음악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1월 1일 12:00 오전

필자는 15년 간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명성 있는 첼리스트들의 마스터클래스를 직접 참여하거나 청강할 기회가 많았다. 직접 레슨을 받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동료들의 연주나 거장들의 철학이 담긴 조언을 듣고 있으면, 혼자 방 안에서 몇 시간씩 연습하는 것 이상의 효과와 도움을 가져다주곤 했다.

10월 13일 금호아트홀 초청으로 내한한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가 공연 이틀 전인 10월 11일 문호아트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가졌다. 첼로 위의 성인이라 불리는 이설리스는 11세 때 국제 첼로 센터에 입학해 제인 코언을 사사했고 음악을 전체 적으로 접근하는 음악 철학으로 많은 음악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연주자다.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된 마스터클래스는 그가 첼로의 기술적 면보다는 ‘음악’이라는 큰 덩어리 안에서의 다양성과 어울림을 먼저 생각하는 첼리스트라는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통찰력뿐 아니라, 매우 인간적이며 철학적인 접근을 통해 순간순간 학생들의 음악을 고급스럽게 둔갑시키는 그의 겸손한 화술과 시범 연주는 단연코 최고였다. 학생들의 수업 내용에 대해 서술하기에 앞서, 이번 마스터클래스가 열린 배경과 학생 선발 방식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본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는 해마다 좋은 연주가들을 초청해 공연을 기획하면서 경우에 따라 이들의 마스터클래스 참가와 청강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해왔는데, 이번 이설리스의 마스터클래스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상자 선발은 금호 영재 또는 영 아티스트 출신 첼리스트를 대상으로 신청자 접수를 받은 후 세 명을 이설리스가 직접 선발했고, 영상이나 연주 오디션은 생략하고 서류 전형으로만 뽑았다.

이설리스의 선발 기준은 ‘레퍼토리’였는데, 그는 세 곡의 서로 다른 양식과 분위기의 곡을 선별하여 음악학도들에게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코피예프 첼로 소나타 C장조 1악장
연주: 이동열(20세) 한예종 2학년

예전에 알토 노라스는 어느 마스터클래스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프로코피예프 첼로 소나타 C장조는 매우 힘든 음악이다. 특히 1악장은 중·저음 음역대가 많이 나와 피아노와 밸런스를 이루기 쉽지 않으며, 되풀이되는 진행 안에서 피아노와 끊임없이 오가는 대화가 매번 다르게 이야기되어야 하기에 웬만큼 잘하지 못하면 지루해지기 쉽고, 청중에게 어필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은 음악이다.”

그만큼 프로코피예프 소나타는 첼리스트에게 만만치 않은 음악이다. 이동열 학생의 연주를 듣고, 이설리스는 그의 음악성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레슨 시간 동안 몇 가지 조언을 했는데, 제일 먼저 자세와 호흡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연주한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연주하면 어깨도 같이 경직되고 호흡에도 영향을 미쳐 소리가 거칠어지기가 쉽다”며 “고개를 들고 시선을 멀리 두고 어깨를 이완시켜 연주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또한 튜닝할 때부터 이미 긴장된 그의 모습을 보고, 튜닝도 항상 울림 있고 아름다운 소리로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잊기 쉬운 부분까지 짚어주었다. 도입 부분에서는 화성적 진행 안에서 음표 간의 방향성과 중요도를 생각하며 활 속도 조절을 매번 다르게 해야 함을 강조했고, 긴 음가의 음을 끌 때에도 그냥 소리만 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 멜로디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며 함께 노래해야 함을 강조했다.

피치카토 역시, 피아노의 화성 변화 및 프레이징에 따라 다르게 튕겨져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이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 피치카토를 다시 하기 힘들다고 하자, ‘그럼 다른 손가락으로 하면 되지 않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어두운 도입 부분이 지나가고 새로운 모티브가 나와 분위기가 이완된다는 것이 결코 부드러움만을 뜻하지 않으며, 화성 변화와 음 간격 등을 생각하여, 정착할 듯하나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시킴으로써 ‘방향의 에너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아노 진행을 숙지하여 그 안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하고, 첼로가 쉬고 있다고 음악이 끝난 것은 아니기에, 끊임없이 질문과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피아노 멜로디를 받아서 첼로가 나와야 할 부분에서 이군이 손가락으로 지판을 탁탁 짚으며 곧 연주할 음정을 준비하는 행동 습관을 보고는 무척 놀라며, ‘절대 금기 사항’이라고 조언했다. 작곡 당시 러시아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도 이 음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됨을 상기시켰다. 전체적으로는 목과 어깨 이완의 중요성, 곡 구조의 이해(화성 진행, 조성 변화, 피아노 파트), 활 속도 이 세 가지를 강조했으며, 항상 음악을 즐기란 말을 끝으로 귀한 시간을 맺었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1악장
연주: 표현아(15세) 예원학교 3학년

표현아 학생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1악장의 연주를 듣고, 소리가 곱고 예쁘지만 연습한 대로만 하지 말고, 하이든 특유의 위트와 유머 그리고 즐거움을 좀 더 느끼며 즐겁게 연주하라는 조언을 제일 먼저 했다.

