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김석철 & 소프라노 서선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1월 1일 12:00 오전

바그너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걸 보니, 가을이 무르익은 것이 분명하다. 국립오페라단은 11월 16·18·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을 선보인다. 남동생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엘자를 위해 이름과 출신을 숨긴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이 나타나 그녀를 구하지만 결국 엘자의 의심 때문에 정체를 밝히고 그녀 곁을 떠나게 된다는 줄거리인 ‘로엔그린’은 ‘탄호이저’에 이어 바그너가 ‘오페라’라고 명명한 마지막 극음악 작품이기도 하다. ‘로엔그린’을 바그너 초기 낭만주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로엔그린이 파르지팔의 아들이라는 설정 등에 비춰볼 때 이 작품이야말로 바그너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음악에 묻어나기 시작하는 지점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번 공연은 지난여름 바이로이트 무대에 섰던 테너 김석철과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소프라노 서선영이 각각 로엔그린과 엘자를 맡아 기대를 더한다. 연습에 한창인 두 사람을 직접 만나 ‘로엔그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테너 김석철


▲ 테너 김석철

인간을 향한 신의 시선, 로엔그린의 노래

찻잔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가 지금 바그너에 흠뻑 심취해 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의 주역을 맡은 테너 김석철은 2003~2011년 도르트문트 극장의 전속 주역 가수로 활동했다. 2011년 도르트문트 극장의 ‘로엔그린’ 주역, 2013년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 주역 커버를 거치며 그간 바그너 레퍼토리에 꾸준한 관심을 드러내왔다. 오랜 준비와 기다림 끝에 김석철은 지난여름 ‘파르지팔’의 제3시동 역과 어린이 오페라로 각색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에릭 역으로 한국 테너로는 처음으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섰고, 현지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 감회와 열기가 채 식기 전, 그는 한국 무대에 올라 로엔그린을 통해 ‘김석철의 바그너’를 선보일 예정이다.

몇 달 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데뷔를 마쳤다. ‘이곳이 정말 바이로이트구나’라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관객이든 아티스트든 바그너와 관련한 사람들은 다 만났던 것 같다. 바이로이트는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자신이 갈고닦은 것을 자랑스럽게 펼쳐 보이는 무대다. 그리 크지 않은 배역이었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면서 그들을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것이 좋은 경험이 되었다.

남자 성악가라면 누구나 바그너에 대한 욕심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신이 느끼는 바그너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

가사와 음악의 비중이 50 대 50에 가깝게 거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그너의 극음악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적인 ‘언어’과 감성적인 ‘선율’이 아름답게 결합하는 그의 음악은, 그 자체로 곧 바그너 자신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세계관인 ‘인간과 자연(신)의 공존’을 수용하고 있다. 바그너는 텍스트에 깊고 묵직한 사상을 담았고,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선율과 화성’에 그 텍스트를 띄움으로써 음악과 서사 사이에서 최상의 시너지를 이끌어낸다.

텍스트와 음악 간의 유기성의 측면에 집중하는 것인가?

20년 넘게 성악을 하면서 가사 공부만 한 것 같다.(웃음) ‘작곡가는 왜 이 가사에 이런 멜로디를 붙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쌓여가면서, 작품을 구성하는 다양한 맥락을 더욱 깊이 알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사의 비중이 큰 바그너의 음악에 매료됐다. 그 속에는 바그너의 세계관과 구원론이 담겨 있다. 바그너의 극음악은 사회의 문제점을 환상적 배경에 투영시키고, 이상적인 세계를 건설하자는 혁명적이고 계몽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밋밋한 권선징악이 아닌 ‘세계를 정화할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주제의식을 통해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바그너는 자신이 사는 세상이 잘못됐다고 느꼈고, 인류는 사랑을 통해서만 태초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꿈꿨다.

‘로엔그린’에서도 그러한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나?

그렇다. 인간인 엘자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자신이 상상한 완벽한 신을 불러내고, 엘자의 소원대로 로엔그린은 정의를 실현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해피엔딩을 앞둔 엘자는 ‘이름을 묻지 말라’는 처음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로엔그린의 이름을 묻는다. 한계를 지닌 불완전한 존재로서 인간은 신이 선사한 완전무결한 행복을 순수하게 누리지 못한다. 선악과만 먹지 않으면 영원히 에덴에서 살 수 있었지만 결국 그것을 어겨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과 같다.

