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영 협연, 데이비드 진먼/ NHK 심포니 내한 공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2월 1일 12:00 오전

11월 13일
롯데콘서트홀

청춘의 진중함, 노장의 관록

아시아 최고 명성의 오케스트라, NHK 심포니가 객원 지휘자 데이비드 진먼의 통솔로 여덟 번째 내한 공연을 2년 만에 가졌다. 2015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임지영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터키’를, 소프라노 요안나 코즐로프스카는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를 협연했다.

악단의 전신인 신교향악단이 1939·1940년 두 차례 내한한 것을 포함하면, NHK 심포니는 일본 악단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한국과 교류(1968·1978·1991·1993·2002·2006·2014년 내한)한 오케스트라다. 2015년 9월부터 파보 예르비를 새 수석지휘자로 들였지만, 2009년에서야 안면을 익힌 진먼과 서울 투어에서 서로의 합을 맞췄다. 예술적 위계에서 아무 직책을 맡지 않은 진먼을 연주 여행에 투입한 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추이를 지켜볼 만하다.

2002년 뒤투아, 2006년 아시케나지가 음악감독 신분으로 NHK 심포니 내한을 이끌었지만, 해당 공연들에선 ‘아시아의 베를린 필’다운 면모가 충분히 발현되지 않았고, 그동안 서울 공연을 리드한 일본 지휘자들(이와키 히로유키·도야마 유조·다카사키 켄·히로카미 준이치)은 한국 내 인지도가 아쉬웠다. 1994년 볼티모어 심포니, 2014년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내한했던 소위 ‘A급 지휘자’를 다시 만난다는 기대감이 롯데콘서트홀에 팽배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터키’는 임지영이 프로페셔널 주자로서 현재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를 해석 면에서 낱낱이 노정하는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1악장 바이올린 서주에서 주제로 옮기는 구간에 잠시 음정에 마찰이 일어났지만, 이후 흐름을 주도하고 악단에 넘겨주는 과정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차분히 균형을 찾으려는 냉정은 스물한 살 나이를 고려할 때 더 인상적이다. 힘과 체력이 우수한 임지영은 큰 칼로 촛불을 끄듯, 과감하지만 섬세히 음형을 통제했다.

연주자의 이성과 ‘터키’를 지배하는 가벼운 리듬감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장식음의 활용에서, 임지영은 진중하고 여유 있는 시선으로 모차르트를 관조했다. 독주자는 차분한 스탠스로 프레이징에 여운을 담으려 했고, 지휘자는 고음악 악단을 연상케 하는 적극적 콜레뇨(col legno)로 악센트를 부가했다. 1991년 NHK 심포니 한국 협연 이후 김지연이 덴온 레이블에서 내놓은 신보작을 NHK 심포니 정기연주회로 잇달아 보였듯이 임지영은 이번 협연을 선용해 열도에서 정련된 방식으로 장기를 펼치는 게 다음 단계일 것이다.

공연의 핵심은 구레츠키 ‘슬픔의 노래’였다. 홀리 미니멀리즘을 다루는 진먼의 관록은 여전했다. 그러나 음반과 실연의 차이를 감안해도 코즐로프스카의 기량은 진먼/런던 신포니에타와 일렉트라 논서치 레이블에서 함께한 돈 업쇼와 대비됐다. ‘슬픔의 노래’에서 가수는 대량 학살의 증언을 현재화하는 핵심 역할이다. 대학살의 역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힐 수 있음에 주목한다면, 암 투병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업쇼에 이어 진먼이 언젠가 지휘대에서 내려왔을 때, 20세기 후반 가장 성공한 현대 교향곡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앨범이 1976년 작곡된 악보를 초월하고, 자신의 (후속) 연주보다 권위를 인정받는 현실은 특수한 경험을 미학화·형식화하는 노력이 결국 부족한 것을 의미한다. 예술 형식을 빌려 만행을 잊지 않으려는 유럽의 태도가 진먼을 빗대어 2016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기회였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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