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영화 글 최재훈
모두 알고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모르는 이야기. 다 이해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잘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스치듯 보았지만 탐독하진 않은 이야기. 당연히 대부분 알아야 한다고 믿지만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부담을 느끼는 이야기.
고전에 대한 오해는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사실 잉마르 베리만이라는 이름도 너무 무겁다. 하지만 그를 만나기 전, 오래 묵은 숙제를 해야 하는 학생처럼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의 실존주의적 사유는 아버지가 목사였던 가족으로부터, 극적인 미장센은 연극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그의 대화법이다. 당연히 모든 관객은 오독의 권리를 지닌다. 그의 모든 화법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느끼면 된다. 잉마르 베리만 자신도 어쩌면 사실 ‘100퍼센트 잉마르 베리만’은 아닐 것이다.
춤으로 듣는 잉마르 베리만
잉마르 베리만은 단지 영화감독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예술에 영감을 제공한 독보적 아이콘이며, 예술사에 있어서는 하나의 콘셉트로 존재한다. 1957년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은 신과 구원, 죽음 등 형이상학적 화두를 통해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매체일 뿐,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영화를 철학적 사유가 가능한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게 만들었다. 더불어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이 독자적인 영화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예술영화의 작가주의 시대를 연 감독이기도 하다.
베리만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와 철학적인 화두와 불친절한 내러티브 때문에 얼핏 베리만 영화를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강렬한 미장센이 주는 느낌은 사실 지루함을 덜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패션이나 디자인에 영감을 줄 만큼, 피사체의 구도나 패션 역시도 감각적이다. 그만큼 베리만은 영상 매체가 지닌 장점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시각적인 장점들은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2018년은 잉마르 베리만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올해 2회를 맞이한 서울무용영화제는 ‘잉마르 베리만-안무가의 눈으로 바라보다(Ingmar Bergman through the Choreographer’s eye)’를 개막작으로 선정하였다. 스웨덴에서 가장 혁신적인 안무가로 주목받고 있는 알렉산더 에크만, 페르 아이스버그, 폰투스 리드버그, 요아킴 스티븐슨 등 4명의 안무가가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을 춤으로 재해석하는 이 댄스 필름에 참여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0대부터 연극을 접했고, 청년이 되어서 무대연출, 연극 대본, 오페라 대본 등을 쓰면서 공연예술가로 활동했다. 영화감독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연극연출가로서의 활동도 이어갔다. 그의 영화 속 극적인 미장센과 철학적 대사, 무용에 가까운 동선은 이러한 그의 이력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그의 연극작품 속에서 베리만은 배우들의 움직임을 직접 안무하기도 했다고 한다.
베리만의 작품을 구성하는 실존적 주제 혹은 질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4명의 안무가는 파로에 있는 베리만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창작의 근원을 되짚어 본다. 알렉산더 에크만은 쇼팽의 음악을 배경으로 ‘베리만과 춤에 대한 몇 가지 생각(Some thoughts on Berman and dance)’이라는 공연을 선보인다. 베리만의 작품에 등장하는 철학적 사유보다는 시적인 유머를 더 강조한 듯한 안무이다. 페르 아이스버그는 바흐의 음악을 배경으로 ‘삼밴드-밴드-사라반드(Samband-Band-Saraband)’라는 작품을 안무했다. 삼밴드는 스웨덴어로 관계를 의미한다. 밴드는 유대, 그리고 사라반드는 스페인 춤곡을 의미하는데 베리만 작품의 유대와 춤을 위트 있게 엮은 제목이며, 베리만 감독의 영화의 주된 화두인 관계와 감각적 이미지를 활용, 춤으로 풀어낸다. 폰투스 리드버그는 ‘사전연구(A pre-study)’를 안무하였는데 베리만 감독의 영화 ‘처녀의 샘(The virgin spring)’(1960)과 ‘제7의 봉인’에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말을 등장시켜, 잉마르 베리만의 미장센을 춤 위에 덧입히는 효과를 냈다. 요하킴 스티븐슨의 ‘오나퍼스(Onapers)’는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속의 주된 관계를 만들어대는 두 여성의 교감과 다툼을 춤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베리만의 영화 속 장면들과 묘하게 겹치는 이미지들을 통해 공감을 끌어냈다. 잉마르 베리만 주니어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만큼, 베리만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담은 작품들은 거장에 대한 하나의 오마주가 되고 또 각각 독립적인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자신만의 밑줄 긋기
3차원 실황의 형식인 무용을 2차원 평면으로 온전히 접하기는 어렵다. 아직도 영상 매체는 춤을 단순한 여흥을 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춤이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메타포로 전이되는 순간, 영화 속 춤은 단순한 장치가 아닌 가치 있는 기록물이 된다.
최근 춤을 가장 효과적으로 영상으로 담아낸 작품 중 하나는 수많은 댄스 필름이 아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이다. 피나 바우슈의 열렬한 팬이었던 감독은 카메라가 마치 안무가가 된 것처럼 피나의 춤을 영상에 새긴다. 세심한 카메라 워크와 내밀한 감정을 담아내는 표정 하나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온몸, 심지어 그녀의 머리카락조차도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가 더욱 가치 있는 것은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카페 뮐러’가 은퇴 후, 오직 영화를 위해 다시 공연되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다가 자신의 생각과 맞아떨어지거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나오면 밑줄을 긋는다. 이 댄스필름은 4명의 안무가가 각자의 펜을 들고 베리만이라는 거대한 고전에 밑줄을 그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춤을 담아내는 영상의 기법이나 편집이 평이하고, 댄스 필름인지 다큐멘터리인지 어정쩡한 흐름을 날카롭게 도려내는 내러티브가 없다는 것은 아쉽다. 베리만을 춤으로 봐야 하는 것에 대한 당위를 조금 더 고민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는 베리만을 보고 느낀 안무가가 직접 그은 밑줄만을 읽었다. 당연히 베리만이라는 고전은, 직접 펜을 들고 스스로의 독서법으로 줄을 그으며 읽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글 최재훈(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후 각종 매체에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