활 밑과 활 끝에서 습관적인 가속이 붙어 조급하게 들리는데, 무엇보다도 하이든 같은 음악에서는 활을 일정하게 사용해 프레이징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전반적으로 표현아 학생에게는 노래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악센트와 과도한 비브라토에 대한 지적을 많이 했는데, 이 역시 첫 곡인 프로코피에프에서 자주 이야기하던 ‘화성 진행’과 1800년대 이전의 음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아티큘레이션과 대비’라는 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멜로디 진행 상 긴장이 된 후 화성적으로 해결되어 종지 처리가 될 때 매번 소리가 커지거나 무거워지는 것을 지적했고, 16분 음표가 두 개씩 묶음 처리되어있는 부분(53마디)에서는 다운-다운, 업-업 보우를 사용하기보다는 명확한 발음과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모두 각활 처리를 할 것을 제안했다. ‘A장조로 시작되는 부분(50마디)은 제1바이올린과 함께 연주하는 사랑의 듀엣’이라며 감미롭고 사랑이 가득 담긴 소리로 노래해보라고 말했고, 항상 음형이 그려진 대로 노래를 부르되 다양성을 추구하여 결코 같은 방법으로 노래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빠른 음가 진행에서도 천편일률적인 진행을 배제할 것을 강조했다. 발전부의 단조 부분(98마디)에서는 조성 변화를 느끼며 드라마틱한 색감의 변화를 강하게 표현하되 프레이징은 연결되고 거칠어져서는 안 되며, 항상 고급스러운 소리를 찾아야 함을 상기시켰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보다 성악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성악가들을 연상하며 자연스럽게 노래 불릴 수 있게끔 진행해야 하고, 절대 어느 한 곳의 소리가 뒤집히거나 미운 소리가 나서는 안 되기에 항상 예쁜 옷을 입고 연주하는 느낌으로 부드럽고 가볍게, 때로는 강하지만 거칠지 않게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말로 레슨을 마쳤다.

슈만 첼로 협주곡 A단조
연주: 최훈(15세) 예원학교 3학년

슈만 첼로 협주곡은 ‘이설리스가 가장 선호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라 할 만큼, 그의 해석과 연주는 단연 최고이기에 필자는 다른 어느 곡보다도 기대가 컸다. 최 훈 학생의 연주는 나이에 비해 성숙했고 충분히 음악적이었다.

이설리스는 슈만 협주곡은 첼리스트가 화자(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하기에 ‘이야기의 정확한 이해와 숨은 의미를 찾기’라는 부분에 핵심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음악적 표현이 절대로 피아노와 포르테의 악상 구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수업 시간 내내 직·간접적으로 말했다. 도입 부분은 오케스트라와 듀오로 노래하는 느낌으로 하되, 심장이 계속 뛰는 느낌으로, 즉 어느 한순간도 에너지를 놓치거나 늘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음 한 음을 중요한 ‘어절’로 생각하고, 그것들이 기다란 프레이징으로 들리도록 하되, 그 안에 항상 다양한 텍스처가 존재하며 서로 잘 어우러져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첼로 선율 안에 숨어 있는 화성적 진행을 알고 함께 움직여야 하며, 필요 이상의 페르마타나 리타르단도 없이 항상 박자 안에서 노래하고 표현해야 함을 반복해 강조했다. 첫 페이지가 격한 사랑의 고백이라면, 두 번째 페이지 도입 부분은 수줍은 사랑 이야기로 머리를 쓰다듬는 듯한 느낌으로, 시적 느낌을 살려 연주해보라고 제안했다. 슈만 음악에서 ‘포르테피아노’ 악상은 절대로 거칠지 않으며, 모든 악상 기호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끝으로 슈만이 아무리 낭만 음악을 대표하는 한 사람일지언정, 이미 음악 자체에 충분한 대비효과가 이루어져 있기에 추가적으로,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러움’을 누리고 유지하라고 말했다. 즉, 내가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말고 음악이 저절로 펼쳐질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조언으로 오늘의 소중한 일정을 마쳤다.