로엔그린이 이름과 출신을 숨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물론 동서양의 많은 설화에서 흔히 쓰이는 공식이긴 하지만.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부조리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어느 집안 출신인지, 어디서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상대에게 마음을 줄 수 있다는, 현대사회에도 강력하게 작용하는 소위 ‘조건’들을 표현하는 장치다. 바그너가 생각하는 세계 구원의 열쇠는 곧 사랑이며, 그는 작품을 통해 ‘조건과 상관없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로엔그린’을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NO’ 아닌가?

이 작품의 매력은 거기 있다. 인간은 나약하며, 허점투성이고, 의심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연약한 인간을 대표하는 엘자는, 앞서 말한 ‘인간적으로 중요한 조건’을 모르는 채로 사랑을 약속할 수 없는 것이다.

격정적인 애정을 쏟아내는 여타 오페라 속 남주인공에 비해, 로엔그린은 더 순수하고 숭고하며 초월적인 관념 위에서 엘자와 조우한다. 3막 전반부에서 긴 호흡으로 엘자와 단둘이 극을 이끌어가는데, 테너 입장에서 이러한 감정선이 오히려 더욱 까다로울 수 있을 것 같다.

난 심정적으로 엘자 편이다. ‘적어도 아내가 될 내겐 이름을 알려줘야 하지 않나’하는 당위성을 그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인데, 이 얼마나 인간적인가. 그에 반해 로엔그린은 완전무결한 신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로엔그린은 금기를 깬 그녀 때문에 사라지지만 결코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엘자(더 나아가 인간 전체)를 안쓰럽게 여긴다. 로엔그린의 이러한 연민은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시선과 닮았다.

로엔그린 캐릭터에 이미 흠뻑 빠져 있는 것 같다. 레퍼런스로 삼는 ‘로엔그린’ 테너가 있는지?

바그너 헬덴테너로 손꼽히는 막스 로렌츠와 볼프강 빈트가센, 그리고 르네 콜로를 존경한다. 르네 콜로와는 직접 만나서 로엔그린 캐릭터에 대한 레슨을 받았다.

자신에게 잘 맞는 역할은 무엇인가? 또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발퀴레’의 지그문트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지금은 이탈리아 레퍼토리보다는 바그너에 흠뻑 빠져 있다. ‘동양인이 바그너를 제대로 노래할 수 있는가’라는 시선을 뚫고 바그너 레퍼토리를 계속해서 도전할 생각이다. 트리스탄도 정말 매력적이다.


▲ 201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파르지팔’ 무대에 오른 테너 김석철(왼쪽 끝) ⓒBayreuther Festspiele

소프라노 서선영


▲ 소프라노 서선영

신을 껴안지 못한 연약한 인간, 엘자의 노래

국립오페라단과의 연습을 위해 귀국한 서선영을 압구정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취리히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지 이제 막 24시간쯤 됐다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국립오페라단이 11월 선보일 바그너 ‘로엔그린’의 헤로인인 서선영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해 주목을 받았으며, 수상 한 달 뒤 곧바로 스위스 바젤 극장의 전속 주역가수로 발탁되며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겼다. 지난해부터 바젤을 떠나 새로운 행보를 시작한 그녀는 올봄 국립오페라단 ‘루살카’의 주역을 맡아 호평을 받은 데 이어 바그너 ‘로엔그린’의 엘자 역으로 다시 한 번 국립오페라단 무대에 오른다.

2013년 스위스 바젤 극장 소속 시절에도 ‘로엔그린’의 엘자 역을 맡았다. 극 중 엘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어떻게 느꼈나? 제목은 ‘로엔그린’이지만 실제로 엘자의 비중이 상당하다.

2013년 당시 왜 작품 제목이 ‘엘자와 로엔그린’이 아닌 ‘로엔그린’이냐는 농담을 했을 정도로, 작품에서 엘자가 소화하는 분량이 많다.(웃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엘자가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엘자가 기도했기 때문에 로엔그린이 나타나고, 마지막 역시 엘자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로엔그린’을 들여다볼수록 이것은 엘자의 이야기라는 걸 느낀다.

2막에서 오르트루트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목은 엘자가 마음속 의심을 시작하는 계기다. 3막 전반부 로엔그린과의 듀엣 못지않게 극 전개 상 중요한 부분인데.

