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한여름밤의 꿈’ & ‘오셀로와 이아고’

동서의 고전, 그 내용과 형식의 절묘한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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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2월 3일 9:00 오전

REVIEW 연극 ‘한여름밤의 꿈’ & ‘오셀로와 이아고’

풍성한 계절만큼이나 공연계가 풍성한 요즘, 고전에 접근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목을 끈다. ‘한여름밤의 꿈’(임도완 연출, 11월 1~18일, 설치극장 정미소)과 ‘오셀로와 이아고’(신재훈 구성·연출, 11월 13~25일, 정동극장). 이 두 작품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인류 공통의 연극적 자산이며, 우리나라 연극계에서도 한때 대학로 한쪽 벽면이 셰익스피어 공연 포스터로 채워질 만큼 무한한 사랑을 받는 작가다. 셰익스피어라는 공통점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이 모두 탈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한여름밤의 꿈’은 봉산탈춤을 가져왔고, ‘오셀로와 이아고’는 출연자들이 모두 탈춤 이수자들이다. 셰익스피어와 탈춤, 동서양의 대표 고전을 결합해보겠다는 두 작품의 창작 의도는 비슷하지만 그 결과는 많이 달랐다.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내용과 형식의 결합 양상이 달라진 점이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서로 다른 질감을 보여주는 두 작품은 현재의 연극, 공연예술이 고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여름밤의 꿈’, 셰익스피어가 탈춤을 품다

‘한여름밤의 꿈’ ©옥상훈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인 ‘한여름밤의 꿈’은 원작의 내용을 바닥과 기둥으로, 봉산탈춤과 코메디아델라르테로 벽과 지붕을 만들어 냈다. 즉, 셰익스피어에 무게중심을 둔 내용이 탈춤이라는 형식을 끌어안은 형국이다. 요정의 왕과 왕비 오베론과 티타니아는 각각 금강역사와 여왕 마고로 바뀌었고 퍽은 나무도깨비 두두리가 되었다. 모든 인물들이 한국적으로 변하였지만 큰 맥락은 원작을 그대로 따라갔다. 아마 원작과 가장 달라진 부분은 두두리의 실수로 남자들끼리 사랑에 빠지게 된 장면일 것이다. 동성끼리의 사랑이 낯설지 않은 현대적 감각이 투영된 부분인데, 원작과의 격차 때문인지, 아니면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연기 때문인지 묘하게 큰 웃음이 유발되었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기획의도에서 봉산탈춤과 코메디아델라르테를 접목시켰다고 밝혔듯이 탈과 연기에 집중했다. 특히 연기에서는 코메디아델라르테의 유형적 연기를 선보였는데, 마고 여왕의 사랑을 받는 북쇠가 대표적이다. 북쇠는 모든 대사를 할 때 항상 왼손을 허리에 올리고 오른발을 옆으로 한 발 내밀어 뒤꿈치로 서 있는 자세를 하고 있는데, 이는 코메디아델라르테의 광대가 취하는 시그니처 포즈이다.
이렇듯 코메디아델라르테의 연기를 접목시킨 것은 원작의 희극성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았지만 탈과 탈춤의 활용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모든 캐릭터가 탈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봉산탈춤을 특정했음에도 작품 전반에 걸쳐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두두리의 경우 회색빛 탈에 산발을 한 노파의 형상을 했는데, 이런 캐릭터라면 봉산탈춤의 미얄할미 탈을 그대로 활용해도 무방했다. 금강역사나 마고 여왕도 취발이나 소무 등 활용할 수 있는 탈이 있음에도 뾰족한 코와 큰 눈 때문에 이국적 분위기가 나는 반가면의 제작된 탈을 활용하였다.