철학적이고 지적인 첼리스트답게 스티븐 이설리스의 가르침은 심지가 굳고 일관성이 있었으며, 음악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선발된 세 명의 첼리스트 역시 뛰어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게끔 탄탄한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기교적 부분이나 음악적 표현에만 치우치지 않고, 그에 걸맞은 배경 지식이라든지 이론 부분에 대한 이해가 균형 있게 채워졌더라면 더 흥미로운 레슨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글 이현정(첼리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스티븐 이설리스 내한 공연 리뷰

예술가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10월 13일 금호아트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장고 끝에 악수’ 같은 문구들은 그 의미하는 바는 제각각이지만 대개 기대감이나 투자한 노력에 부응하지 못하는 결과물을 일컫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격언들과는 반대로, 지난 10월 13일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던 무려 12년 만의 스티븐 이설리스 독주회는 기대치를 뛰어넘는, 최상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올해 58세로 곧 예순을 바라보는 스티븐 이설리스의 연주를 통해, 한 예술가가 완성되는 데에는 5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어느 음악가의 이야기가 완벽히 들어맞는 완숙한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영국의 젊은 작곡가 토마스 아데의 작품 ‘다시 찾은 곳’을 제외하면 모두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첫 곡은 이설리스가 70년 만에 악보를 발견했다는 레이날도 안의 ‘노래하는 변주곡’이었는데, 프랑스 가곡의 작곡가다운 선율미가 돋보이는 곡이다. 이설리스는 콘서트의 일성(一聲)에서부터 이날 프로그램 전체를 통해 보여준 그의 깊은 음악성과 예술적 감수성을 드러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음악의 기술적 측면과 표현적 측면을 일일이 다듬어 마침내 청중에게 음악을 선보이는 느낌이 아니라, 그러한 (첼로의) 실제적 면면을 초월하여 음악 전체를 장악한 채로 어떤 높은 정신적 차원에서 첼로 연주와 곡 전체의 흐름을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 곡 가브리엘 포레의 첼로 소나타 1번은 실연으로 접할 수 있는 동곡(同曲), 최고의 해석 중 하나였다. 앞서 언급한 이설리스의 이러한 음악적 특징이 더욱 발휘되어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연주 스타일이 포레 음악의 부유하는 듯한 반음계적 프랑스 스타일을 만나 둘의 감성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짐으로써 청중에게 짙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세 번째 토마스 아데의 현대곡 ‘다시 찾은 곳’은 시작 전 통역인까지 무대에 등장해 이설리스가 육성으로 작곡 배경, 각 악장의 의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남겼다. 특히 마지막 악장 ‘도시: 죽음의 캉캉’은 기술적으로 연주가 불가능할 정도라 작곡가에게 곡을 다시 쓸 것을 종용했으나 초연 연주자를 바꾸더라도 원본을 강행하겠다는 작곡가의 의지에 굴복, 기술적 난해함을 감내했다는 이설리스의 이야기는 많은 청중을 웃음 짓게 했다. 오늘 연주된 곡 중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곡이 바로 이 곡인데, 각 악장별(1악장 물, 2악장 산, 3악장 들판, 4악장 도시)의 표현력도 기가 막혔지만, 특히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코니 시와의 환상적인 호흡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2악장의 쾌속한 표현 직후, 3악장의 피아니시시모의 표현에서 이설리스가 선사하는 약음 구사와 활 컨트롤은 거의 마술에 가까웠다.

인터미션 후 생상스 첼로 소나타 2번 중 3악장 로망스와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첼로로 편곡한 작품이 연주되었다. 환상적 느낌의 오묘한 색채감과 오직 최상의 연주자만이 부려낼 수 있는 긴 호흡의 프레이즈는 피아노와의 완벽한 앙상블을 통해 더욱 빛을 발했다. 코니 시의 격정은 (지나치게 잦은) ‘왼발 바닥 구르기’로 표출, 다소 감상을 방해했으나 이설리스의 연주와는 좋은 짝을 이루었다. 아련한 봄볕을 연상케 하는 생상스 ‘백조’를 필두로 두 곡의 앙코르를 연주한 이설리스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코니 시와 퇴장했다. 무대 뒤로 사라지는 이설리스의 뒷모습을 보며 60대의 그의 연주가 더욱 기대되고 궁금한 것은, 비단 필자만 느낀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글 김광훈(바이올리니스트,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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