오르트루트는 2막 내내 뱀처럼 간교하게 엘자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뿌리고, 끝내 엘자를 파멸로 이끈다. 로엔그린에 대한 엘자의 믿음이 흔들리며 혼란이 깊어져 가는 장면으로, 실제로 연출가들의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젤에서 ‘로엔그린’을 공연했을 당시 연출가는, 오르투르트가 엘자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나와 달콤하게 속삭이다가 갑자기 드레스 자락으로 엘자를 칭칭 휘감으며 옥죄는 연출을 선보이기도 했다.

‘로엔그린’에서 엘자를 통해 그려지는 여성상은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다분히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고귀하고 초월적인 남성인 로엔그린에 비해, 엘자는 남성의 도움을 통해 곤경에서 구원받는 전통적인 연약한 여성, 약속을 어겨 행복을 깨뜨리는 성서 속 이브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엘자 캐릭터의 매력이 있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나?

엘자의 본질은 ‘인간성’에서 비롯된다. 엘자가 여성이기에 앞서 ‘인간’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행동을 하며 고뇌를 느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엘자는 작품 내내 한 번도 마음 놓고 행복해하지 못하는 캐릭터다. 3막 전반부에서 로엔그린과 사랑의 대화를 나눌 때도 이미 마음속에는 의심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으니까. “나는 기쁨과 환희의 나라에서 왔다”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로엔그린의 말을 들을 때 엘자는 오만 가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하다못해 ‘내게 오기 전에 이미 누군가와 결혼했던 건 아닐까’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의심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다시 아무렇지 않게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엘자를 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몰입하는 이유는 고뇌와 번민에 휩싸인 인간으로서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간의 이력을 보면 무겁고 짙은 감정을 밴 캐릭터를 즐겨 맡는 것 같다. 스스로 자신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리릭 소프라노를 노래할 때 스스로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나와 오랜 기간 함께한 반주자는 푸치니 ‘수녀 안젤리카’의 안젤리카를 나의 베스트 역할로 꼽는다. 개인적으로 강렬한 감정을 쏟아내는 캐릭터를 선호하는데, 특히 야나체크 ‘카티아 카바노바’, 드보르자크 ‘루살카’ 같은 체코 오페라를 꼽을 수 있겠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중심과는 조금 다른 동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한’ 같은 한국적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스위스 바젤 극장 전속 주역가수로 지난해까지 있었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극장 소속일 때와는 달리 캐스팅이나 스케줄 조정 등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변수와 마주칠 텐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궁금하다.

극장 소속이었을 땐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역할이 척척 들어왔는데.(웃음) 요나스 카우프만 같은 상위 1%의 월드 클래스 성악가가 아닌 이상,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성악가는 누구나 오디션을 봐야 한다. 사실 오디션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 내가 원하는 배역이 있어도 극장 측과 입장이 다를 때도 있고, 거꾸로 프로덕션에서 나를 원해도 내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도 있다. 마음 졸이는 순간도 많고, 간발의 차로 아쉽게 스케줄이 엇갈린 적도 많다. 그렇게 주어진 기회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 2013년 바젤 극장 ‘로엔그린’에서 엘자를 연기한 소프라노 서선영 ⓒHans Joerg Michel

동양인 소프라노로서 유럽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본인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강점, 그리고 공연 관계자들이 꼽는 서선영의 매력은 무엇인지.

연출가들에게 감정 표현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바젤 극장 시절, 연출가가 직접 ‘서선영이 이 배역을 맡으면 좋겠다’고 주장해 후보에서 주연 캐스팅으로 승격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성악가의 시대를 거쳐 지휘자 중심의 시대였던 20세기를 지나 지금은 연출가의 시대다. 주도권이 연출가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연출가가 원하는 대로 연기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성악가로서 노래를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더 나아가 대사를 노래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배우’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음악가가 그렇겠지만, 특히 성악가는 나이가 들수록 표현력이 좋아진다. 아이도 낳아보고, 치열하게 싸우고, 뜨겁게 사랑하면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마주하고 인생의 깊이가 깊어지면 그만큼 내가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박진호(studio BoB)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
11월 16·18·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지휘 필리프 오갱
연출 카를로스 바그너
무대 코너 머피
조명 파브리스 케브르
로엔그린 김석철
엘자 서선영
하인리히 왕 미하일 페트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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