‘한여름밤의 꿈’ ©옥상훈

원작의 내용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기 때문에 탈춤에서의 춤은 약화되었다.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긴 의자형의 무대장치들은 서로 겹쳐지고 나란히 펼쳐지면서 세로로 공간을 깊게 확장시키고 배우 움직임을 입체적이며 동적으로 창조하는 장점을 창출했다. 이렇게 효과가 큼에도 그 자체는 이 작품의 초점이 춤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 독무든 군무든 많은 무대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장치들로 인해 춤을 추기 위한 빈공간이 마련되지 못했다. 몸짓이 줄어든 자리를 대사가 차지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탈춤을 형식적으로 품었기 때문이다.

 

 

‘오셀로와 이아고’, 탈춤이 셰익스피어를 품다 

‘오셀로와 이아고’

천하제일탈공작소는 탈춤 이수자들로 구성된 단체이기 때문에 어떤 것과 결합하더라도 탈춤을 중심으로 삼는다. 실제 ‘오셀로와 이아고’의 작업 과정도 그러했겠지만, 탈춤이 새로운 레퍼토리나 새로운 내용을 찾아 창작된다면 딱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강한 설득력이 있다. 탈춤을 중심에 놓으니 셰익스피어 원작에 큰 변화가 생겼다. 독자적 장면과 봉합적 구성이라는 탈춤의 구성 원리를 따라 인물과 이야기가 단순해졌다. 우선 무대에는 오셀로·이아고·데스데모나만 등장해, 갈등이 단순화되면서 주제의 지향점이 선명해졌다. 프롤로그를 포함한 총 11개의 장면은 세 인물의 관계와 원작 ‘오셀로’의 플롯을 따라가지만 각각의 연결이 긴밀하거나 절대적이지 않으며, 세 인물이 만들어내는 장면의 목적과 목표가 도드라지는 양상을 보여준다.
두 번째 변화는 대사 중심의 셰익스피어에 탈춤이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탈이 지닌 상징성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데스데모나의 하얀 탈, 이아고의 검은 탈, 오셀로의 빨간 탈과 하얀 탈. 탈의 생김새도 각각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주지만 색깔은 캐릭터의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 탈춤의 춤사위가 다양하게 활용되어 간결해진 구성의 여백을 빼곡하게 채워나갔다. 탈춤의 춤을 활용한다고 해서 특정 지역의 탈춤과 그 춤사위를 그대로 가져왔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 출연자들은 모두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위해 새롭게 안무를 짰다. 오셀로의 위압적인 커다란 춤사위, 이아고의 작고 왜소한 동작 등 기본은 탈춤이지만 특정 지역도, 특정 몸짓도 아닌 캐릭터에 최적화된 안무를 선보였던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인 데스데모나의 독무였는데, 격정적이면서도 섬세한 몸짓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발랄함과 우아함과 욕망을 드러내면서 플레어스커트의 하늘거리는 주름과 결합하여 캐릭터의 이미지를 확장시켰다.

‘오셀로와 이아고’

세 인물이 움직이는 무대는 빛을 반사하는 바닥을 사용했는데 그 효과와 상징성이 매우 컸다. 바닥에 비춰지는 인물들의 실루엣이 일렁거리고 있어 왜곡된 욕망과 간교함의 실체, 그리고 불안한 그들의 운명을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고, 조명이 반사되어 벽면에 드리워진 커튼에 투사된 인물들의 검은 그림자는 비극적 결말을 예감하는 요소가 되었다. 동서양의 악기가 결합된 음악은 무대 뒤편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면서 무대 위 인물들의 이야기를 과거가 아닌 동시대의 것으로 만들어 현재의 관객들과 공명하게 했다.
‘오셀로와 이아고’는 탈춤에 무게중심을 두고 셰익스피어를 품었더니 오히려 탈춤이 더 잘 보이는 역설적 효과가 창출된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이를 두고 ‘진정한 의미의 탈춤이다 아니다’를 따지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 또 있을까. 탈춤이 같은 시대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졌던 것처럼, 지금의 탈춤도 박제된 모습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현대의 관객들과 교감하고 조응하면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오셀로와 이아고’는 잘 만든 작품으로 강조하고 있다.
글 배선애(연극평론가)  사진 SPAF·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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